■고전산책
■고전산책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7.11.16 11:41
  • 호수 8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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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시험은 시작일 뿐 성적 낮다고 좌절할 일 아니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탓에 종이와 붓을 살 돈이 없었다. 나무판에 모래를 부어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는 것으로 문자를 깨우쳤다. 얼마나 많이 썼던지 지문이 닳았다. 훗날 송나라 천하제일맹장 악비岳飛가 그다.
손가락에 지문이 없어진 인물이 또 한사람 있는데 여몽이다. 삼국지에서 여몽은 대장부이며 천하 맹장이다. 어려서 가난한 탓에 공부할 기회를 놓쳤다. 여몽 장군이 까막눈인 것을 알게 된 오나라 명재상 노숙은 글을 가르쳤다.

여몽의 공부법은 조금 특이했다. “오늘 배운 것을 모두 외워 알지 못하면 가시나무채찍으로 어깨가 으스러질 때까지 때리시오”라는 육탄부형肉彈負荊공부법이다. 여몽은 글을 배운 후로 삼일이 지날 때마다 사람들이 눈을 비비고 그를 다시 봐야 할 만큼 지식이 일취월장했다. 여기서 그 유명한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고사가 생겨났다.

이 일 후로 여몽은 손에 지문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책을 읽고 쓰고를 반복했다 한다. 책을 읽고 쓰고를 반복한 이가 또 있는데 제갈량이다. 제갈량은 책사요 지략가임에는 분명하나 그가 일생에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자녀 교육이다.

아버지가 뼛골 쑤시게 노력해서 일궈놓은 업을 자식이 홀랑 말아먹는 것을 주변국가에서 봐 왔던 탓에 그는 누구보다도 자녀교육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는 아들에게 주는 계자서戒子書를 썼는데 이 글이 훗날 어느 버림받은 청춘의 영혼을 흔드는 한줄 경책이 될 줄이야.

어떤 불온한 청춘의 사내가 있었다. 국가로부터 하방조치당한 16세 겨울. 혹독히도 추웠던 그날, 빼앗긴 이름을 되찾고자 가마뙈기 같은 작은 토굴 안에서 추위에 덜덜덜 떨면서 서리서리 맺힌 한에 이빨을 빠드득빠드득 갈고 있을 때 무심코 봤던 제갈량 계자서戒子書의 한 문장, 비학무이광재非學無以廣才 비지
무이성학非志無以成學 배우지 않으면 재능을 넓힐 수 없고 뜻이 없으면 학문을 이룰 수 없다.

이 글을 보는 순간 심장이 멋 는 전율을 느꼈다 한다. 그래서 열악한 환경임에도 죽기 살기로 공부를 했다 한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그를 일러 시황제 시진핑이라 부른다.
남자가 뭔가를 하려면 우선 뜻을 세우라는 말이 있다. 성현 율곡께서는 격몽요결 모두冒頭에서 말한다. 선수립지先須立志, 모름지기 먼저 뜻을 세워라. 그렇다. 장동유제벽將東遊題壁싯구에 이르기를 남아입지출향관男兒立志出鄕關, 학약무성사불환學若無成死不還이라 했다. 남자가 뜻을 세워 고향을 떠났거늘 배움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고향땅 밟지 않으리. 얼마나 비장미 넘치는 말인가.

주역의 곤괘坤卦에 자강불식自强不息의 對句로 후덕재물厚德載物이라 했다. 덕이 쌓이면 세상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말이다. 좌구명左丘明은 자신이 눈이 멀어가면서까지 쓴 책 국어國語에서 후덕한 자는 하늘이 복을 주는데 복 받을 그릇이 되는지를 검증한 후 준다 했다.

11월 16일은 대학입시 날이다. 12년 동안 공부한 것을 검증받는 날이기도 하다. 학창시절을 지나온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도 비껴갈 수 없었던 그날, 결과에 따라 희비는 있겠지만 그건 단지 시작일 뿐이다. 시험 점수의 높고 낮음에 따라서 함부로 속단하지 말란 말이다. 장부의 일생은 관 뚜껑을 덮기 전까지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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