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환영의 그림책 이야기 /제9화-호랑이를 뒤집어라!①《뒤집힌 호랑이》(김용철, 보리2012)
■ 김환영의 그림책 이야기 /제9화-호랑이를 뒤집어라!①《뒤집힌 호랑이》(김용철, 보리2012)
  • 김환영 시민기자
  • 승인 2018.01.02 22:26
  • 호수 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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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소금장수·옹기장수·엿장수·숯장수·나무꾼
호랑이 뱃속에서 모두 모여 잔치가 벌어지고…

 

▲ 표지 ⓒ김용철, 보리

새해입니다. 격변의 한 해를 보내고 맞는 새해라 감회가 남다릅니다. 대대적인 국정농단으로 분노한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었고, 마침내 백성들은 허울 좋은 가짜 임금을 권좌에서 끌어내려 새 정부를 탄생시켰습니다. 정의가 불의를 뒤집은 역사의 위대한 한 장면이 아닐 수 없지요. 하지만 정의가 펄펄 살아 숨을 쉬려면 청산되어야 할 일들이 아직도 첩첩산중입니다. 그 어름에서 떠오른 그림책이 우리 옛이야기로 만든《뒤집힌 호랑이》(김용철, 보리2012)입니다.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많은 옛이야기 그림책이 그렇듯 그저 익살맞은 옛이야기의 하나쯤으로 여겼습니다. 더구나 내 눈에는 그림이 그닥 매혹적이지도 않았고 새로울 것도 없다 싶었지요. 그러다가 지난해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뒤집힌 호랑이’의 의미를 비로소 각성하게 되었습니다. ‘호랑이 뱃속구경’ 류의 이야기가 무얼 품고 있는지를 늦게나마 깨닫게 된 것이지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소금장수가 이 고개 저 고개 넘으며 소금을 팔러 다니다가, 또 한 고개를 넘으려는데 산만 한 호랑이에게 한입에 먹힙니다. 뱃속에 들어간 소금장수는 호랑이의 간이며 콩팥을 보고는 배가 고프던 참에 칼을 꺼내 고기를 떼어냅니다. 그리고는 호랑이 뱃속을 돌아다니던 숯장수를 불러 숯불을 피우지요.

고기 굽는 냄새가 풍기자 옹기장수도 오고, 엿장수도 오고, 나무꾼도 와서 한바탕 배불리 먹습니다. 그러자 호랑이는 벌렁 자빠져 죽게 되고, 호랑이가 쓰러지면서 벼락 치는 소리가 나지요.

그러다 소금장수가 정신을 차리고 빛 한 줄기를 발견하는데, 그곳이 바로 호랑이 똥구멍입니다. 소금장수가 긴 담뱃대를 쏘옥 내밀자 호랑이 꼬리가 걸리고, 뱃속에 있던 이들이 모두 달려들어 마침내 호랑이는 홀랑 뒤집어지고, 뱃속에 있던 이들은 와르르 쏟아져 나옵니다. 살려 줘서 고맙다고 가진 걸 다 모아 소금장수한테 주고, 그리하여 소금장수는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김용철의《뒤집힌 호랑이》는 담뱃대를 물고 소금 짐을 진 소금장수를 첫 장면에 보여준 다음, <장면2>를 펼치자마자 산보다 더 큰 호랑이가 혀끝으로 소금장수를 쭈욱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도입이 자못 과감합니다.

▲ 장면2 ⓒ김용철, 보리

이어지는 <장면3>에서는 ‘꿀꺽’ 하며 구불텅한 뱃속으로 넘겨버리고 있고요. <장면4>부터 <장면12>까지는 호랑이 뱃속 상황인데, 다름 아닌 뱃속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그림을 사각의 틀 안에 가두고 있습니다.

 

 

▲ 장면5 ⓒ김용철, 보리

그런데 호랑이 뱃속 장면이 그야말로 환상입니다. 마치 성탄절을 즈음해 거리를 수놓던 색색의 작은 전구들처럼 반짝반짝하게 그려놓고 있지요. 여느 범부처럼 어수룩하게 생긴 소금장수가 마치 곱창 집에 온 것처럼 대롱대롱 매달린 장기들을 칼로 쓱쓱 떼어냅니다. 그러자 어느 구멍에서 숯장수가 나타나고, 이 둘은 숯에 입김을 후후 불어 고기를 굽지요. 모락모락 김이 나는 그림은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고 배가 고파집니다.

 

그러자 또 다른 구멍에서 누군가가 등장하고, 마침내 “옹기장수도 오고, 엿장수도 오고, 나무꾼도 와서 한바탕 배불리 먹”게 되는데, 화면에 등장한 인물들의 면면이 참 가관입니다. 글에는 자세히 쓰고 있지 않지만 그림에는 강아지, 토끼, 노루, 멧돼지에다 군침을 흘리며, 염주를 주렁주렁 목에 건 스님까지 고기 굽는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옵니다. 호랑이 뱃속에서 그야말로 잔치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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