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환영의 그림책 이야기 /제9화-호랑이를 뒤집어라!②
■ 김환영의 그림책 이야기 /제9화-호랑이를 뒤집어라!②
  • 뉴스서천
  • 승인 2018.01.10 16:51
  • 호수 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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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뱃속에 있던 사람들, 뱃속을 뒤집다

혼신의 힘을 다해 ‘빛-부활’의 세계로 탈출
장면10 ⓒ김용철, 보리

하지만 곧이어 역전이 일어나지요. 호랑이 뱃속의 디룽디룽하던 간이며 콩팥에 허파까지 떼어 구워먹었으니 호랑이가 성할 리 있겠어요? 벌렁 자빠져 죽으며 뱃속에 있던 이들이 엎어지고 쓰러지면서 잔치판은 깨지고 말지요.

마침내 소금장수가 정신을 차리고, 호랑이 뱃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빛’ 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담뱃대를 빛이 새어 들어오는 똥구멍 쪽으로 내밀어 마침내 호랑이의 꼬리에 거는 데 성공합니다. 이어 모두가 달려들어 호랑이 꼬리를 잡아당기게 되고, “잡아당기고 또 잡아당기니까” 마침내 “호랑이가 홀랑 뒤집어”지게 되지요.

그러자 “뱃속에 있던 사람들은 우르르 쏟아”져 나온 백성들은 모두 어울려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스님은 목탁을 두드리고 할머니는 손주를 등에 업은 채 대동 세상을 즐겁게 노래합니다. 토끼도, 강아지도, 노루도, 멧돼지도, 함께 춤을 춥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호랑이 가죽을 나누어 갖고 모두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데, 토끼들은 호랑이 가죽으로 목도리를 해 두르고, 아기 업은 할머니는 포대기를 해 아기를 업고 있으며, 엿장수는 엿판 멜빵을 호랑이 가죽으로 멋지게 둘렀습니다.

주인공인 소금장수는 지게 가득 호랑이 가죽을 짊어진 채 맨 위에 엽전 꾸러미와 초록색 술병을 살짝 올려놓고 있고요. 주인공인 소금장수는 첫 장면에서처럼 여전히 그 담뱃대를 물고 어디론가 떠나는데, 동자가 소금장수와 동행하며 그림책은 행복하게 문을 닫습니다.

어떤가요? 어찌 보면 범범한 그림책의 하나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동일한 유형의 다른 그림책들을 보면서, 왜 《뒤집힌 호랑이》가 머릿속에 떠올랐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대개의 판본은 ‘호랑이 뱃속’ 부분만 강조되어 이 이야기의 알맹이를 느끼기에는 어렵겠다 싶었고, 그 ‘뒤집기’ 또한 자력이라기보다는 다소 수동적으로 묘사되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림쟁이 눈에 가장 걸리는 대목은, 호랑이 모가지에 밧줄을 건 채 뱃속으로 들어간다는 설정이었어요. 이는 그림으로 그리기에도 무리인 데다가, 호랑이 뱃속에서 호랑이 모가지를 당겨 호랑이를 뒤집는다는 게 도무지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호랑이가 생똥을 싸 뱃속에 있던 이들이 밖으로 튕겨져 나오게 될 뿐, 호랑이는 뒤집어지지 않아요. 결국 통쾌한 전복-뒤집기가 아니라 결말 부분이 다소 수동적으로 다가옵니다. ‘뒤집다’의 의미는 말 그대로 안과 밖을, 앞과 뒤를, 위와 아래를 뒤집어 전혀 새롭게 한다는 말이니, 이 이야기의 핵심 화소가 아닐는지요.

이러한 속에서 김용철의 《뒤집힌 호랑이》는 단연 눈에 띕니다. 이 그림책이 획득하고 있는 덕목은 무엇보다 본질에 닿아 있는 서사구조가 아닌가 싶어요. 그림들도 이야기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수수합니다.

주인공은 다만 장삼이사 가운데 한 명의 행색일뿐, 어떠한 경우에도 영웅적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먼저 ‘호랑이 똥구멍-빛’을 발견해 앞장서지만, 그렇다고 소금장수의 이러한 행동들에 화가는 영웅적인 후광을 부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화가가 의식했건 아니건 이러한 표현들이 모여 정서적, 심리적 부담감을 덜어내며, 그림책을 더없이 서민적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장면3 ⓒ김용철, 보리
장면13 ⓒ김용철, 보리

그렇다면 화가는 이 이야기가 품고 있는 ‘불온함’을 의식하고 있었을까요? 내 생각에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호랑이 뱃속에 있던 이들이 힘을 합쳐 호랑이를 뒤집는 <장면13>에서 하나의 단서를 보게 됩니다. 호방하게 그려진 <장면13>은, 그러나 소금장수가 호랑이에게 먹히는 <장면3>과 동일한 구성에 동일한 배경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앞자리와 뒷자리에 놓여 책 전체에 수미일관한 안정감을 주기는 하나, 호랑이에게 ‘먹히는’ 장면과 호랑이를 ‘뒤집는’ 장면을 동일하게 처리한 것이지요.

화가는 두 장면의 이러한 공통점에 큰 문제를 느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렇게 하더라도 객관적 표현이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고, 마침내 사각 틀도 벗었습니다. 하지만 호랑이에게 ‘먹히는’ <장면3>과 호랑이를 뒤집고 ‘새롭게 태어나는’ <장면13>은 각각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장면이니 그 의미는 전혀 다르겠지요. 하여 예컨대 <장면13>을 지금과 달리 컴컴한 배경으로 그렸다면, ‘어둠-죽음’을 ‘먹고’ 혼신의 힘으로, 울력으로 벗어나 ‘빛-부활’의 세계로 탈출한 <장면14>의 의미가 좀 더 각별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지요.

장면14 ⓒ김용철, 보리

하지만 이러한 생각도 여러 해석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릇 좋은 작품은 천천히 발견되기도 하며, 해석의 여지가 풍부해 한마디로 단언하기를 거부하는 공통점이 있으니까요. 그림책 또한 볼 때마다, 상황과 처지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기도 하니 그저 마음 가는대로 즐기면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촛불광장이 일깨워준 ‘뒤집힌 호랑이’의 의미를 다시 새기며 옛이야기의 ‘당대성’을 생각해 봅니다. 산 만한 호랑이를 뒤집는 이 유머러스하고 낙천적인 그림책을 그려내기 위해 화가는 17년이 걸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화가의 노고 덕분에 독자들은 정서적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는 걸 테고요.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엄정합니다. 우리의 형편을《뒤집힌 호랑이》에 빗대자면, 아마도 <장면11>과 <장면12>의 어디쯤이 아닌가 싶어요. 마침내 ‘빛’을 발견했으니 힘을 모아 “잡아당기고 또 잡아당”기고 있는 중이되, 그림책과는 달리 ‘호랑이’는 아직 완전히 죽지도 뒤집히지도 않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새해입니다. 모쪼록 어둡고 구석진 자리마다 빛이 가득 깃들기를, 행운이 늘 함께 하기를 손 모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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