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그게 책을 읽은 청춘의 자화상이다
■ 송우영의 고전산책/그게 책을 읽은 청춘의 자화상이다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8.01.31 14:29
  • 호수 8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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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시민기자
송우영 시민기자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그의 제자 초정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 두 책의 열쇠 말은 이용利用, 후생厚生, 정덕正德이다. 이는 서경書經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 편篇에 신하 우禹가 순舜임금에게 국가 정책을 간하는 장면에 나오는 말인데 오직 덕으로써만이 옳은 정치를 할 수 있고<德惟善政> 정치의 목적은 백성을 잘 보양하는 데 있으며<政在養民> ... 바른 덕으로 일상생활을 이롭게 한다면<正德利用> 백성의 삶은 넉넉해 오히려 화목해진다.<厚生惟和>가 원문이다.

이때 당시 우의 아버지 곤이 치수관리의 최고위직 벼슬아치인데 물 관리를 못해 홍수로 백성이 죽는 피해가 컸다. 이에 책임을 물어 순임금은 우의 아버지 곤의 모가지를 뎅강 잘라버린다.

이를 보고 자란 우는 목숨 걸고 공부를 해서 기어이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시켜놓는데 여기서 인류 최고의 덕목이라는 글자 효孝가 시작된다. 효라는 말은 허신許愼 설문해자說文解字를 들먹이지 않아도 “나는 아버지의 자식이다”라는 말이다. 불초한 자녀가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떤 딸이 있었다. 아버지는 딸이 태어나는 태부터 감옥을 들락거렸다. 딸은 놀이동산 가는 횟수보다 감옥으로 아버지 면회 가는 날이 더 많았다 한다. 학교 친구들은 감옥쟁이 딸이라고 따돌림 한다. 그럴수록 딸은 청장관의 자경自警격인 무인편으로 분을 삼키며 공부만 한다.

딸이 사춘기를 지나면서 뒤통수를 치는 생각 하나를 하게 된다. 아버지가 무슨 죄를 얼마나 지었기에 눈만 뜨면 감옥에 가는가.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리라. 이를 악물고 더 가열차게 공부만 했고 검사가 되어 첫 출근하는 날 아버지를 잡아가던 그 악랄한 부장검사 왈, “나, 너희 아버지께 개인 감정은 없었다.”

이 말을 듣고 검찰청 외진 곳 소나무아래서 남이 들릴까봐 어금니를 깨물고 울음을 삼키며 울었다 한다. 이 일이 있은 후 아버지가 두 번 다시 잡혀가는 일이 없었다 한다. 이게 자식이다.

어려서는 부모가 자식을 돌보고幼子顧父 부모가 늙으면 자식이 부모를 돌봐야 한다<치사연자고致仕然餈餻>그런데 여기서 문득 방정맞은 생각 하나. 많은 사람들이 분할 때마다 봤다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무인편戊寅篇이다. 이는 청장관 이덕무가 17세 때 박제가가 냉면 세 그릇을 먹고 보신탕補身湯까지 실컷 먹고 나서 “이제야 조금은 간에 기별이 간다”<기별奇別이란 말은 승정원 기별청奇別廳에서 유래됨>는 말을 듣고 나서야 어마어마한 식욕에 깜짝 놀란 후 자신을 경계하려고 쓴 글이다.

“선비의 자식<士子>은 마음 밝히기를 거울같이 해야 하며<명심여감明心如鑑>몸 규제하기를 먹줄같이 해야 하나니<율신여승律身如繩>거울은 닦지 않으면<감부마鑑不磨>먼지가 끼기 쉽고<칙진이오則塵易汚>먹줄이 바르지 않으면<승부직繩不直>나무가 굽기 쉽듯이<칙목이곡則木易曲>마음이 밝지 않으면<심부명心不明>욕심에 저절로 가려지고<칙욕자폐則慾自蔽>몸을 규제하지 않으면<신부률身不律>게으름이 저절로 생겨난다<칙타자생則惰自生>.”

이 말은 사춘기 청춘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명문이다. 요즘시대에 누가 이런 글 읽느냐며 눈 부라리겠지만 이하李賀는 고헌과병서高軒過並序 마지막 구절에서 말한다. 아금수시부명홍我今垂翅附冥鴻내가 지금은 기러기 따위를 부러워하지만 타일불수사작룡他日不羞蛇作龍 훗날 용이 되면 뱀처럼 살던 날조차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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