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스러지는 공공의식, 만신창이가 된 도서관 서적
■모시장터/스러지는 공공의식, 만신창이가 된 도서관 서적
  • 뉴스서천
  • 승인 2018.02.07 00:20
  • 호수 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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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양 칼럼위원
박자양 칼럼위원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및 빅데이터 운영 등 촌각을 다투어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핵심으로, 로봇공학과 생명과학이 그 접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거센 흐름에 우리는 이미 자의든 타의든 합류했다.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막강한 대세임에 인류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우려 역시 공존한다.

이즈음 누구보다 한 발 앞서 통합적 시각으로 인류의 미래를 내어다 본 학자가 있으니, 수년 전 베스트셀러 ‘사피엔스’로 유명세를 탔던 ‘호모데우스’의 저자 유발하라리다. 서천 군민의 세상소리에 대한 열망이 지극했던지 서천도서관에서는 벌써 ‘호모데우스’를 구입 비치해 놓고 있다. 도서관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날따라 이렇게 반갑고 고마울 데가 없었다.

나 역시도 세상소리에 귀가 그리 두텁지 못한 터라 서둘러 책을 열람해보니 대출중이다. 당연하다. 대출예약을 하고 며칠을 기다리다 드디어 책을 빌리러 약간은 들뜬 기분으로 도서관행을 서둘렀다. 그리고 사서에게서 건네받은 책을 본 순간 멍해졌다.

수십 년 전 대개의 가정집엔 푸세식 변소가 대세이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 때는 일을 본 후 뒤처리를 위해 오락용 주간지 같은 헌 잡지를 두고 찢어내어 쓰거나 신문지를 적당 크기로 잘라 비치하곤 했는데, 하필 신간 ‘호모데우스’를 받아들며 왜 뜬금없이 푸세식 변소가 떠올랐을고. 책장 사이사이 면엔 무언지 모를 액체를 쏟아 적신 후 성의 없이 말린 얼룩진 흔적들로 그득하다. 그로 인해 책은 본래의 제 두께보다 반은 더 부풀어 있었고, 위아래 가릴 것 없이 책장은 여기저기 접히고 더럽혀져 꼴이 말이 아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이가 이 책을 보았기에, 아니 아무리 많은 사람이 책을 보았다 한 들 어찌 이 꼬라지가 되었을까. 아니면 많은 사람이 본 것으로 이 지경을 합리화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The tragedy of commons’는 ‘공공재 또는 공유자원의 비극’이란 의미로 20세기 중반 한 생물학자에 의해 제시된 개념이다. 말 그대로 누구의 소유도 아닌 공공의 물건을 소중히 하지 않는 마음들이 빚어낸 사단(事端)이다.

개념의 등장은 겨우 반세기 전이지만 내 것이 아닌 물건을 내 것처럼 아끼지 않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익숙한, 아니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니냐는 반문을 받을지도 모를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고 보면 이해못할 일도 아니다. 공동체적 가치나 무책임한 이기주의를 논하고자 함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대개의 선한 가치를 옹호하는 개념이나 주장에 충분히 익숙해져, 마치도 재래화장실에 오래 들어앉아 있으면 처음 들어갈 때 격하게 반응했던 후각이 점차 무뎌지듯, 무덤덤해지거나 어느 정도는 식상해져있는 건 아닐까.

호모데우스의 저자는 책의 전반에 걸쳐 꾸준히 근현대를 주름 잡던 인본주의의 한 분파격인 자유주의를 다가올 시대를 장악하게 될 이데올로기에 견주어지는 의식의 요체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가 기술인본주의에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될 새 천년에 들어선 우리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지며 의식으로부터 분리된 지능의 고성능화에 설핏 우려를 드러낸다. 어쩌면 우리는 무의식중에 단순한 지능의 업그레드를 위한 허접한 지식 쓸어모으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 오늘은 책을 반납하는 날이다. 이리 저리 닦고 일일이 펴서 누르고 다독거려 봐도 한 번 구겨진 책은 좀처럼 모습을 바로 잡기 쉽지 않다. 공공의 물건을 제 것만큼은 아니어도 제 것이 아니란 이유로 험히 다루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부러 내팽개치지 않아도 조만간 머지않아 찌그러질 인간의식의 한 자락을 아직은 붙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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