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8.03.07 21:30
  • 호수 89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뜻을 가진 사람은 비겁해지지 않는다

진晉나라 육성받이 중항씨中行氏 범씨范氏 지씨智氏 한씨韓氏 위씨魏氏 조씨趙氏, 여섯 대부가 임금인 진후晉侯의 권력이 약한 틈을 타 득세하여 진후晉侯를 능멸하며 제멋대로 국정을 농단하던 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공격하여 무너뜨리기에 이르렀다.

중항씨를 섬기던 예양豫讓은 범씨가 중항씨를 무너뜨리자 범씨를 섬겼고 지씨가 범씨를 무너뜨리자 또다시 지씨를 섬겼다. 위기를 느낀 조씨趙氏는 ‘순망치한脣亡齒寒’(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 5년에 했던 말)의 고사를 들먹이며 한씨韓氏, 위씨魏氏를 끌어들여 연합, 지씨의 우두머리 지백智伯의 가문을 멸절시킨다.

그러고는 지백의 머리를 끊고 해골을 만들어 옻칠해서 요강으로 쓴다.<조양자趙襄子칠지백지두漆智伯之頭이위음기以爲飮器> 이런 사실을 전해들은 예양은 한때 자신이 섬기던 주군을 능욕하는 조양자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하고<지백지신예양智伯之臣豫讓욕위지보구欲爲之報仇>이름을 갈고 변장해 조씨집 변소 벽을 바르며 기회를 엿보다가 들키고 말았다. 조양자는 그가 의인이라며 풀어주었으나 예양은 포기하지 않는다.

이번엔 들키지 않게 더욱 철저히 몸에 옻칠과 옻독으로 외모를 흉하게 변형시켰으며<우칠신위나 又漆身爲癩>입에는 뜨거운 숯을 삼켜 벙어리처럼 해서<함탄위아 含炭爲啞> 다리 아래에 숨어 조양자를 죽일 기회를 노렸지만 또 들통이 나서 붙잡혔다.
조양자는 예양의 행위가 일관되지 못함을 꾸짖으며 말한다. 조양자 묻기를 “너는 처음부터 지씨의 사람이 아니다. 처음에는 중항씨를 모시다가 중항씨가 범씨에게 죽자 범씨의 사람이 되었다.”
예양이 답하기를 “그렇소”
조양자가 묻기를 “또 범씨가 지씨에게 죽자 너는 범씨를 위해 복수하기는커녕 오히려 범씨를 버리고 지씨를 섬겼다.”
예양이 답하기를 “그렇소”
조양자가 묻기를 “지금 지씨는 내손에 죽었다. 그렇다면 너는 이제 지씨를 버리고 나를 섬겨야 네 행위가 일관 되거늘 왜 유독 지씨만을 위해 나에게 그토록 모질게 복수를 하는가?”
예양이 답하기를 “내가 중항씨와 범씨의 사람이었을 때 그들은 나를 평범한 신하로 대우했소. 따라서 나는 그들이 죽었을 때도 평범한 신하로서 예의를 마치고 새 주군을 섬겼던 것이오. 그러나 지씨 무휼지백은 내가 앞서 섬기던 주군과는 분명 달랐소. 그는 대부였지만 나를 제후급 신하로 대우했으며 나의 말과 행동을 무조건 믿어주었소.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으며 여자는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하는법이오.<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여위열기자용女爲說己者容. 史記卷八十六刺客列傳第二十六> 일이 이러하거늘 어찌 그를 배반하오리까. 죽기 전에 한 가지 청이 있소. 내가 이대로 죽어 저승에 가면 주군을 뵐 면목이 없을 터이니 당신이 군자라면 나로 하여금 당신의 옷 한조각이나마 베어서 주군의 원수를 상징적으로나마 갚게 허락해주오.”
이에 조양자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 던져주니 예양은 그 옷이 공중에 뜨기가 무섭게 몸을 날려 독고구검파초호 1초식 7획을 휘두르니 옷은 붉은 피를 흘리며 산산히 조각되어 떨어졌다. 예양의 칼이 스스로 자신의 심장을 찔러버린 탓이다.

광해군이 왕노릇하다가 도중에 쫒겨나 비참하게 죽었다. 그 누구도 그의 죽음 앞에 눈도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되려 욕했다. 권좌에 있을 때는 그토록 아양을 떨던 신하들조차도... 그의 죽음에 천하가 떠나가도록 통곡하며 슬퍼한 이가 있었으니 오리 이원익이다.
혹자가 물었다. 그러다 한 패로 몰려죽으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이에 오리 이원익은 답한다. “그래도 한 때 임금으로 모시던 분인데 그분이 저 지경이 됐다고 해서 모른 체 한다면 그게 어찌 사람의 도리라 하겠는가.”

인간은 삶에 대해서 비겁해질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 비겁했다고 해서 누구하나 비난할 사람 또한 없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서 비겁해지지 않는 이도 가끔은 있다. 뜻을 가진 사람들이다.<司馬光 資治通鑑卷之一 小學稽古章>그래서 율곡은 격몽요결擊蒙要訣 입지장立志章에서 왈. 모름지기 먼저 뜻을 세워라.<初學先須立志>

<참고> 요강
음기飮器는 오늘날 한자로 읽는다면 음식을 담는 그릇이지만 그 당시 독법으로는 음飮이 마실음이 아니라 물댈음<葉適:〯績溪縣新開塘記. 戰國策趙卷之一>으로 오줌 담는 그릇 즉 요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