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 산책
■ 송우영의 고전 산책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8.03.21 17:07
  • 호수 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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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선비공부 법칙

조선시대 선비 공부는 19년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하루 3시간씩 일주일이면 20시간 그렇게 10년 동안이면 1만 시간... 여기에는 초인적인 의지나 가공할 천재적인 두뇌보다는 황동규 시인의 ‘삼남에 내리는 눈’ 시구詩句처럼 끈기, 반복, 집요함이 요구되는 시간들이다.

며칠 전 타계한 천재 과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30세 이전까지의 공부 시간을 통틀어 일천 시간도 안된다 했다. 30세가 넘어서부터 공부를 시작했다는 말이다. 16~17세기 조선의 지식인 유몽인은 자신의 책 <어우야담於于野譚>에서 “무릇 사람이 어떤 일을 함에는 마땅히 19년을 기한으로 삼아야 한다”라고 명토박는다. 노나라 역사가 좌구명은 실명되고서야 국어책을 쓰는데 ‘국어권1주어상편15문장’國語卷1周語上篇15文章은 진문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내사內史 흥興이 진晉 문공文公은 틀림없이 패자覇者가 될 것임을 논했다.<내사흥론진문공필패內史興論晉文公必霸>”
이 문장은 행간으로 읽어야 하는 부분으로 해석하면 “진 문공은 생명의 위협 속에서 옛책<尙書>을 놓지 않고 천하로 도망 다니며 살아남은 지 19년 만에 진나라로 들어와 춘추오패 중 두 번째로 패자가 됐다.”
한서漢書소무전蘇武傳에서 소무는 흉노족에게 잡혀 눈을 녹여먹고 들쥐를 잡아먹으면서도 옛책<古文尙書>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마침내 19년 만에 한나라로 돌아와 기린각麒麟閣에 초상화를 올렸다. 여기서 "어안魚雁" 혹은 "쌍리雙鯉"라는 단어가 소식을 전하는 편지라는 유명한 고사가 생겨났다.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에 따르면 한무제漢武帝의 명命을 받은 장건張騫은 서역西域에 실크로드를 개척하며 읽은 책이 상서尙書 반경盤庚편인데 19년 만에 돌아와 제후가 되어 명성이 천하에 떨쳤다. 그때 그가 들고 온 옥이 화전옥和田玉으로 천자문千字文에 나오는 ‘금생려수金生麗水 옥출곤강玉出昆岡’에서 곤강에서 나는 옥이 화전옥이다.
오월춘추吳越春秋에서 범려范蠡는 지독히 가난했는데 19년 공부 후 출사해 재상이 됐는데 재상 직위를 내려놓고 타국에 가서 거부가 되는데 19년이 걸렸고 사마광司馬光은 천하제일문장이 되는데 19년이 걸렸으며 그 후 낙양洛陽에서 19년을 더 공부한 후 마침내 재상이 되었다.

조선의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은 진도珍島에서 19년의 귀양살이를 공부로 일관한 결과 정승으로 복귀되었으며 다산 정약용은 강진康津에서 18년간의 법적 유배형을 마치고 19년 되던 해에 자신이 쓴 책을 정리하여 장장 오백여권에 달하는 ‘여유당전서’라는 불후의 명저를 남겼다. 정조 이산은 <弘齋全書> 卷百七十五.日得錄十五.訓語.二에서 말한다. “무릇 세상일이란 모두 그 때가 있다<대범천하사大凡天下事 개유기시皆有其時>”

시인 정호승은 이를 “견딤은 쓰임을 낳는다”는 말로 표현했다. 하루에 만리를 간다는 방병조호마房兵曺胡馬의 1인자 두보는 “19년을 견뎌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했다”<十九苦克無不成>
그렇다면 10년이나 20년의 법칙이 아닌 19년의 법칙인가. <주역> 64괘卦를 구성하는 효爻는 반드시 여섯 개가 되어야 변한다. 이것이 세 번 변해 19가 됨은 음양의 조화로 서양은 음, 동양은 양이다.

성경책에서 모세 광야 40년, 예수의 광야40일, 예수 공생애 시작 30세, 이런 식으로 이뤄지지만 동양은 9.19.29. 아홉수로 이뤄진다. 그래서 서양의 10년은 음이고 동양의 9년은 양으로 동서양의 합이 19년인데 19년은 천지가 한 차례 순환하는 기간으로 윤달을 장장 일곱번 넣어야 이루어지는 기간이다.

19년이라는 기간은 사람의 몸이 꽃을 피고 열매를 맺는 기간이다. 문제는 꽃피고 열매 맺기 까지 어떤 책을 읽으며 견녀낼 수가 있느냐이다. 시경 왈<시왈詩曰>처음은 다 있지만<미불유초靡不有初>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드물다<선극유종鮮克有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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