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하다 가야할 것들
우리가 사랑하다 가야할 것들
  • 최현옥
  • 승인 2003.09.26 00:00
  • 호수 1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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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벗이 며치나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 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 윤선도의 오우가 중에서 -

기산면 신산리 이하복 생가. 그곳에는 고산 윤선도처럼 자연을 벗 삶아 살아가는 이기원(73)씨가 있다. 이하복씨의 맏아들인 이씨는 3년 전부터 생가를 관리하고 있다. 서울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단국대 전임강사, 국방대학원 교무처장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 손만 뻗으면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음에도 불구, 그는 단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이 집은 저의 영원한 숙제입니다. 이곳에서 실천을 통해 지역의 생활문화를 바꾸고 싶거든요. 내가 빈 농가를 홀로 지키는 이유가 농촌의 문화 가치를 창조하기 위함이라면 너무 거창한 가요?”
이제는 말쑥한 정장보다 허름한 작업복이 더 잘 어울리는 이씨. 기자의 방문에 마루에 걸터앉은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농군이다. 아침 6시부터 시작되는 집 관리 업무와 텃밭 채소 가꾸기, 꽃 가꾸기 등 하루해가 짧기만 하다.
그러나 끊이지 않는 관광객들에게 옛것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시골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 점점 메말라 가는 인간의 정서에 한 줌의 생명수가 되는 듯 해 보람이 크다.
“처음 시골에 내려왔을 때 오해도 많았어요. 그런데 묵묵히 일을 해 나갔고 지역 사람들의 의식도 바뀌더라 구요”
이씨가 가옥에서 처음 한 일은 장미, 국화 등 꽃가꾸기였다. 부가가치가 없는 일에 손가락질도 당했지만 화려한 꽃들이 사계절 다투어 피어나자 꽃밭에도 채소를 심던 주민들에게 변화가 생겼다. 현재 신산리 주민의 가정에는 국화가 없는 집이 없을 정도가 됐다. 작은 변화지만 농촌의 생활문화를 자연스럽게 바꿔 나가는 것, 이씨가 서두에서 집을 통해 풀어가야 할 숙제가 있다는 것이 바로 이것인 듯 싶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컴퓨터와 핸드폰을 제외한 모든 대중매체는 단절하고 살아간다며 인터뷰를 거부하던 이씨. 가옥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공간을 조금 내보인다.
“이 집은 19세기 후반에 건립 됐는데 20세기 초 사랑채와 아래채, 광채를 지으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집의 안마당을 중심으로 앞쪽에 대문간이 일자형이며 전형적인 농가의 모습이지… 방은 문을 따로 내지 않고 전면에만 유일하게 쌍여닫이가 있는데 이런 간살잡이는 이 지방에서만 가끔 보이는 형식이야…”
그의 설명을 듣다 문득 이하복씨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 질문을 던지자 생가를 찾는 사람들이 종종 하는 질문이다며 가옥이 전형적인 농가의 형태를 그대로 갖추고 있어서 민속자료로 지정된 것 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다.
집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하던 이씨,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질문을 한다.
“출세 좋아하세요? 그거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 명예욕이 깊은데 사실 그것 아무것도 아닙니다. 생가로 지정되면 대부분 그 분야를 생각하게 되죠. 저희 아버지는 제가 보기에 명예를 얻거나 자신의 영달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지만 이 세상을 뜨겁게 사랑하고 간 분만은 확실합니다. 마당에 써있는 비문 봤죠. ‘왔다 사랑했다 그리고 갔다’ 그의 일생을 함축한 말이죠”
이씨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쌀 2천 석을 수확할 수 있을 정도의 토지와 지방 민속문화재로 지정될 정도의 가옥에서 살았지만 청빈한 선비와 같은 사람과 같았다.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부모를 둔것에 부러움을 샀지만 사실 자식들에게는 굉장히 엄했고 경제적 도움 역시 전무했다.
사실 이하복씨는 지역에서 익히 알려진 대로 육영사업에 관심이 많아 동강중학교 설립했으며 농협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가마니를 공동 생산해 판매한 조합을 운영하기도 했다.
과거 동강중학교 이사장으로 활동했던 이씨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농촌 인구감소로 학생수가 많이 줄었지만 아버지의 가업이었던 만큼 단 1명의 학생이 남더라도 진정한 교육의 장을 만들 것을 약속한다.
생가를 보존해 후대들에게 농경사회의 문화를 보여주고 싶다는 이씨는 과거 부모님이 사용하던 농기구를 비롯해 여러 가지 골동품을 전시해 학습의 장으로 만들 계획도 가지고있다. 집은 인간의 전통과 문화가 숨쉬는 삶의 터전이며 생활이 그대로 투영되는 거울이다는 이씨는 송죽과 명월을 벗삼아 농가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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