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 산책
■ 송우영의 고전 산책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8.04.25 15:07
  • 호수 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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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문가閥門家 세 모녀의 인정 투쟁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초나라 섭 땅의 목민관 섭공葉公이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에게 공자는 어떤 분인가라는 돌직구 질문을 날렸다. 그러나 미처 답을 듣지 못하고 돌아온 일이 있다. 후일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공자는 제자 자로에게 불편한 어투로 왈, 자네는 왜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공자는 공부를 했다하면 배고픔을 잊고 공부가 즐거워 근심도 잊으며 몸이 늙어가는 것도 모른 채 공부했다고.<섭공문공자어자로葉公問孔子於子路 자로부대子路不對 자왈子曰 여해불왈女奚不曰 기위인야其爲人也 발분망식發憤忘食 낙이망우樂而忘憂 부지노지장지운이不知老之將至云爾. 논어論語술이述而>”
이 문장은 공자께서 공부관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밝힌 유일한 글이다. 공자는 자신을 권력자나 부자 또는 거창한 스승이나 상당한 지식의 학자로 여긴 것이 아니라 그냥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 정도쯤으로 본 것이다. 이것이 공자의 진면목이다.
맹자 책에 전하는 글을 보면 공자는 제자인 자공子貢에게 좀 더 살을 붙여서 말한다. 자공은 나라를 몇 개 쯤 살만큼의 부자로 자칫 부자들이 무심히 저지를 수 있는 갑질의 폐해弊害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자공에 대한 공자의 말은 꽤 완곡하다.
“나는 다만 배움에 싫증내지 않고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을 뿐이다<아학불염我學不厭 이교불권야而敎不倦也. 맹자孟子공손추公孫丑>”
자공이 천하의 돈을 긁어모아 거부의 반열에 오를 때 공자가 해준 말이다. 속뜻은 돈보다 우선하는 것이 학學임을 에둘러 말함이다.

반면에 공자의 제자 안회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는다. 그럼에도 그는 결코 부자 자공에게 구걸은커녕 쌀 한 톨 얻어먹지 않았다. 안회는 분명 가난했다. 그러나 가난이 그의 삶은 불편하게 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러시아 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처녀작인 ‘가난한 사람들’을 탈고 하면서 왈, “가난은 불편할 순 있어도 불행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안회의 삶에는 가난이 불행은커녕 불편꺼리조차도 못 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자는 논어論語 옹야雍也편에서 안회를 칭송하기를,
“한 줌의 밥과 한 움쿰의 물만 있을 정도의 가난한 삶을 산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거늘 안회는 즐거움을 잃지 않는구나. 어질도다 안회여<일단사一簞食 일표음一瓢飮 재누항在陋巷 인불감기우人不堪其憂 회야回也 불개기락不改其樂 현재회야賢哉回也.>”
지독한 생활고에 안회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 안회를 자공은 어려워했고 늘 조심했다고 논어는 기록한다. 어느 날 공자가 자공에게 말했다. “너와 안회 중에 누가 더 나으냐<자子 위자공謂子貢 왈曰 여여회야女與回也 숙유孰愈>” 자공이 대답하기를 “제가 어찌 감히 안회를 바라볼 수나 있겠습니까<대왈對曰 사야賜也 하감망회何敢望回>.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회야回也 문일이지십聞一以知十>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 밖에 모릅니다<사야賜也는 문일이지이聞一以知二>”
공자가 말한다<자왈子曰> “너는 안회 수준에 못 미친다<불여야弗如也> 나와 너 둘이 합쳐도<오여여吾與女> 안회에게 미치지 못한다<불여야弗如也. 論語公冶長>”

이쯤에서 자공에 대해 몇 줄 설명이 필요하다. 자공은 스승인 공자보다도 몇 십배 더 뛰어난 사람임에 분명하다. 그는 무인가 비공인 민간 외교관으로서 스승의 고향 나라인 노나라가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막기 위해 오나라와 월나라를 이간질 시켜서 장장 23년 동안이나 죽기살기로 싸우게 해서 결국 두 나라가 모두 망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이 전쟁을 역사는 와신상담의 오월춘추라 불렀다. 이렇게 으리으리한 자공이지만 안회에게 있어서는 그저 돈만 많은 자 정도일 뿐이다. 자공은 그가 쌓은 엄청난 부로 안회에게서 인정받고자 했지만 안회는 자공의 인정 투쟁을 죽는 날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 대한민국은 부자들의 갑질로 낙양의 지가가 한 것 올라갔다. 일찍이 김대중 선생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은 정치인은 측근이 웬수고 재벌은 자식이 웬수라는 명언을 남긴바 있다. 이런 자녀를 갖는 건 비극의 시작이며 두려움의 정점이다. 왜냐하면 저들은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없는 자녀는 성장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어둠이 두렵다지만 겪어본 사람은 안다. 성장하지 못한 자녀가 더 두렵다는 것을. 어둠이 두려운 건 괜찮지만 인생에서 진정한 비극은 빛이 두려워 질 때이다.
어느 돈푼깨나 있다는 세모녀의 돼먹지 못한 행실이 장안을 쩡쩡 울리고 있다. 세 모녀는 성장하지 못한 자녀이며 돈으로 어둠을 산 사람들이다. 그래서 빛이 두려운 거다. 저들은 어둠에서는 인정받지만 결코 빛 세상에서는 인정을 못 받기에 끊임없이 인정투쟁을 하고 있는 거다. 세상은 이를 갑질이라고 부르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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