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리에서 태어나 자란 ‘베이비부머’ 박근선씨
선도리에서 태어나 자란 ‘베이비부머’ 박근선씨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8.05.16 16:30
  • 호수 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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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 에세이 ‘이름없는 풀꽃처럼’ 출간

 

▲‘이름없는 풀꽃처럼’ 표지
▲‘이름없는 풀꽃처럼’ 표지

배가 고파 우는 아이야/울다 지쳐 잠든 아이야/장난감이 없어 보채는 아이야/보채다 돌멩이를 가지고 노는 아이야/네 어미는 젖이 모자랐단다/네 아비는 벌이가 시원치 않았단다/네가 철나기 전 두 분은 가시면서/어미는 눈물과 한숨을/아비는 매질과 술주정을/벼 몇 섬의 빚과 함께 남겼단다/뼛골이 부서지게 일은 했으나/워낙 못사는 나라의 백성이라서/하지만 그럴수록 아이야/사채기만 가리지 않으면/성별을 알 수 없는 아이야/누더기옷의 아이야

(중략)

그 누구도 믿지 마라/가지고 노는 돌멩이로/미운 놈 이마빡을 깔 줄 알고/정교한 조각을 쪼을 줄 알고/하나의 성을 쌓아올리도록 하여라/맑은 눈빛의 아이야/빛나는 눈빛의 아이야/불타는 눈빛의 아이야 <황명걸 한국의 아이부분>

이 시가 처음 발표된 때는 1965년이다. 시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이제 환갑을 훌쩍 넘기고 노후를 맞이하고 있다. 1955년 비인면 선도리에서 태어나 자란 박근선씨도 이 아이들 중 하나였다. 나름대로 하나의 성을 쌓아올린 그는 현재 서천읍 군사리에 살고 있다. 그가 최근 자전 에세이를 담아 <이름없는 풀꽃처럼>(도서출판 생각나눔)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인 유년시절부터 중학교 다닐 무렵까지 남의집 머슴살이와 품팔이를 하셨다. 아버지는 체구는 작으셨지만 쟁기질도 잘하고, 초가지붕도 세리시고, 마을에 잔치나 큰 일이 있으면 음식을 차려 내가는 과방 보는 일 등 그 당시 농촌에서 못하시는 일이 없으셨다”<위 책 18>

이처럼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막내로 태어난 덕분에 고등학교까지 마치고(서천고 20회 졸업) 1980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해 청양군지부와 서천군지부, 장항지점과 대천지점, 서천군청출장소 등에서 32년을 근무하고 2012년 퇴직했다. 큰 어려움이 없는 삶이었다.

그러나 책을 펼치면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가난했던 시절 60년대의 농촌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 당시 방굴 이모네 집 형편은 겨우 먹고 살만한, 그러니까 작은 텃밭과 서너마지기 정도 논농사를 지었다. 점심 때가 되자 손님이 와서 그랬는지 이모님이 하얀 쌀밥에 콩나물국과 갈치, 고사리나물 등 맛있는 음식을 많이 차려주셨다. 설이나 추석날 아니면 먹을 수 없는 하얀 쌀밥을 보자 어린 내 눈이 휘둥그래졌다. 시커먼 꽁보리밥만 먹다가 오랜만에 기름기가 흐르는 하얀 쌀밥을 먹게 되자 얼마나 맛있던지 밥 한 사발을 금세 다 비웠다.”

▲박근선씨
▲박근선씨

박근선씨는 퇴직 후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학창시절 꿈이었던 글을 쓰며,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바다낚시를 하고,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가까운 산을 오르며 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사리 물때가 되면 고향 앞바다 쌍도에서 소라와 골뱅이, 박하지(민꽃게)를 잡는다. 또한 젊은 시절 앞만 보고 사느라 소원하게 지낸 주변 친구들과 소통을 하고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전후 베이비부머로 태어난 그는 인복이 많아서 무난하고 순탄한 삶을 살아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보면 그가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격동적으로 흘러왔는지 알 수 있다. 저자의 기억력이 섬세한 문체로 되살려낸 한국의 현대사의 한 단면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서천의 생활사가 수록돼 있다. 은퇴를 앞둔 직장인이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려는 베이비부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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