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권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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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서천
  • 승인 2018.05.17 11:36
  • 호수 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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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떠나보내며
권기복 칼럼위원
권기복 칼럼위원

지난 510, 서천문학회인 <서림> 회원들의 카톡 방에 화들짝 놀랄 글이 실렸다. 지난 29년 동안 서천문학의 수문장 역할을 자처하면서 대들보이자 산 증인이셨던 윤병화 선생님께서 서천을 떠나 충북 괴산으로 이사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주 토요일에 임시 총회를 통하여 새로운 임원진을 구성하기 전까지 <한국문인협회서천지부> 지부장을 맡아서 이끌어온 분이었기에 그 충격은 어떤 말로도 형언하기 어려웠다.

잠시 2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다. 필자는 제주도에서의 4년간 교직 생활을 마치고, 고향을 찾아 서천으로 와서 3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고향에서의 생활도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되었고, 막 신혼살림도 차린 판이었다. 그 때에는 지방자치 시대를 맞이하여 지역 문학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날 때이기도 하였다. 필자는 제주도로 건너가기 전에 시도하였다가 교직 발령과 함께 묻어두었던 꿈을 다시 끄집어내었다. 바로 내 고향인 서천에서 문학 모임을 만드는 거였다.

필자 혼자서 처녀지에 문학 단체를 세운다는 것이 몹시 겁이 났다. 누군가 함께 나서준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리저리 알아보았다. 그 때에 어떤 분인가 기억나지 않지만, 윤병화 선생님을 찾아보라고 알선하여 주었다. 이래저래 떨리는 마음으로 윤병화 선생님이 재직 중이던 동강중학교로 전화를 하였다. 잠시 후에 선생님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통해 내 귀에 들렸다. 침착하면서도 또박또박한 음성이었다.

제가 윤병화입니다만, 무슨 일이죠?”

필자는 자신을 소개하고, 함께 서천에서 문학회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소견을 전했다.

저도 좋습니다. 언제 만날까요?”

그 목소리는 눈곱만치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하였다. 우리는 그 날 저녁 때 만나서 의기투합하여 일사천리로 문학회 조직을 진행하였다. 처음에는 문화 활동에 목말랐던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그래서 잠시 흔들릴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윤 선생님은 단호하게 방향 제시를 하였다.

우리는 문학 분야로 나아갈 것입니다. 다른 문화예술 활동을 생각하는 분은 뜻을 함께 하는 분들과 별도의 모임을 만들기 바랍니다.”

윤 선생님 말씀 덕분에 우리들은 19904월부터 <서림>이라는 문학 모임으로 출범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 다른 문화예술 단체들이 구성되어 지면서 오늘날의 <한국문화예술총연합회서천지부>가 존재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지난 세월 동안 문학 모임도 수많은 역경과 곤란을 겪었다. 필자도 <서림>이 출범한 지 2년 만에 고향에서의 교직을 접고, 객지 생활로 떠돌아야만 했기에 주변인에 불과한 회원일 뿐이었다. 그 사이에 바람 불면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비가 오면 우산이 되면서 알뜰살뜰하게 서천 문학을 키워 오신 분이 바로 윤병화 선생님이다. 당신은 교직에서 물러나더라도 문학과 함께 서천에서 여생을 지내겠다는 마음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고향 가까이에서 꿈에 그리던 풍경을 제공하겠다고 하니 막을 방도가 없음이 한스러울 뿐이다.

당신이 떠나도 서천문학회인 <서림>은 남아있다. <서림>이 남아있기에 당신의 발걸음도 종종 서천을 찾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지만 앞으로 파수꾼으로서의 당신 모습은 볼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돌아가야 하는 발걸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필자에게도 서천에 가면 윤 선생님이 계신다는 기억을 지워야하는 의식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윤 선생님을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그의 문학과 함께 허전한 마음 가득할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서천 문학을 염려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걱정은 묻어두고자 한다. 당신이 다져놓은 기반이 있기에 서천의 문학은 새 임원진과 함께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이다. 또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나오는 <서림문학>에서 여전히 당신의 글을 접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므로 언제까지나 윤 선생님의 건강과 건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보내드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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