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시민기자 송우영
  • 승인 2018.06.07 18:33
  • 호수 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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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학, 예수의 배움, 석가의 여시아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선생이 오열하며 지었다는 굴원屈原 초사楚辭풍의 시詩 ‘하담별곡荷潭別曲’이 있다.

“아버지 아십니까 모르십니까<부혜지부지父兮知不知>. 어머니 아십니까 모르십니까<모혜지부지母兮知不知>. 가문은 끝장났고<가문훌경복家門欻傾覆> 생사는 이렇게 갈렸습니다<사생금여사死生今如斯>. 남은 목숨 어떻게 부지한다 해도<잔천수득보殘喘雖得保> 큰일 하기는 이미 글렀습니다<대질차이휴大質嗟已虧>/중략/”
절규에 가까운 이 곡은 1801년 2월 9일 다산의 집안이 쑥밭된 신유박해辛酉迫害<천주교인색출말살사건> 연루 사건이다. 다산은 의금부와 사헌부를 오가며 고문을 당했고 매형 이승훈과 셋째 형 정약종은 대역죄로 저잣거리에서 참수斬首를 당했으며, 둘째 형 정약전은 신지도로 유배를 떠났다. 그리고 19일 후 옥에서 풀려난 다산은 경상도 장기(현 포항시 장기면) 땅으로 유배가 결정됐고, 유배 길에 오른 다산이 부모님의 산소에서 작별을 고하며 통곡을 하면서 부른 노래다<宋書律唱>.

부모의 죽음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천붕지괴天崩地壞’라 하고 자식의 죽음을 태양을 땅에 묻어 천지가 어두워졌다는 ‘상명喪明’이라 하고, 형제 혈육의 죽음을 ‘참척慘慽’이라 한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큰일 하기는 이미 글렀다는 ‘대질차이휴大質嗟已虧’다. 이 말의 속뜻을 근대유학의 거두 권우 선생은 ‘세불아연歲不我延’으로 세월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 다로 풀어냈다. 이는 주자朱子의 권학문勸學文에 나오는 말로 1연과 2연은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 배우지 않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물위금일불학이유래일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금년에 배우지 않고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물위금년불학이유래년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공부에 관한한 이보다 더한 명문은 아직 없으리라. 그 다음 줄이 저 유명한 일월서의日月逝矣 세불아연歲不我延으로 해와 달은 가나니 세월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공부에 관한한 공자孔子만한 분은 없지만 공자와 예수와 석가가 유일하게 공통적으로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게 딱 하나 있는데 “배우라”는 말이다.

공자는 논어 학이편 개권벽두부터 학이시습學而時習이라하여 배웠으면 틈틈이 복습하라고 했고, 예수는 마태복음12장42절에서 배우려 하지 않는 자들을 책망하시면서 “남방<에디오피아>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서 먼 나라에서 왔지 않더냐” 라며 말미에 배우지 않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물론 이 말은 영적으로 깊은 의미가 있겠지만 배움의 등가는 같다. 곧 공부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른다는 말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법 배움에는 반드시 값이 있다. 시바 여왕의 경우 배우는 값으로 금 120달란트<33.75kg>와 엄청나게 많은 보석을 냈다고 기록한다. <왕상 10:1-10> 보도에 의하면 2015년 투자의 귀재 워렌버핏과 3시간 동안 점심을 먹는 값으로 26억 원이 낙찰되었다고 한다. 이 점심 식사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식사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고는 하는데 시종의 눈에는 영웅이 안 보이는 법이랄 밖에.

불가에서는 여시아문如是我聞<아미타경>으로 시작한다. ‘이같이 내가 들었다.’ 라는 말인데 원뜻은 ‘딴소리 말고 가르침에 따르라’는 다소 고압적 주문이다. 공자의 학이시습이든 예수의 배움이든 석가의 여시아문이든 좌우간 배우라는 말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범부에 있어서 생활의 지혜는 아마도 ‘불치하문不恥下問’이리라. 성인이 아닌 다음에야 죽을 때까지 배워도 모자란다.

위나라 공어가 죽자 그의 시호를 문이라고 정했다. 사람들은 죽은 그를 칭할 때 공문자라고 했는데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이유를 묻자 공자 왈, “공어는 매우 영리하고 부지런하며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으므로 죽은 뒤에 시호를 문文이라고 한 것이다”라고 대답했다.<자공문왈子貢問曰 공문자孔文子 하이위지문야何以謂之文也 자왈子曰 민이호학敏而好學 불치하문不恥下問 시이위지문야是以謂之文也. 論語公冶長>

이제 불과 며칠 후면 군수를 비롯 각각의 의원이 선출된다. 선출자들은 자신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늘 군민의 생각을 묻고 배우는 자세로 군정郡政에 임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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