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 산책
■ 송우영의 고전 산책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8.06.15 14:15
  • 호수 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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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도 임금이 될 수 있다

논어 옹야雍也 편에 ‘가사남면可使南面’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공자께서 말씀 하신다. 염옹은 남면을 할 만하다.” 라는 말인데 남면南面은 임금이 정사를 볼 때 남쪽을 향해 앉아서 정치를 했던 것에서 유래된 말로 ‘남면을 할 만 하다’ 함은 곧 왕이 되어도 된다는 말이다.
자로나 염유, 자공 같은 제자는 장관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왕 노릇에 적합한 인물은 염옹이 유일이다. 천하의 수제자 안회에게도 이런 칭찬을 하지는 않았다. 염옹이 왕이 될 만 하다고 칭찬을 하니까 다른 제자가 불편한 기색으로 염옹에 대해 말했다.
“염옹은 어질기는 하지만 말에는 재주가 없습니다<인이불녕仁而不佞>”
그러자 공자는 일언지하에 말하길 “그따위 말 재주를 어디에 쓰겠는가. 말 재주를 가지고 백성을 대하면 오히려 미움만 더 크게 받게 되거늘 그따위 말 재주를 어디에 쓴 단 말이냐<혹왈或曰 옹야雍也 인이불녕仁而不佞 자왈子曰 언용녕焉用佞 어인이구급禦人以口給 루증어인屢憎於人 부지기인不知其仁 언용녕焉用佞. 論語 公冶長>”고 했다.
이를 옆에서 듣고 있던 염옹이 자신을 그리도 칭찬하는 스승 공자의 말에 멋쩍어하면서 공자에게 인이불녕仁而不佞의 말꼬리를 붙잡으며 인仁에 대해 물으니 공자는 이렇게 답한다.
“백성을 대할 때 집밖에서는 큰 손님을 맞이하는 것처럼 하고<출문여견대빈出門如見大賓> 백성을 다스릴 때는 큰 제사를 모시는 것처럼 해야 하며<사민여승대제使民如承大祭>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면<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 나라에는 원망이 없을 것이며<재방무원在邦無怨> 가정에도 원망이 없을 것이다<재가무원在家無怨>”

인생의 바닥에서 눈물 젖은 빵을 마치 일용할 양식처럼 먹고 자란 인물이 염옹이다. 공자가어를 비롯한 외전에 따르면 빈민굴에서 헤진 옷을 입고 살았으며 음식은 나물뿌리를 캐먹으며 청춘의 질긴 목숨을 공부로 극복했다는 인물이 염옹이다. 그야말로 흙수저도 이런 정도의 흙수저는 없으리라 그럼에도 그는 가난에 함몰 되지 아니하고 초인적인 의지로 덕을 길러 자신을 완성한 인물이다. 그 중심에 ‘학이시습學而時習’이 있다. 이 말의 출전은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이다. 이를 두 단어로 압축한 것이 학습이다.
학學이 습習의 단계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학이 습의 단계를 견뎌내면 돌이킬 수 없이 치명적인 불가대체적 인간으로 탈바꿈한다. 습習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흙수저가 금수저로 바뀔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천지개벽이 열두 번 더 일어난다 해도 흙덩이가 금덩이 되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학學이 습習의 단계를 견뎌내면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논어라는 책의 첫 글자가 학으로 시작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인류 어떤 책을 뒤져봐도 학學으로 시작되는 책은 논어가 유일하다. 학學이란 글자는 어린아이가<子> 책상에서<冖> 손으로<臼> 글쓰는<爻> 것이고 습習이란 글자는 깃 우羽와 흰 백白자로 ‘새가 날개 짓 할 때 새 날개 밑에 흰털이 드러날 정도로 열심히 날개 짓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습習의 경지를 논어 자장편에서는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라 하여 “절실하게 묻고 깊이 생각하라” 했다.

근사近思라는 말에서 근사록近思錄이라는 불후의 명저가 나왔다. 공부할 때는 네 가지를 끊어야 한다. 논어 자한子罕편에서는 이를 ‘자절사子絶四’라 했다. 나의 생각을 끊고<무의毋意> 패자의 오만함을 끊고<무필毋必> 부모 말씀에 내가 옳다고 덤비는 멍청함을 끊고<무고毋固> 내가 더 잘 안다는 헛똑똑함을 끊는다<무아毋我>(북송의 정치가 범중엄范仲淹의 자녀교육을 위한 해석을 따름)
청춘이 아름다운 것은 젊기 때문이고 젊음이 그토록 부럽고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은 아직까지는 공부할 기회가 남아서이다. 내가 무심코 맞이한 오늘이라는 말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이라 한다. 오이디푸스 왕을 쓴 희랍의 작가 소포클라스의 말이다. 주자십회훈朱子十悔訓 3항은 말하길 ‘소불근학노후회少不勤學老後悔’라 하여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한다고 했다.

신사임당 아버지 신명화申命和는 ‘종학宗學’에서 자녀에게 말하길 “어려서 하루 놀면 늙어서 1년이 고되다”고 했다. 그 고됨은 회복불가의 후회로 남는다 했다. 말이 쉬워 후회지 어떤 이에게는 이 후회가 피눈물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뼈를 깎는 고통일 수도 있다. 잊지마라. 가난에 함몰되지 말고 현실의 벽에 부딧쳐 징징대지도 말고 남보다 못하다 하여 미리 주저앉지말고 ‘그까짓 거’ 하는 심정으로 덤벼라. 세상은 저지르는 자의 것이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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