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플라스틱의 종착지
■ 모시장터-플라스틱의 종착지
  • 칼럼위원 박병상
  • 승인 2018.06.19 20:35
  • 호수 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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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물탱크엔 언제나 바가지 하나가 떠 있었다. 박으로 만든 바가지였다. 요즘 그런 바가지는 공예품 전시장에 가야 작품으로 알현할 수 있지만 60년대 부엌의 필수품이었다. 컵도 흔하지 않았던 시절, 바가지는 손님이나 식구 구별 없이 목마른 자의 다정한 물컵이었고 부엌의 소중한 계량컵이었다. 부엌에서 은퇴한 바가지는 처마 아래 물탱크에서 유용했는데, 어머니는 깨진 부분을 굵은 무명실로 듬성듬성 꿰매놓았다. 땡볕에서 하염없이 놀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집에 들어온 우리는 꼬질꼬질한 몸에 물을 끼얹었고 그때 깨진 바가지가 요긴했다.

언제 플라스틱 바가지가 집에 들어왔을까? 1960년대가 끝날 즈음이 아닐까? 깨질 염려가 없는 그 바가지가 가볍기도 해 박 바가지를 몰아내고 물탱크를 한동안 차지했는데, 집안에 욕조가 들어선 이후 플라스틱 바가지도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요즘은 플라스틱이 지천이다. 크기와 모양이 여간 다양한 게 아니다. 석유로 가공한 플라스틱의 무한한 다채로움은 버거울 지경이다. 플라스틱이 없으면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 세상에 내몰린 사람들은 시방 허우적거린다. 사람만이 아니다. 생태계의 삼라만상이 아연, 플라스틱 공포에 휩싸였다.

냉장고에 빠질 수 없는 두부. 생활협동조합이든 대형 마트의 지하 식품매장이든, 대부분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에 담아 판매한다. 두부를 직접 만드는 전통시장이라면 적어도 두 겹 이상의 비닐봉투에 담아 파는데, 플라스틱과 비닐봉투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은 두부를 어떻게 포장했을까? 신문지였다. 두부를 한 모 씩 잘라 신문지로 감싸서 건네주었으니 며칠 묵지 않은 신문지라면 잉크가 묻었을지 모른다. 당시 두부를 파는 가게에 신문지 보관은 필수였는데, 인터넷이 책상에서 손 안으로 들어온 요즘, 신문을 정기 구독하는 이 보기 드물어졌다.

지난 2월 스페인 남부 해안에서 향유고래 사체가 파도에 밀려왔다. 배를 가르니 29킬로그램에 달하는 비닐봉지와 폐그물이 드러났다. 삼킨 비닐과 플라스틱이 긴 시간 소화기관을 막아 복막염으로 죽었을 거로 전문가는 짐작한다는데, 오징어를 즐겨먹는 향유고래가 비닐을 거부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먹이를 찾지 못해 한동안 굶주렸을지 모른다. 오징어를 찾지 못하니 해파리라도 건지고 싶어 기진맥진한 몸으로 커다란 입을 벌렸는데, 아뿔싸, 비닐일 줄이야. 그것도 29킬로그램이나.

고래뿐이 아니다.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켠 여객선 이용객이 바다로 호기 있게 버린 비닐 고리는 거북의 장을 틀어막아 등딱지를 심하게 왜곡시킨다. 맥주 6캔을 묶었던 고리가 얼마나 썩지 않으면 해양생물들을 기형으로 만들까? 고래 폐사는 스페인 해안의 사정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부분의 해양 휴양지에서 드물지 않지만 20여 년 전, 우리 서해안에서 사체로 떠오른 작은 돌고래 상괭이의 몸에서 수많은 비닐이 꾸역꾸역 나온 적 있다. 당시 인천의 환경단체가 해안에서 수거한 폐비닐과 플라스틱을 분류했더니 중국과 북한에서 약간 흘러들었고, 서울과 경기와 인천에서 내버린 쓰레기가 대부분이었다.

눈에 띄지 않은 마이크로플라스틱은 속수무책이다. 언론은 황해에서 분포하는 어패류 97%의 몸에 마이크로플라스틱이 발견되었다는 2016년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의 분석결과를 보도했다. 비닐봉투 한 개가 바다로 스며들면 175만 개의 마이크로플라스틱으로 나눠진다는 연구결과를 최근 발표한 영국 플리머스 대학은 6킬로그램의 옷을 세탁하면 70만 개의 마이크로플라스틱이 세탁기에서 배출된다고 분석했다. 그 플라스틱은 먹이사슬을 타고 결국 사람 몸까지 들어왔을 게 틀림없다. 부메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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