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 산책
■ 송우영의 고전 산책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8.06.19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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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비인자便非人子 사람의 자식이 아니다)

어린 사영이 좌근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집 대문 입춘방 옆에 썼다는 글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바가 없고<소불학즉로무소지少不學則老無所知>  봄에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다.<춘부종즉추무소수春不種則秋無所收>
본래 이 말의 출전은 공자삼계도이다.<공자삼계도孔子三計圖 운云 일생의 계획은 어릴 때 있고(일생지계一生之計 재어유在於幼), 일년의 계획은 봄에 있고(일년지계一年之計 재어춘在於春),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으니(일일지계一日之計 재어인在於寅),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유이불학幼而不學) 늙어서 아는 바가 없고(노무소지老無所知), 봄에 밭을 갈지 않으면(춘약불경春若不耕) 가을에 바랄 것이 없으며(추무소망秋無所望), 인시(새벽3시-5시)에 일어나지 않으면 (인약불기寅若不起) 그 날에 힘 쓸 바가 없느니라.(일무소판日無所辦)
삼자경이 끝나고 사자소학, 추구 들어가기 전 틈새 공부로 배우는 공부가 공자삼계도다. 나이로 치면 대략 5-6세쯤에 배우는 글이다. 사영은 흔히 교동대감으로 불리는 하옥荷屋 김좌근金左根의 양자 사영思穎 김병기金炳冀를 말함이다.
이 글을 쓴 나이가 9세 안팎 이라하니 그가 꽤나 어린 나이 때부터 얼마나 공부에 매진했는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훗날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사영 김병기를 칭하길 “아들을 낳으려면 사영 같은 아들을 낳아야 해.” 라고 술회한 바 있다.

일찍이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 초두에서 왈, “초학자初學者는 선수립지先須立志”라 했다. 처음 공부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
월성은 집을 나서면서 동쪽 벽에 이렇게 기록한다. “남아입지출향관男兒立志出鄕關(남자가 뜻을 세워 고향을 떠났거늘), 학약무성사불환學若不成死不還(만약 공부로 성공하지 못하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으리)”.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어 집은 가난했고 어머니마저 당신 혼자 살겠다고 어린 자식 내팽개치고 야반도주했다. 여기서 11세 안팎의 큰 아들인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구걸해서 동생들 먹여 살리는 일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그는 구걸만 한 것이 아니라 구걸하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죽어라 공부만 했다. 공부는 공부한 사람을 배반하지 않는다. 훗날 그는 정관의 치를 이룬 당唐나라 명재상으로 오늘날까지도 그 이름이 청사에 빛나는 위징魏微이다.

남송의 주자는 이러한 위징의 공부와 출세법을 ‘문강’이라 했다. 공부를 한 후에 돈을 번다거나 벼슬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풀어쓰면 공부에는 예악사어서수지문禮樂射御書數之‘文’이고 인생의 절도에는 사농공상지강士農工商之‘綱’이라는 말이다. 이를 문강文綱이라 하는데 여기서 분명한 것은 공부에는 반드시 예禮가 우선이라는 점이다. 예禮가 우선인 것은 사람 됨됨이 교육을 한 다음에 여타의 공부를 하라는 말이고 인생에서 사士가 우선인 것은 율려律呂로 기준이다. 예禮가 중요한 것은 예 교육에는 품성 교육이 있는데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품교육과 세상 살면서 익혀지는 인품교육으로 인품교육에는 인성교육과 야성교육이 양날의 검처럼 짝을 이루는데 조선시대 왕세자 교육에서는 이를 정도正道 교육과 권도權道 교육이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성교육 할 때는 반드시 야성교육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란 예禮로 시작해서 수數로 끝남이 순서인데 요즘 세상은 수로 시작해서 수로 끝난다.
수는 곧 셈인데 예禮가 없는 사람이 셈에 밝게 되면 잇속에 따라 움직이게 되고 또 사농공상의 질서가 뒤집혀 요즘은 상商이 우선이 되어 돈 잘 버는 사람 곧 셈에 밝은 사람이 대접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본래 천것들이 예는 없으면서 잇속에 밝은 법이라 했다. 공부에는 정석이나 왕도는 없다. 자신만이 자신이 알고 있는 방법이나 습관에 따라 지독한 심정으로 해야 한다. 율곡 이이는 스무살 섣달그믐에 이르러 자신을 스스로 경계하는 글 자경문을 짓는데 그 11문장에서 말한다. 공부란 늦춰서도 안 되고 성급해서도 안 되며 죽은 뒤에나 끝나는 것이다. 만약 공부의 효과를 빨리 얻으려 한다면 이 또한 이익을 탐하는 마음이다. 공부는 늦추지도 않고 서두르지도 않으면서 평생 꾸준히 해 나가야지 그렇지 않고 탐욕을 부린다면 부모가 물려준 이 몸이 형벌을 받고 치욕을 당하게 하는 일이니 사람의 아들이 아니다<용공불완불급用功不緩不急 사이후이死而後已 약구속기효若求速其效 즉차역이심則此亦利心 약불여차若不如此 육욕유체戮辱遺體 변비인자便非人子>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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