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겹도록 고마운 정 길이 간직하겠습니다”
“눈물겹도록 고마운 정 길이 간직하겠습니다”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8.08.14 16:14
  • 호수 9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6년 반장·이장 내려놓은 ‘군사리의 자존심’ 최규병 이장
▲군사4리 최규병 전 이장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최규병 이장은 10살 때 아버님을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6남매가 갖은 고생을 다했다. 김제와 인근 군산에서 5년간 자동차정비공장에서 일하다가 20살이던 1970년 어머니만을 모시고 낯선 땅 서천에 왔다.

저는 서천에서 뼈다귀가 굵었습니다

서천이 고향은 아니지만 최회장은 역시 서천 사람이다. 50여년을 서천에 살면서 가정을 이루고 사업기반도 닦았으며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수많은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제게 주민들이 마을 반장 직책에 앉혀 마을 수행토록 한 것이 36년 전 일입니다. 그후로 8년 동안 반장 직분으로 마을 머슴 일을 수행했습니다. 1990년부터는 군사2리 이장으로 승격시키더니 967월에 우리지역 행정구역 개편으로 군사2리와 4리가 분리되면서 군사4리 이장을 맡겨주셨습니다.”

마을 반장과 이장, 서천군이장연합회 회장으로 36년을 주민들을 위해 봉사해온 최규병 서천군이장연합회 회장은 감회에 젖어 지나온 날들을 회고했다.

처음 직분을 맡았을 때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두렵고 고민도 많았습니다. 당시에는 장례식장이 없던 때라 마을에 상이라도 나면 부고장에서부터 묘소 일까지 거의 이장들의 몫이었습니다.”

농업공동체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는 서천에서 마을 주민들은 서로가 형제나 다름없었다. 서로 돕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에는 항상 이장이 구심점이 되었다. 그런 그가 지난 7월말로 이장직을 벗고 홀가분한 몸이 되었다.밝히기가 부끄럽지만 후임 이장께서 잘 풀어주시리라 믿습니다.”2구에서 4구로 분리되면서 마을회관이 없어 주민자치 활동에 많은 애로가 있었다. 2016년에 고마운 분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경로당을 마련, 대대적인 시설 개조를 꾀했으나 이 시간까지 마을회관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그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그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주민들의 바람에 미치지 못한 것들이 적지 않아 아쉬움이 큽니다.”

마을 주민들 가정 대소사까지 관여하면서 난감했던 일, 도움을 드려야 할 이웃에게 충분한 도움을 드리지 못했을 때 깊은 밤 가족들 몰래 울기도 했고 자비를 쏟아부어야 할 때는 부인의 눈치도 두렸웠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참 좋으신 분들, 훌륭한 분들의 도움으로, 뜨거운 이웃 사랑으로 주민 머슴 직분을 원만히 수행했을 때에는 보람도 느꼈다. 최규병 이장은 이 분들의 눈물겹도록 고마운 정을 길이 간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열정이 알려지며 내무부장관, 그 후엔 행자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이밖에도 유관기관장을의 표창을 수없이 받았다.그의 본래 직업은 유리 및 액자 전문 창호업체인 동일유리의 대표이다. 서천지역에는 웬만한 가게나 사무실에는 효와 예를 강조한 문구가 적힌 액자와 거울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최회장이 만들어 기증한 작품 들이다.

그는 단돈 몇만원짜리 사글세방을 전전하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꾸준히 나눔의 봉사를 몸소 실천해 왔다.

러나 그는 이제 이장직분을 내려놓고 그동안 주민들과 함께 해온 세월을 가슴 속에 묻어야 할 시간이 됐음을 알았다.오늘은 이렇게 지면으로 인사드리오니 더우셔도 절 받으세요. 우리 서천군 만세! 군사리 만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