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우영의 고전산책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8.08.23 09:25
  • 호수 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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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공부가 내일의 나를 세우리라

삼봉三峰 정도전은 10년 유배와 유랑생활을 ‘감흥感興’이란 오언시에서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은 죽거늘<자고유일사自古有一死> 구차하게 산들 편할 리 없지<투생비소안偸生非所安>”라며 비장미를 드러낸다.
이보다 앞선 세상에서 사마천은 그 비장미를 풀어내기를, “사람은 자고로 한 번 죽거늘<인고일사人固一死> 어떤 죽음은 태산처럼 무겁지만<혹중어태산或重於泰山> 어떤 죽음은 깃털보다 가볍다<혹경어홍모或輕於鴻毛>”
태산처럼 무거운 죽음과 깃털보다 가벼운 죽음 출발점에는 청춘이 있고 그 중심에 공부가 있다. 청춘이 아름다운 것은 푸르러서 만이 아니라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성현雲城縣 아전 급시우及時雨 송강宋江은 심양강尋陽江 심양루沁陽樓에 호기롭게 시 한편을 써놓는데 이것이 반시反詩가 되어 자신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꾼다. 후단 칠언절구를 뺀 전단 사패는 이렇다.
“어려서 사서를 두루 읽었고<자유회공경사自幼會攻經史> / 자라서 또한 권모술수 갖췄네<장성역유권모長成亦有權謀> / 사나운 호랑이 잡초 우거진 언덕에 엎드려<습여맹호와황구恰如猛虎臥荒丘> / 이빨과 발톱을 감추고 참고 있네<잠복고아인수潛伏爪牙忍受> / 불행히 양 볼에 자자 새기고<불행자문쌍협不幸刺文雙頰> / 강주로 귀양와서 있나니<나감배재강주那堪配在江州> / 나중에 복수라도 한다면<타년고득원구他年苦得寃仇> / 심양 강 물을 피로 붉게 물들이리라<혈염심양강血染尋陽江>”
본래 심양루 벽에 쓴 반시返詩라는 두 글자는 당대의 소동파가 제사題詞 했던 것으로 수호전에서는 반시返詩를 ‘반返’자에서 도발한다는 ‘반反’자를 써서 반시反詩로 바꿔 송강이 쓰는 것으로 기록된다.<청말 김성탄70회본 수호지 인용>
이런 시를 시가은진示假隱眞작법이라 하는데 본래 이 말은 진실을 감추고 가짜를 진짜처럼 보인다는 뜻으로 과거를 준비하는 10대 초반 유생들의 공부법에서 유래 됐다. 이 반시는 사詞를 서강월西江月 사패詞牌에 맞추는데 사패란 제사題辭는 이백李白의 소대람고蘇臺覽古에 유래한다. 심양루沁陽樓벽에 쓴 송강宋江의 반시反詩 전반부는 6.7자구로 되어있고 후반부는 칠언절구로 맺는데 송서율창의 압운이 매우 잘된 사패이다. 이를 9세 때 읽은 이가 모택동이다. 
모택동의 청춘은 늘 불온했다. 집에서 배추를 심어 시장에서 팔아야 했다. 못팔고 돌아오면 그날은 아버지로부터 혹독한 꾸지람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악조건의 상황에서도 그는 책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틈틈이 악바리처럼 책을 읽어댔는데 주로 읽는 책이 18사략 24사 사서삼경, 소설이라야 삼국지와 수호지였다.
모택동의 독서법은 천하가 다 알다시피 모조리 외우는 독서법이다. 이렇게 외워댄 한시와 고전들은 자신을 세우는 밑거름이 됐다. 이런 식으로 고전을 무지막지하게 읽어댄 이가 또 있는데 그가 훗날 대장정 때 만난 선성先聖이다. 1934년 10월 모택동은 고난의 행군 이만오천리 대장정을 할 때 생사고락을 했던 오척단구의 선성은 한시漢詩에 관해서는 모택동하고 쌍벽을 이룬다. 대장정하면서 모택동이 백거이의 616자로 된 비파행을 큰소리로 읽으며 가면 저쪽에서 함께 걷던 선성이 다음 구절을 소리 높여 대꾸했다 한다.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대장정 기간 동안 엄청난 분량의 한시와 고전전적들을 책도 없이 어려서 외운 것들만으로 그것도 목숨이 언제 날아갈지도 모르는 도망다니는 전쟁 와중 대장정기간 내내 읊조렸다 한다. 1936년 2월에 연안에 도착으로 10만 명으로 시작된 대장정이 4천명만이<혹여 다른 책은 7천 명 이라함> 살아남아 힘을 비축하게 된다.
여기서 지은 시가 심양루沁陽樓벽에 써 내려간 송강의 반시 서강월西江月을 참고로 불후의 명시 사패를 지었는데 전단은 선성先聖이 짓고 후단은 모택동이 지었다는 심양루 심자와 같은 심자를 쓰는 심원춘설沁園春雪 제하의 시다. 후단 일부를 옮기면 이렇다.
“애석하게도 진시황과 한 무제는<석진황한무惜秦皇漢武> 문학적인 재능이 모자랐고<략수문채略輸文采> / 당 태종과 송 태조<당종송조唐宗宋祖> 또한 학문적인 재능 면에서 조금 뒤떨어졌으며<초손풍소稍遜風騷> / 한 세대를 호령하던 몽고군주<일대천교一代天驕> 징기스칸은<성길사한成吉思汗> 단지 오랑캐의 활로 독수리 쏠 줄만 알았더라<지식만궁사대조只識彎弓射大雕> / 모두 지난 일이지만<구왕의俱往矣> 걸출한 인물을 꼽으라면<수풍류인물數風流人物> 돌아 보건데 지금 세상에서 나뿐인가 하노라<환간금조還看今朝>”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선성이다. 훗날 등소평이라 불린 인물이다. 등소평이란 이름은 인민대회에서 국가가 지어준 이름이다. 가난한 농부 아버지는 아들이 공자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 되라며 선성이라 지었고 어려서부터 감당할 수 없는 한시와 고전을 공부시켰다 한다. 어려서 읽어댄 전적들이 먼 훗날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단초가 될 줄이야 꿈엔들 알았으랴.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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