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출어람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남에 대한 주례사이다. 원문이 다소 길지만 늘 옛 글에 목말라 하며 애쓰는 후학을 위해 싣는다.
군자는 말한다.<군자왈君子曰> 공부란 멈춰서는 안 되는 것이다.<학불가이이學不可以已> 푸른색은 쪽에서 취한 것이지만<청취지어남靑取之於藍> 쪽보다 푸르고,<이청어남而靑於藍> 얼음은 물에서 된 것이지만<빙수위지冰水爲之> 물보다 차다.<이한어수而寒於水> 나무가 곧은 것은 먹줄에 부합하기 때문이지만<목직중승木直中繩> 구부려 바퀴로 만들면<유이위륜輮以爲輪> 구부러진 형태가 곡척에 부합한다<기곡중규其曲中規> 비록 볕에 말리더라도<수유고포雖有槁暴> 다시 펴지지 않는 까닭은<부복정자不復挺者> 구부려 놓았기 때문이다.<유사지연야輮使之然也> 그러므로 나무는 먹줄을 받으면 곧게 되고<고목수승칙직故木受繩則直> 쇠는 숫돌에 갈면 날카로워지는 것이다.<금취려칙리金就礪則利> 군자는 널리 배우고 날마다 거듭 스스로를 반성해야<군자박학이일삼생호기君子博學而日參省乎己> 슬기는 밝아지고 행실은 허물이 없어지는 것이다.<즉지명이항무과의則智明而行無過矣> 그러므로 높은 산에 올라가지 않으면<고부등고산故不登高山> 하늘이 높은 줄을 알지 못하고.<부지천지고야不知天之高也> 깊은 골짜기에 가 보지 않으면<불림심계不臨深谿> 땅이 두터운 줄을 알지 못하는 법이다.<부지지지후야不知地之厚也> <그러므로>선비는 선왕<공자>의 가르침을 공부하지 않으면<불문선왕지유언不聞先王之遺言> 학문의 위대함을 알 수 없는 것이다.<부지학문지대야不知學問之大也>
제나라 직하궁의 스승 차성次聖 순자荀子 권학勸學편에 나오는 말로 백거이의 표현을 빌린다면 권학편 이 글은 부賦다. 백거이白居易는 부를 논 하는 글 부부賦賦에서 부賦는<부자賦者> 고시古詩의 편명으로<고시지류야古詩之流也> 순자와 송옥에게서 시작되었으며<시초창어순송始草創於筍宋> 점차로 가의와 사마상여의 손을 거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다.<점회장어가마漸恢張於賈馬> 얼음이 물에서 나온 것처럼<빙생호수氷生乎水> 처음에는 삼분오전<三墳五典최초의 원본>에 본을 두었고<초변본어전분初變本於典墳> 푸른색이 쪽에서 나왔듯이<청출어람靑出於藍> 풍(風)과 아(雅)보다 화려함을 더했다.<부증화어풍아復增華於風雅> 여기서 청출어람이 나왔는데 청출어람의 자구를 풀면 청靑은 푸른 빛 띠는 돌<광석鑛石>이고 출出은 같은 자<山> 두 개의 합자인데 위자 山은 발바닥을 뜻하는 止자의 원자이고 아래 山자는 갓머리의 원자로 움집을 나타내는 자인데 出은 걸어서 집 밖으로 나간다는 의미이고 어於는 까마귀오烏 이체자異體字이고 람藍은 물들이는 쪽 풀이다.
이를 증명한 이가 중국 위진 남북조 후위後衛 때 학자 이밀李謐이다. 이밀은 스승 공번孔磻 문하에서 공부했는데 얼마나 열심히 했던지 학문이 스승을 넘어섰다. 이런 이밀을 스승 공번孔磻은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여겼다. 함께 공부한 사문의 벗들 또한 3자언으로 칭찬을 한다.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이 덜 푸르니 스승이 어찌 항상 스승이겠는가<청성람靑成藍 남사청藍謝靑 사가상師可常> 여기서 靑은 제자이고 藍은 스승이다. 공번孔磻 또한 북조北朝의 명망 있는 학자로, 학식과 인덕이 높았으며 교학敎學에도 일가를 이룬 인물이다. 이렇게 교학상장으로 제자가 스승을 넘어선 어느 날 스승 공번孔磻은 제자 이밀李謐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이밀이 당황해 하자 공번 왈 “성인에게는 정해진 스승이 없으며 제자가 비록 배웠다 하나 스승보다 뛰어나다면 직계에 관계없이 제자가 도리어 스승의 스승이 되지 말란 법도 없는 법. 학學에 관한한 면려勉勵에는 성인 공자도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 했나니 그러니 너무 당황치도 또한 격식을 차리지도 마시게”라고 했다. 공번의 이 말이 알려지자 강호의 학자들은 이를 모두 옳게 여겼다<北史이밀李謐전傳> 이런 경우를 일러 당서唐書 유학전儒學傳에는 진시명사출고도아眞是名師出高徒阿라고 했다. 훌륭한 스승 밑에서 훌륭한 제자가 난다는 말이다. 여기서 불치하문이라는 사자성어는 나보다 못한 이에게라도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는 말로 자공의 물음에서 시작된다.<논어 공야장> 자공이 하루는 공문자는 무엇 때문에 문文이라는 칭호를 씁니까<자공문왈子貢問曰 공문자하이위지문야孔文子何以謂之文也> 라며 매우 뜨아한 표정으로 묻자 공자 답하길<자왈子曰>, “그는 영민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되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민이호학敏而好學 불치하문不恥下問> 이 때문에 그의 시호諡號를 문文이라고 부른다<시이위지문야是以謂之文也>”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