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란 멈춰서는 안 되는 것이다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란 멈춰서는 안 되는 것이다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8.08.30 10:35
  • 호수 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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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시민기자
송우영 시민기자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남에 대한 주례사이다. 원문이 다소 길지만 늘 옛 글에 목말라 하며 애쓰는 후학을 위해 싣는다.

군자는 말한다.<군자왈君子曰> 공부란 멈춰서는 안 되는 것이다.<학불가이이學不可以已> 푸른색은 쪽에서 취한 것이지만<청취지어남靑取之於藍> 쪽보다 푸르고,<이청어남而靑於藍> 얼음은 물에서 된 것이지만<빙수위지冰水爲之> 물보다 차다.<이한어수而寒於水> 나무가 곧은 것은 먹줄에 부합하기 때문이지만<목직중승木直中繩> 구부려 바퀴로 만들면<유이위륜輮以爲輪> 구부러진 형태가 곡척에 부합한다<기곡중규其曲中規> 비록 볕에 말리더라도<수유고포雖有槁暴> 다시 펴지지 않는 까닭은<부복정자不復挺者> 구부려 놓았기 때문이다.<유사지연야輮使之然也> 그러므로 나무는 먹줄을 받으면 곧게 되고<고목수승칙직故木受繩則直> 쇠는 숫돌에 갈면 날카로워지는 것이다.<금취려칙리金就礪則利> 군자는 널리 배우고 날마다 거듭 스스로를 반성해야<군자박학이일삼생호기君子博學而日參省乎己> 슬기는 밝아지고 행실은 허물이 없어지는 것이다.<즉지명이항무과의則智明而行無過矣> 그러므로 높은 산에 올라가지 않으면<고부등고산故不登高山> 하늘이 높은 줄을 알지 못하고.<부지천지고야不知天之高也> 깊은 골짜기에 가 보지 않으면<불림심계不臨深谿> 땅이 두터운 줄을 알지 못하는 법이다.<부지지지후야不知地之厚也> <그러므로>선비는 선왕<공자>의 가르침을 공부하지 않으면<불문선왕지유언不聞先王之遺言> 학문의 위대함을 알 수 없는 것이다.<부지학문지대야不知學問之大也>

제나라 직하궁의 스승 차성次聖 순자荀子 권학勸學편에 나오는 말로 백거이의 표현을 빌린다면 권학편 이 글은 부. 백거이白居易는 부를 논 하는 글 부부賦賦에서 부<부자賦者> 고시古詩의 편명으로<고시지류야古詩之流也> 순자와 송옥에게서 시작되었으며<시초창어순송始草創於筍宋> 점차로 가의와 사마상여의 손을 거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다.<점회장어가마漸恢張於賈馬> 얼음이 물에서 나온 것처럼<빙생호수氷生乎水> 처음에는 삼분오전<三墳五典최초의 원본>에 본을 두었고<초변본어전분初變本於典墳> 푸른색이 쪽에서 나왔듯이<청출어람靑出於藍> ()과 아()보다 화려함을 더했다.<부증화어풍아復增華於風雅> 여기서 청출어람이 나왔는데 청출어람의 자구를 풀면 청은 푸른 빛 띠는 돌<광석鑛石>이고 출은 같은 자<> 두 개의 합자인데 위자 은 발바닥을 뜻하는 자의 원자이고 아래 자는 갓머리의 원자로 움집을 나타내는 자인데 은 걸어서 집 밖으로 나간다는 의미이고 어는 까마귀오이체자異體字이고 람은 물들이는 쪽 풀이다.

이를 증명한 이가 중국 위진 남북조 후위後衛 때 학자 이밀李謐이다. 이밀은 스승 공번孔磻 문하에서 공부했는데 얼마나 열심히 했던지 학문이 스승을 넘어섰다. 이런 이밀을 스승 공번孔磻은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여겼다. 함께 공부한 사문의 벗들 또한 3자언으로 칭찬을 한다.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이 덜 푸르니 스승이 어찌 항상 스승이겠는가<청성람靑成藍 남사청藍謝靑 사가상師可常> 여기서 은 제자이고 은 스승이다. 공번孔磻 또한 북조北朝의 명망 있는 학자로, 학식과 인덕이 높았으며 교학敎學에도 일가를 이룬 인물이다. 이렇게 교학상장으로 제자가 스승을 넘어선 어느 날 스승 공번孔磻은 제자 이밀李謐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이밀이 당황해 하자 공번 왈 성인에게는 정해진 스승이 없으며 제자가 비록 배웠다 하나 스승보다 뛰어나다면 직계에 관계없이 제자가 도리어 스승의 스승이 되지 말란 법도 없는 법. 에 관한한 면려勉勵에는 성인 공자도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 했나니 그러니 너무 당황치도 또한 격식을 차리지도 마시게라고 했다. 공번의 이 말이 알려지자 강호의 학자들은 이를 모두 옳게 여겼다<北史이밀李謐> 이런 경우를 일러 당서唐書 유학전儒學傳에는 진시명사출고도아眞是名師出高徒阿라고 했다. 훌륭한 스승 밑에서 훌륭한 제자가 난다는 말이다. 여기서 불치하문이라는 사자성어는 나보다 못한 이에게라도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는 말로 자공의 물음에서 시작된다.<논어 공야장> 자공이 하루는 공문자는 무엇 때문에 문이라는 칭호를 씁니까<자공문왈子貢問曰 공문자하이위지문야孔文子何以謂之文也> 라며 매우 뜨아한 표정으로 묻자 공자 답하길<자왈子曰>, “그는 영민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되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민이호학敏而好學 불치하문不恥下問> 이 때문에 그의 시호諡號를 문이라고 부른다<시이위지문야是以謂之文也>”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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