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송건호 언론문화제’ 열려
‘2018년 송건호 언론문화제’ 열려
  • 고종만 기자
  • 승인 2018.09.12 19:30
  • 호수 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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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신문 주최…언론개혁 토크쇼 등 다채
▲김삼웅 전독립기념관장이 청암 송건호 선생의 삶과 언론사상을 주제로 언론특강을 하고 있다.
▲김삼웅 전독립기념관장이 청암 송건호 선생의 삶과 언론사상을 주제로 언론특강을 하고 있다.

'2018년 송건호 언론문화제가 지난 7~8일 그의 고향인 옥천 관성회관과 야외 공연장 일원에서 열렸다. 이번 송건호 언론문화제는 지난 2003년부터 매년 옥천신문 주최로 언론문화제가 열리다가 지난 2011년을 끝으로 중단된 지 7년 만에 부활됐다.

이번 문화제에서는 청암 송건호 선생 미공개 사진전과 함께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송건호 선생 삶과 언론사상이란 언론특강,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과 현 김환균 언론위원장간의 토크쇼가 진행됐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오후 2시 옥천문화원 문화교실에서 열린 언론특강에서 청암은 국내 기자들이 가장 존경하는 언론인 1위로 꼽힌 고고지절을 지킨 지식인이자 언론인으로, 1964곡필(계엄령이나 위수령보다 더 위험하다고 평함) 언론사집필을 통해 그동안 금기시 되어왔던 일제강점기 친일 언론의 치부를 드러냈다고 평했다. 청암의 곡필언론사는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보다 2년 앞섰다.

계속해서 그는 특강을 통해 청암은 동아일보 편집국장 시절 사주가 권력에 굴복해 기자와 직원을 대량 해고할 때 후배기자들과 뜻을 같이하며 사표를 던지고 나왔듯이 신문사의 논조 등이 바뀌면 신문사를 떠나는 결기와 용단, 용기를 보여준 언론인이었다, 전두환 정권시절에는 김원봉의 의혈단 사건 전모를 밝혀 지식인과 야당정치인, 교수, 학생 등에게 의혈투쟁을 고취시켰는가 하면 민주정치의 정체성이 짓밟히면 어김없이 행동에 나서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청암 송건호 선생은 역사 앞에 거짓된 글을 쓸 수 없다는 어록을 남겼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항상 3040년 후에 과연 이 글이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라는 생각과 먼 훗날에도 욕을 먹지 않는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다짐하곤 한다. 크게는 이 민족을 위해서, 작게는 내 자식들을 위해서 어찌 더러운 이름을 남길 수야 있겠나라는 점을 생각해본다언론인이라면 모름지기 두고 두고 가슴에 새겨야 할 내용이다.

▲관성회관 1층 전시실에서는 청암 송건호 미공개 사진전이 마련됐다. 둘째 아들을 업고 운동회에 참가한 송건호 선생
▲관성회관 1층 전시실에서는 청암 송건호 미공개 사진전이 마련됐다. 둘째 아들을 업고 운동회에 참가한 송건호 선생

한편 청암의 미공개 사진전이 관성회관 1층 전시실에서 열렸는데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가장으로써 아이를 업고 작은아들의 운동회를 관람하는 모습부터 한겨레신문 창간 발기선언대회에서 당시 한겨레신문 창간위원과 4기 자문위원장을 역임한 문재인 변호사(현 대통령)와 찍은 기념사진 등 다양한 미공개 사진이 선보였다.

오후 7시부터는 정지환 전 지 기자와 정순영 전 옥천신문 편집국장의 사회로 야외공연장에서 전현직 언론노조 위원장이 송건호와 언론개혁을 토대로 토크쇼가 진행됐다.

신학림 전 위원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재임 18년 동안 내편이든 아니든 술자리를 통해 언론인을 끌어들였고, 올곧은 언론인이라도 술자리 한 두번만 하면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하지만 송건호 기자는 박대통이 마련한 술자리에는 무슨 이야기 나올지 모르고, 물어볼 것도 많기 때문에 가지만, 박대통령의 집요함, 어떠한 회유에도 불구 넘어가지 않는 유일한 언론인이라고 말했다. 김환균 현 언론노조 위원장도 청암과 관련, “고등학교 학생이던 1978년 함석헌 선생과 함께 강연하던 때 처음 뵀다면서 함석헌 선생 강연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송건호 선생님의 강연은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청암은 언론이 썩었고, 비판정신이 사라졌다. 언론인들이 가난했을 때 지조를 지키고 자존심과 명예로 살았는데 박정희가 들어서면서 언론인들이 그 전보다 훨씬 잘살게 되면서 언론인의 자존심과 사명 다 잃어버렸다며 각성을 촉구했다. 실제 박정희 정권은 강남 일원동에 기자 아파트를 지어 언론인들에게 제공했다. 노동부 장관시절 노동탄압에 앞장서면서 히틀러를 빗대 최틀러로 악명을 떨친 조선일보 최병열 기자도 박정희가 제공한 언론인 아파트를 받아 챙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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