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우영의 고전산책/순자 왈.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묻지 않아서다(迷惑者不問)
■송우영의 고전산책/순자 왈.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묻지 않아서다(迷惑者不問)
  • 뉴스서천
  • 승인 2018.09.13 10:09
  • 호수 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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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항이 공리에게 물었다.<진항문어백어왈陳亢問於伯魚曰> “너의 아버지<공자>께서 너만 따로 특별한 공부를 가르쳐준 것이 있는가?”<자역유이문호子亦有異聞乎>공리 답, “없습니다.<대왈對曰미야未也> 언젠가 아버지께서 정원에 홀로 서 계실 때<상독립嘗獨立> 내가 종종걸음으로 그 옆을 지나가는데 시를 배웠느냐. 물으시기에<리추이과정鯉趨而過庭 학시호學詩乎>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 하니<대왈對曰 미야未也> 시를 배우지 않으면 남들 앞에서 말을 못한다. 하셔서<불학시不學詩 무이언無以言> 나는 물러나와 시를 배웠습니다<리퇴이학시鯉退而學詩> 다른 날 아버지께서 정원에 또 홀로 서 계셔<타일他日 우독립又獨立> 내가 종종걸음으로 그 옆을 지나가는데 예를 배웠느냐. 하셔서<리추이과정鯉趨而過庭 학례호學禮乎>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 하니<대왈對曰 미야未也> 예를 배우지 않으면 남들 앞에 설 수 없다. 하셔서<불학례不學禮 무이립無以立> 나는 물러나와 예를 배웠습니다.<리퇴이학례鯉退而學禮> 내가 들은 것은 이 두 가지뿐입니다.<문사이자聞斯二者>”

진항이가 물러나 기뻐하며 말하기를<진항퇴이희왈陳亢退而喜曰>, “하나를 물어 셋을 알게 되었구나.”<문일득삼問一得三. 論語季氏第13>

공자의 제자 중에 두 명이 가장 아둔한데 그중 첫째가 증자이고 다음이 진항이다. 증자는 공자의 문하에서 축출 된 뒤 다시 공자문하로 들어가기 위해 뼈아픈 노력을 했던 쓰라린 과거를 가지고 있고 진항은 공자의 울안이 아닌 늘 울타리 너머 문밖에서 까치발 딛고 귀동냥으로 공부한, 그야말로 우등불가가 됐든 풍찬로숙이 됐든 좌우간 공부만 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고통도 감수하겠다는 게 그의 다짐이었다. 얼마나 공부에 한이 맺혔으면 그랬을까마는 십삼경주소 논어주소를 쓴 하안何晏<나관중 삼국지연의 하진대장군의 손자>의 말을 인용하면 진항은 공부하지 않은 죄(?)와 공부 게을리한 죄의 값을 이가 북북 갈리도록 치렀다고 한다.그런 후에 공부하겠다고 공자문하에 들어왔는데 공자의 제자는 못됐고 그저 문밖에서 귀동냥으로 만족해야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부를 해서 기어이 나라의 재상정도쯤은 하고 죽어야 한다는 모진 다짐을 숨겨놓은 인물이다.

이쯤에서 공자의 제자 중 몇몇의 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제자라 자처하는 자로는 저자거리의 주먹 패 출신으로 공자가 자로를 제자로 받아들인 후 깡패들이 집적대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안회는 공자를 훨씬 뛰어넘는 자생적 천재이며, 자공은 오월춘추를 일으킨 탁월한 민간외교관으로 돈 버는 데 빼어난 사업가이다. 공자가 자공을 제자로 들인 후로 죽을 때까지 돈에 관해서는 근심이 없었다 한다. 낮잠을 자다가 들켜 스승께 곤욕을 치른 재여는 스승의 삼년상에 일 년 상으로 어깃장 놓는 현실주의자이고 운전기사 겪인 마부 번지는 뜬금없는 농사와 채소 가꾸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소인이다. 이런 사연 많은 제자들 틈바구니에서 증자는 공자의 손자 공급을 가르쳐 훗날 맹자가 태어날 수 있는 토대를 만든 사람으로 성인의 반열인 공자 학맥을 계승한 성인이라는 종성宗聖에 이르렀으며, 진항은 시경과 예기를 달달달 외워 위나라로 건너가 재상이 되어 이후 여러 나라를 돌며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 인물이다.

공자는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아니하면<가여언이줄여지언可與言而不與之言> 사람을 잃고<실인失人>, 말하지 말아야 할 때 말을 하면<불가여언이여지언不可與言而與之言> 말을 잃는다.<실언失言> 지자는<지자知者> 사람도 잃지 않고<불실인不失人> 말도 잃지 않는다.<역불실언亦不失言>”말해야 할 때와 말하지 말아야 할 때를 정확하게 알게 해주는 책은 공자의 표현을 빌린다면 시경과 예기 뿐이다. 이 말에 초치고 재뿌리며 들이댄 인물이 노자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지자불언知者不言>,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 한다.<언자부지言者不知. 老子道德經56>”

세상에는 늘 이렇게 주류가 있으면 비주류가 있고 공부가 인생에 전부다라고 말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시비거는 쪽도 있는 것이다.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이유야 어찌 됐건 마음을 쓰는 자는 남을 다스릴 수밖에 없고<노심자치인勞心者治人> 힘을 쓰는 자는 남에게 부림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노력자치어인勞力者治於人세상의 이치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의 학문은 노자와 달리 찾아가서라도 묻는 데서 출발한다. 배움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찾아가 물었다.

공자가 노자를 찾아가 물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논어서설論語序說에는 공자가 어린 시절 견디기 어려운 가난에 쩔은 생활임에도 얼마나 공부를 치열하게 했는가를 알려주는 대목이 나온다. 어려서 놀 때는 늘 제기를 늘어놓고 예로 놀았으며, 17세가 되어 창고지기가 되어서는 돈 문제가 깨끗했으며 우양牛羊을 맡아 기르는 관리가 되어서는 짐승들이 번식을 잘하게 하셨고, 주나라 노자에게 가서는 예를 물었으며 돌아와서는 공부를 더 했다.<위아희희爲兒嬉戱 상진조두常陳俎豆 설례용設禮容 급장及長 위위리爲委吏 요량평料量平 위사직리爲司職吏 번식蕃息 적주適周 문례어노자問禮於老子 기반이제자익진旣反而弟子益進>

공부의 시작은 물음에서부터다. 왜 물어야하나에 대한 답이 논어팔일論語八佾편에 있다. 묻는 것이 곧 예다.<자문지子聞之 시례야是禮也>이때 공자나이 19세였다.

<송우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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