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스름 매미
■ 모시장터-스름 매미
  • 칼럼위원 석야 신웅순
  • 승인 2018.09.19 19:29
  • 호수 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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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늦여름이면 저녁은 으례이 칼국수였다. 멍석에서 식구들과 빙 둘러앉아 칼국수를 먹노라면 저 윗뜸 동네 끝 미루나무에서 스름 매미가 ‘스-름, 스-름, 스-름 스-름’ 울곤 했다.

“조석으로 찬바람이 불겠구나.”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동구 밖에까지 성큼 가을이 왔다는 얘기이다. 스름 매미는 가을의 전령사인 셈이다.

식구들은 땀을 흘리며 칼국수를 먹었다. 이마를 스쳐가는 한줄기 저녁 바람. 지금도 어렸을 적 그 서늘한 바람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말매미는 ‘매-’ 하고 한 음정으로만 힘차게 계속해서 울어대고. 참매미는 “끄-,지-,밈 밈 밈 밈–,미-‘ 세 음정으로 구성지게 울다가고, 스름매미는 ‘스-름 스-름’ 두 음정으로 오랫동안 떠나지 않고 운다.

스름 매미는 언제나 동구 밖 멀리에서 운다. 누구는 ‘스-름 스-름 스-름 스-름’ 하며 운다고 하고 어떤 이는 ‘칠-월 팔-월 칠-월 팔-월’ 하며 운다고 한다. 어떻게 울던 어떤 음을 붙여도 스름 매미는 그렇게 음을 잘 따라서 운다. 뭐니뭐니 해도 여름의 끝을 구슬픈 노래로 이별해주는 것은 스름 매미이다.

며칠 전 옥천의 시인, 무원이 스름 매미 울음을 데리고 왔다. 녹음을 해와 내게 들려준 것이다.

엊그제 같은데 4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시인이 들려준 그 옛날 스름 매미의 울음. 그것은 일찍 가신 내 고향 아버지의 서러움이 아니었을까. 서둘러 한여름에 가신 아버지는 가을과 겨울을 내게 남겨놓고 가셨다.

아버지의 기일만 지킬 뿐 어떤 때는 한번도 스름 매미 울음을 듣지도 못하고 지날 때가 많다. 어디 놓친 것이 스름 매미 울음뿐이랴. 내 고향 저녁 바람도 아버지의 설움도 함께 놓쳤으니 이래 저래 그냥 사십여년의 세월만 흘려보낸 것이다.

그동안 난 결혼을 했고 애들 결혼까지 시켰으니 이것이 아버지의 설움을 대신 해준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버지에 대한 빚이 참으로 많았었는데 조금이라도 갚은 것은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고 하는 나의 서러운 세월이었다. 이제 남은 그 많은 빚은 그대로 아내와 함께 내게 대물림이 되었다. 나는 달리 아내에게 맥없는 시로 변명할 수밖에 없다.

늦여름 스름 매미 멀리서 길게도 울던

하늘 끝 그 저녁이 가슴에 남았었는데

어디쯤 지워졌나몰라

참으로 먼 그 철길

-신웅순의 「아내 15」

가을로 접혀가는 길목엔 으례 스름 매미가 운다. 흰구름 떠가는 높은 미루나무 꼭대기에서 스름 매미는 멀리서 아득히 울어대는 것이다. 올해는 스름매미 울음 소리를 꼭 듣고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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