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취재 / 삶의 터전 갯벌 ➓천수만
■ 기획취재 / 삶의 터전 갯벌 ➓천수만
  • 허정균 주용기 시민기자
  • 승인 2018.10.03 23:19
  • 호수 9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천읍까지 쑥 들어온 조류 차단한 보령방조제

“바지락도 사라졌다”…위기의 어민들 원상복구 요구

충남 간척사업

1970년대 들어 발달한 토목기술을 앞세워 강 하구를 막기 시작했다. 금강하굿둑을 비롯 충남에서 서해로 흐르는 큰 하천들은 보령시의 대천천을 제외하고 방조제로 모두 막혔다.  수산업의 피해와 어민들의 어촌 탈출로 이어졌다. 뉴스서천 취재팀이 지난달 2일 천수만 일대를 취재했다.<편집자>

▲천수만을 가로막은 서산A·B지구방조제
▲천수만을 가로막은 서산A·B지구방조제
▲홍보지구 방조제(홍성방조제와 보령방조제)
▲홍보지구 방조제(홍성방조제와 보령방조제)

충남에서 바다와 접한 시군에는 강 하구를 막은 대형 방조제가 없는 곳이 없다. 서천에서는 금강하굿둑이 남한에서 한강, 낙동강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강인 금강을 막았으며 부사방조제가 웅천천을 틀어막았다. 보령시에는 남포방조제와 대천방조제, 보령방조제가 있고 홍성군에는 홍성방조제가 있다. 서산A·B지구 방조제가 서산시와 태안군에 걸쳐 있고 대호방조제가 서산시와 당진시에 걸쳐 있다. 서산A·B지구 방조제는 천수만 일부를 잘라내 썩은 호수로 만들었다. 당진시에 석문방조제가 있으며 아산시에는 삽교천방조제와 아산만방조제가 있다.

충남 북부해안과 서부 해안으로 유입되는 크고 작은 강 하구에는 이같은 방조제가 강과 바다를 남남으로 갈라놓고 있다. 이로 인해 강은 생태적 기능을 상실하고 방조제 밖의 바다는 어족자원이 고갈됐다.

▲서산B지구방조제 배수갑문
▲서산B지구방조제 배수갑문

천수만 막고 나서 바다가 잘못됐다

▲서산시 부석면 창리마을에서 만난 어민
▲서산시 부석면 창리마을에서 만난 어민

서산 A, B지구 방조제 사이에 위치한 서산시 부석면 창리 마을에서 만난 한 어민(1952년생)

어업은 10대 후반부터 해서 70세가 되드락 했어요. 조상 대대로 어업을 했고, 저도 작년까지 어업을 했어요. 방조제 막기 전에는 안강망 큰 배를 타고 동지나해, 남지나해까지 가서 어업을 했어요. 천수만을 막고 나서는 바다가 잘못돼서 작은 배를 지어가지고 이 근처에서 어업을 했어요. 대천이나 안흥 이런 데 가서도 어업을 했어요. 고기들이 전체적으로 없어요. 전어, 꽃게, 대하 이런 것이 조금 밖에 안나와요. 방조제가 막히면서 물살이 약해졌어요. 그러니까 바다의 뻘이 썩어요. 올 여름철에는 무더워져 수온이 높아지면서 어업이 더 안돼요. 방조제로 담수를 가두나 보니까 수질이 안좋아지고, 물을 뺄 때 냄새도 많이 나고 안좋아요. 옛날에는 어업이 잘 되어 풍어제도 크게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안해요. 그러다 보니 어민들이 바다에 낚시터를 만들어 낚시업을 해요. 굴을 따려고 해도 굴도 없어요

바다에 줄지어 떠있는 배들은 어민들의 낚시터였다. 방파제 주변은 외지에서 온 낚시꾼들로 북적거렸다.

▲보령방조제 부근에 내걸린 현수막
▲보령방조제 부근에 내걸린 현수막
보령방조제 안쪽에 추진중인 수상태양광발전소
보령방조제 안쪽에 추진중인 수상태양광발전소

 

▲오천항 전경
▲오천항 전경
▲보령방조제
▲보령방조제

역간척 하자는데 수상태양광이 웬말

보령방조제를 가로질러 지나가는데 역간척을 요구하고 태양광발전 시설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바로 근처의 오천항으로 이동해 수소문을 해서 태양광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인 김석원 오천면 번영회장을 만나 얘기를 들었다.

- 보령방조제 내측에 태양광발전기 설치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반대대책위 김석원 사무국장
반대대책위 김석원 사무국장

= 태양광발전(시설)을 하면 한 2년이나 3년마다 한 번씩 청소를 해야 한데요. 그때 청소를 하려면 세제를 사용해야 하잖아요. 보령호에서 오염물이 바다로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기 소성리 사람들이 피해를 보니까 반대를 하고요. 그리고 원래 보령호는 안희정 도지사가 있을 때 이 호를 튼다고 했어요. 그 때 트는 경비가 220억이 든다고 했어요. 태양광발전을 하는 경비가 한 216억인가 된데요. 거기다가 한 6, 7억을 보태면 이것을 원상복구할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원상복구를 원한다고 주장을 하죠.

- 반대하는 주민들이 얼마나 됩니까?

= 오천항에 있는 전 주민이 원해요. 이 사람들이 어떤 사탕발림을 하고 다니냐면, 여기에 해당되는 마을이 10개 마을이에요. 자기들은 9개 마을이라고 하는데 가장 큰 마을인 소성리를 뺏어요. 반경 몇 미터 이상 넘는다고. 8개 마을을 다 합해도 여기 소성리 마을보다 못하단 말이에요. 여기 이 마을이 (공사를) 저지한다고 이 마을만 뺀 거죠. 그러고는 동네를 다니면서 근거도 없이 한 동네에 한 달에 1억원을 준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 30호 되는 동네는 한가구당 한 달에 300만원을 준다는 거 아니에요. 나라도 동의를 하지요. 그래서 제가 보령시 부시장에게 물어보았어요. 그랬더니 부시장이 한달에 300만원씩 준다면 무조건 동의를 해야죠라고 하데요.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답니까. 그런 식으로 사탕발림을 하고 다녀요. 우리같은 책임자들은 만나지도 않아요. 자기들 말로는 동의를 받았고 해요. 이 동네 가서는 다른 동네 사람들이 동의를 다 했으니 동의를 해 주십시오 하고, 저 동네 가서는 이쪽 동네 사람들이 다 동의를 했으니 동의를 해 주십시오 해요.

- 역간척을 하면 어떤 효과가 기대가 됩니까?

= 예전에 바지락, 가무락 등 엄청난 조개가 나왔는데요. 지금은 하나도 안나온다. 어민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그때 시대에는 현대 정주영씨 같이 쌀이 부족해서 간척을 했는데 지금으로 봐서는 잘못된 행정이고. 또한 이 보령방조제를 막아서 2급수 물로 유지해서 산업에 사용한다고 했는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축산단지가 있는 곳이 천북면이에요. 축산 폐수가 많이 나와 수질이 악화돼서 그렇게 사용하지 못해요. 농진공(옛 한국농어촌공사)가 이 방조제를 쌓느라 수천억원을 갔다가 퍼 부었는데 이를 트자고 하면 행정상 어려울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방조제를) 안 트기 위해서 이런 꼼수 사업을 하겠다고 한다고 봐요. 이런 사업은 꼼수다고 봐요.

- 방조제 막고 나서 어떻게 변했습니까?

= 모든 것이 자연상태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물의 유속이 없어지다 보니까, 물론 다른 어종이 생기는 경우도 있는데. 전반적으로 유속이 없어지니까 원래 있는 패류나 어종들이 없어졌어요. 반지락, 홍합, 김 등이 멸종되어 버렸어요. 우럭, 복어, 전어, 학꽁치 그런 거는 아예 없어요. 수온이 높아지다 보니까 없어져 버렸어요. 30년 전에는 배가 광천까지 들어갔어요. 원래 오천항은 없었고 광천 아래 쪽으로 독배항이라는 포구가 있었어요. 방조제를 막다 보니까 독배항도 소멸되어 버렸어요. 이 방조제를 안트면 이 오천항이 10년도 안돼서 폐항이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우리 주민들은 방조제를 트지 못하면 수문이라도 개폐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물이 왔다 갔다 하게끔 하라는 거예요. 방조제를 트라고 한 4, 5년 전부터 했어요. 내가 번영회장을 맡은 지가 18년 되었으니까요. 선거철만 되면 해 줄 것처럼 말하지만 안돼요. 여기 오천항 정비사업비 220억원이 책정되었어요, 그런데 실무자가 바뀌니까 미뤄져요. 내가 가서 말하니까 다시 추진하겠다고 그래요.

▲옹암포구. 배가 닿았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옹암포구. 배가 닿았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어선들이 몰려든 옹암포구 옛 모습
▲어선들이 몰려든 옹암포구 옛 모습
▲옹암포구로 향하는 어선
▲옹암포구로 향하는 어선

삶의 터전 앗아가는 죽음의 방조제

광천천 하구에 자리잡은 보령시 오천항은 조선시대에 충청수영이 있었던 유서깊은 곳이다. 현재도 인근 도서지역을 오가는 연안여객선터미널이 있다.

바다는 이곳에서 내륙으로 깊이 파고들어 광천읍까지 배가 닿았다. 광천읍 옹암리는 마을 가운데에 독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해서 독바위, 독배, 옹암으로 불리는데 바다에서 13km나 들어가 있는 포구마을이었다.

옹암 마을은 일제 때만 해도 충남에서 가장 큰 시장 관문으로 안면도를 비롯한 서해안 도서지역과 육지를 잇는 곳이었다. 광천장이 서는 날(4, 9)이면 150여척의 어선과 장배가 드나들며 번성을 누렸다. 옹암 포구는 항상 배와 사람들로 북적였고 돈이 많이 돌았으며 사람들은 늘 바쁘게 움직였다 한다.

1991년 보령방조제 공사가 시작되며 배가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대대로 이어왔던 삶의 문화가 바뀌었다. 다만 포구 뒷산에서 금을 파낸 굴에서 숙성시키는 광천토굴새우젓마을이 활성화 되어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방조제로 인해 방조제 바깥 쪽 바다가 죽어가며 지천으로 널렸던 바지락도 일체 잡히지 않고 있고 젓갈의 원료가 되는 어족자원도 멸절 위기를 맞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