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
■ 모시장터 /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
  • 박자양 칼럼위원
  • 승인 2018.10.11 17:05
  • 호수 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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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양 칼럼위원

   폐건물 철거현장, 막노동에 익숙한 한 무리의 청년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허름한 동네주점을 찾는다. 값싼 술과 음식이 곁들여진 가벼운 놀음현장, 노동으로 인한 피로를 씻고자 그들이 선택한 단순한 방식의 일상이다. 세상이 규정지은 청년다운 포부나 희망 같은 건 애시당초 필요치 않다는 듯 한없이 자유롭고 즐거워 보이기까지 하다. 그들 사이 유독 머리가 크고 다부져 보이는 체격의 청년과 함께 절친으로 여겨지는 또 한 청년이 이야기의 초기 전개를 담당한다. 사소해 보이는 말 한마디에 주먹이 날아가고 발길질과 몸싸움에 익숙하다.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보호감호조치에 처해진 그는 감시의 눈길조차 특유의 비아냥으로 별 것 아닌 듯 치부해버리기 일쑤다. 그의 처지론 언감생심 바라볼 수도 없는 유명대학의 수학과, 그 건물의 복도청소가 업무로 정해지고 청소 도중 복도 게시판에 적힌 수학문제를 바라보는 그의 눈매가 예사롭지 않다. 이렇게 그는 생의 반전을 잉태한 순간과 마주한다.

   자나 깨나 그 게시판의 문제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동료들과의 술자리를 털고 먼저 일어나 숙소로 돌아온 청년은 문제풀이에 몰두하고, 다음 날 게시판에 풀이를 적어 놓고 사라진다. 필즈상 수상경력이라는 엄청난 이력을 후광으로 살아가는 한 수학과 교수, 문제를 푼 학생이 누구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허겁지겁 달려가 게시판을 바라보다 놀라움에 말을 잃는다. 문제 푼 자를 찾고자 하나 실패하고, 또 다른 문제 하나가 게시판에 올려지는데, 교수 자신이 2 년여나 공들여 겨우 풀어낸 바로 그 문제다. 며칠 후 게시판에 무언가를 쓰고 있는 자를 발견하나 끝내 그를 붙들어 세우지 못한 채 교수의 시선은 완벽한 문제풀이가 적힌 게시판에 꽂힌다.

   ‘굿 윌 헌팅의 전반부 줄거리는 마치도 천재는 하늘이 내렸고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인간은 따로 존재한다는 다소 식상하나 강한 인상을 남긴다. 여기에 특출한 인재가 출세하는 뻔한 줄거리를 암시하는 듯한 영화제목의 중의적 선택이 이 영화에 대한 달갑지 않은 선입견을 부추긴다. 한마디로 뛰어난 두뇌능력을 가진 인간은 어떻게든 세상이 알아보고 대접한다는,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고자 고군분투하는 대중에게는 참으로 맥 빠지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영화의 흐름은 대개 주인공의 상황과 행적에 그 초점이 맞춰지나, 관람자의 시각에 약간의 변화를 주면 색다른 의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이 영화의 후반부는 더욱 그러하다.

   필즈상 수상자라는 최고의 영예를 거머쥔 수학과 교수는 미친 듯 문제 푼 자를 찾아 나서고 결국 무학의 어린 청년이란 사실에 밀려드는 자괴감과 열등감을 애써 억누르며 인재가 능력을 펼치도록 도와야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버텨낸다. 더욱이 적잖은 트라우마로 왜곡된 행동양태를 보이는 그 청년을 돕는 과정에서 그의 심리치료를 의뢰하고자 젊어 한 때의 욕망과 오해로 소원해진 옛 절친인 정신과 의사를 찾는다. 그 친구 역시 아픈 과거의 기억을 붙들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오히려 그 같은 배경이 청년의 일탈행동의 뿌리를 간파하는 데 득이 된다. 스스로를 치유했던 한 마디, ‘네 탓이 아니다를 청년에게 건네며 그와 함께 각자의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고, 청년의 치료를 매개삼아 벌인 친구와의 설전 끝에 수학

   교수 역시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며 우정을 회복한다. 이 둘은 남 다른 지적 능력을 가진 청년이 제 능력에 맞는 자리를 찾아가기 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줌과 동시에 그들 역시 끊임없이 제 자리를 찾기 위해 애쓰는 나약한 인간임을 드러낸다.

   한편, 청년의 변화에 결정타를 날리는 이는 함께 막노동을 하며 동고동락했던 친구, 자신의 능력과 소임을 과소평가하지 않으며 스스로에게 당당한 인성의 소유자다. ‘우리에겐 없는 능력을 가지고도 우리처럼 산다는 건 우리를 모독하는 일이다. 아침마다 널 데리러 너의 집 현관문 앞에 서서 불러도 대답 없는 너의 빈 집을 상상하며 네가 원하는 길을 찾아 훌쩍 떠났길 늘 꿈꾼다.’ 능력의 우열이 아닌 다름을 지적한, 진정한 친구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말. 영화를 보는 우리 뿐 아니라 천재청년 역시 벗의 진심에 용기를 내어 자신의 솔직한 내면과 마주한다.

   설핏 천재찬양인 듯 보일 수 있어 적지 않은 이들에게 외면당하기도 했던 이 영화는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들에 초점을 맞추어보면 새로운 시각이 펼쳐진다. 나아가 인간이 지닌 천재성은 지적능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따라서 소중한 인력의 낭비를 편협한 소견과 부당함으로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전언을 담고 있다. 유별난 여름이 지나고 불과 며칠 만에 서늘한 절기가 찾아드니 이제 곧 입시철이다. 오로지 지적 능력의 연마에 매달려 눈가리개를 씌운 경주마처럼 전후좌우 돌아볼 여유도 없이 정해진 길을 기진맥진 내달려야 하는 우리의 청년들, 무엇을 해도 모두가 고득점이 절실한 입시와 취업상황만을 고려해야하는 갑갑한 현실에 높푸른 가을하늘이 무색하도록 가슴이 먹먹하다. 세상 역시 조금 다르게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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