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유비, 세 번째로 칼을 차고 공명을 찾다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유비, 세 번째로 칼을 차고 공명을 찾다
  • 편집국
  • 승인 2018.10.11 17:08
  • 호수 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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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시민기자
송우영 시민기자

어느 흙수저가 선택한 마지막 탈출구 공부. 명나라 말기의 문호 묵감재墨憨齋 풍몽룡馮夢龍은 성년에 이르러 스승으로부터 자유子猶라는 자를 받는다. 자유子猶에서 유는 비슷하다는 같을 여와 달리 오히려 더 낫다는 의미를 갖는데 출전은 공자의 제자 자유子遊에서 비롯된다. 자유子遊보다는 더 뛰어난 인물이 되라는 주문이다.

자유子遊는 본명이 언언言偃으로 오나라 사람임에도 문학에 발군이 드러나 19세 나이에 노나라 무성읍 읍재가 된 인물인데 이보다는 더 뛰어나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이름이 풍몽룡의 자다.

풍몽룡은 출신 성분도 성장 과정도 많이 불운했다. 그럼에도 그는 무슨 복인지 화인지 모르나 암튼 지독한 중 포대화상<포납욕불布納浴佛>을 스승으로 만나는데 포대화상으로부터 가르침은 참으로 혹독했다.

포대화상은 이름이 없다. 포대자루를 들고 다니며 닥치는 대로 포대에 담아 돌아오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그를 일러 포대화상이라 부르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경전을 제대로 가르쳐 주는 일도 없다. 번번히 과거시험에 떨어지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공부에 관심 없는 공부만 가르쳤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겨우 합격한다는 것이 57세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합격한 게 고작이다. 시간이 가면 가는대로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고 더 기막힌 일은 그런 그를 스승으로 따르는 제자가 가관일 뿐이다.

포대화상 같은 부류의 사람들의 출발은 강태공 태공망 여상이 비조鼻祖. 평생을 미늘이 없는 곧은 낚시 하나로 인생을 건곤일척 한 인물의 대명사이다. 강태공이 주장한 사상은 단 하나 물희집어勿戱執魚사상이다. 내가 놀기 위해서 물고기를 죽이지는 말라는 말이다.

요즘 특정 지역에 가면 축제라는 명목으로 물고기를 가둬놓고 잡으면서 노는 행사가 있다. 바로 이런 거 하지 말라는 말쯤으로 보면 된다. 이 정도만 놓고 보면 강태공은 꽤나 온순하고 유순해보이지만 그의 통치술은 참으로 간담이 서늘하다. 훗날 한비자의 법가사상의 단초를 제공하는 게 그의 통치술, 현자라도 불응하면 죽여 버린다는 화사지삭華士之削 사건이다.

제나라 제후로서 업무를 보던 강태공은 현자 화사華士가 백성들로부터 신망이 두텁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세 번에 걸쳐 객경으로 초빙을 한다. 그러나 화사는 누군가의 신하가 된다는 것은 의롭지 못한 일이라며 번번히 거절한다. 이에 강태공은 세 번째 거절에 이르자 화사의 목을 쳐버린다.

이 사건은 훗날 두 개의 역사적 사건을 낳는다. 그 첫째가 유비의 제갈공명을 찾아간 삼고초려이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처음과 두 번째 찾아갈 때는 밖에서 칼을 풀고 무장 해제한 상태에서 찾아갔지만 세 번째 찾아 갈 때는 칼을 차고 갔다. 이는 곧 이번에 또 거절한다면 칼을 쓰겠다는 암시다.

유비가 칼을 차고 온 이유를 알아본다면 제갈공명은 분명 강태공이 화사를 세 번째 방문에 죽여 버린 고사를 알고 있는 명불허전이 맞는 거고, 세 번씩이나 찾아갔는데도 돼먹지 않은 소리 늘어놓으며 거절한다면 그 정도의 인물이라면 단칼에 베어버려도 아깝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를 천하재사 제갈공명이 모를 리 없다 결국 세 번째 삼고에 이르러 삼분지계의 설을 들며 유비를 따라나서니 세상은 이를 삼고초려라 부른다.

그 둘째가 오다노부나가의 울지 않는 새는 죽여 버려라이다. 일본에는 삼대 영웅이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그리고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이들은 같은 시대를 살았으나 전혀 다른 기질을 가지고 있다. 훗날 별첨으로 각자의 10대 청춘을 어떤 공부를 하며 성장했는가를 따로 재론하겠지만 이 세 명의 영웅에게는 새 한 마리를 놓고 <관조언삼鸛鳥言三> 자신의 인생철학을 극명하게 보여준 말들이 오늘날까지도 인구人口에 회자되고 있다.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새는 죽여 버려야 한다고 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울지 않는 새는 울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가 울지 않으면 그 새를 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기억할 일은 오다 노부나가의 청춘은 약간 모자라는 공인된 바보였다는 사실이다.

그런 그가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초장왕의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삼년불비우불명三年不蜚又不鳴려씨춘추심응람呂氏春秋審應覽고사 때문이라고 말한 이는 일본의 대학자 모로하시이다. 쉽게 말해서 청춘을 담보로 공부를 지독하게 했다는 말이다. 아무리 훌륭한 농부라 해도 아침에 심어 저녁에 거두는 경우는 없다. 그만큼 공부에 공을 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두 개의 숟가락으로 정의된다. 흙수저와 금수저가 그것이다. 여기서 더 무서운 일은 자신이 흙수저라는 사실을 대체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는 거다. 한번쯤 벗어나고픈 마당을 나온 암탉정도의 몸부림만치도 없다는 게 서글프다. 황순원 선생의 장남 황동규시인은 삼남에 내리는 눈시 초미에서 이렇게 읊는다.
"
봉준琫準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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