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뿔이 떠난 주민들, 해체된 마을…혼자 남아 지킨다
뿔뿔이 떠난 주민들, 해체된 마을…혼자 남아 지킨다
  • 편집국
  • 승인 2018.10.31 12:52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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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읍 장암리 방우규 이장
▲장암진성에서 바라본 장암리 마을. 마을회관 건물만 남아있다.
▲장암진성에서 바라본 장암리 마을. 마을회관 건물만 남아있다.

천리를 달려온 금강물이 서해로 들어가는 어귀에 장항읍 장암리가 있다. 삼국시대에는 기벌포였다. <삼국유사>에 기벌포에 대한 기사가 나온다.

기벌포는 장암 또는 손량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화포 또는 백강이라고 하니, 백강이 곧 기벌포이다. 伎伐浦 卽長巖, 又孫梁, 一作只火浦, 又白江, 白江 卽伎伐浦

장암이라는 지명이 문헌상에 처음 등장한다. 지명이 뜻하는 긴 바위란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접점에 길게 누워있는 전망산을 말한다. 8000년 전에 이곳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나왔다.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된 것이다. 오늘의 장항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나왔다.

일제는 1936년 이곳에 제련소를 들여앉히고 전망산 정상에 다시 높은 굴뚝을 세웠다. 이때부터 마을의 운명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 때는 제련소로 인해 번영을 누렸다지만 속으로는 썩어가고 있었다. 제련소에서 나오는 중금속 찌꺼기가 토양에 내려앉아 오염지대가 된 것이다. 100여세대가 살았는데 한 집 건너 두 집이 암집이었다. 정부는 제련소 굴뚝 반경 1.5km의 토지와 민가를 모두 매입해 정화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마을 사람들은 몇 푼의 보상금을 받아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수천 년 내려온 마을이 해체된 것이다.

▲장항읍 방우규 이장
▲장항읍 방우규 이장

이런 와중에 장암리 방우규 이장은 마을회관에 혼자 남아 마을의 운명을 지켜보고 있다. 법원에서 집달관이 나와 정화작업을 위해 건물을 철거할테니 집을 비우라는 계고장을 붙여놓고 갔다. 이에 방 이장은 불복하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마을회관은 충청남도 기념물 제97호인 장암진성의 턱밑에 있다. 문화재관련법이 우선이므로 법률상 철거할 수 없다. 정화작업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환경공단은 충남도에 문화재 현상변경을 요청했다. 그러나 변경 이후에도 마을회관은 제외되지 않았다. 방 이장은 끝까지 버티며 마을과 함께 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오순도순 살아가던 마을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소식조차 접하기 어려운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국가의 잘못으로 재앙이 발생했으면 집단 이주지를 마련해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줘야지 이렇게 수천년 내려온 마을이 산산조각 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마을회관 앞에는 중금속 오염으로 죽어가는 키 큰 나무가 낙엽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중금속 오염으로 죽어가는 나무
▲중금속 오염으로 죽어가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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