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너의 실력을 검증해 오라”
■ 송우영의 고전산책 /“너의 실력을 검증해 오라”
  • 편집국
  • 승인 2018.11.15 05:33
  • 호수 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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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따라 외운 것이 공부의 시작이 됐다. 무슨 글자인지도 모른 채 그냥 입으로 흥얼거리며 놀았다고 한다. 5세가 되자 유가의 초급 경전을 공부했는데 여덟 살 때 <효경孝經>을 읽고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본받을 만한 구절이 나오면 그 하단 여백에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다.<불효비인不效非人>”라고 썼다.

열 살이 되어서는 하루를 네 등분하여 <대학> <중용> <논어> <맹자> 4권을 단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적으로 읽으며<일일사각숙독一日四角熟讀> “성인聖人은 못 될지라도 다만 성인의 경지까지 이르겠다효순지요效舜至堯(순임금을 본받아 요임금에 이른다)를 다짐을 했다 한다.

14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이 때부터 아버지의 유언대로 천하를 돌며 스승을 찾아가 공부를 했다. 19세에 이르러 그동안 자신의 공부를 공개적으로 1차 검증을 받는데 진사과에 응시하여 급제하는 것으로 자신을 증명했다. 이때부터 남자는 빠르면 16세 늦으면 19세에 그동안 공부한 것을 공개 검증받는 일이 시작됐다. 조선시대 자녀들이 16-19세가 되면 초급과정 과거시험 보는 관례는 여기서 비롯된다.

검증과 증명이라는 말은 듣기에 따라서 당시 어린 선비들의 마음을 꽤 옥죄는 말 중에 하나다. 검증은 과정이고 증명은 결과다. 내가 그 동안 공부한 과정을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아내는 일이다. 15세 때까지 집에서 종학宗學으로 공부를 하던 서애 류성룡은 공부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다고 자신하고는 퇴계 문하에 들어간다. 그러나 퇴계는 너의 실력을 검증해오라며 되돌려 보낸다. 그래서 이듬해 16세 때 향시에 급제하는 것으로 자신을 증명해 낸다. 그리고 또 찾아간다. 그러나 아직 공부할 자세가 안됐다며 퇴계는 완곡한 표현을 써가면서 기초를 더 쌓고 오라며 되돌려 보낸다. 그렇게 4년이 지난 뒤 21세가 되어서야 퇴계 문하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된다.

이와 비슷한 일이 내암 정인홍에게도 있었다. 훗날 폐주 광해군 때 북인 영수가 된 인물이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리 두각은 없었다. 그저 지독한 공부꾼이라는 것 외에는 여느 선비와 별반 다를 게 없었던 젊은이였다. 그도 공부를 해보겠다며 퇴계 문전을 들락였다. 퇴계는 누구에게나 그랬듯이 여전히 싸늘했다. 내암에게는 별도의 입학시험을 본다하여 15일간의 말미를 준다. 그리고 서당 한 켠 방을 내주고는 15일 동안 숙식을 제공을 하는데 내암은 시험에 합격하기 위하여 밤 낮 가리지 않고 공부를 했고 마침내 15일이 다 되어 시험 보는 날이 이르자 퇴계는 내암을 불러 출학黜學을 명한다. 일종의 거궐拒闕<두번 다시 돌아와서는 안 되는 것>인 셈이다.

내암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못해 청천벽력 같은 일이 분명했다. 도대체 잘못한 일이 없는데 시험도 안보고 바로 쫒아 내다니 이게 가당키나 하랴. 만약에 이 사실이 조선팔도에 알려진다면 그야말로 끝장난 인생이 될게 분명했다. 그 연유를 묻자. 퇴계는 답한다. 남들 잘 때 자고 남들 공부할 때 공부하는 거. 공부는 그렇게 하는 거다. 역사적으로 퇴계의 내암 정인홍을 보는 지인지감은 옳았지만 퇴계의 이러한 공부법이랄까, 아무튼 이 부분은 지금까지도 논란이 있음은 분명하다.

이런 학습법을 특지지습忒止之習이라 하는데 멈출 때 멈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청소년 시절의 내암은 이 점에서 크게 어긋남이 있었던 모양이다. 내암은 분을 속으로 삭이며 퇴계 문을 떠나 남명 조식에게로 가서 분풀이하듯 공부했으며 전무후무할 정도의 우수한 성적으로 화려하게 등과를 한다. 이때 내암이 했던 공부법은 강태공 공부법으로 알려진 혁명지학革命之學이다. 공부를 혁명이라고 처음 말한 이는 강태공의 스승 송이인 이다. 강태공은 일찍이 원시천존元始天尊의 문하에서 공부를 했고 宋異人에게 공부 과정들을 검증을 받았으며 매번 공부를 마치고 다음 단계로 수준이 높아질 때마다 짐승 가죽을 벗겨내듯 완전히 외워야 한다는 혁의 공부를 강요받았던 것이다. 그런 후에 하늘의 명을 기다려야 한다고 배웠다. 나라에는 오래 전부터 언젠가는 현자賢者가 나타나 나라를 크게 일으킬 것이다라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다. 원시천존元始天尊이나 송이인宋異人은 강태공을 주나라 전설인 현자로 만들기 위해 가르쳤던 것이다.

훗날 율곡이이는 이렇게 공부하는 것을 일러 격몽요결 초두에서 선수립지先須立志라 했다. 스승과 제자가 같은 목표를 세우고 공부가 아닌 엄청난 공부 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5년이 되든 10년이 되든 그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정해진 책을 완전히 외웠느냐 못 외웠느냐만 존재할 뿐이다. 강태공은 160세를 살다 신선이 됐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런 그의 인생을 일러 죽을 고생해가며 공부한 세월을 궁팔십窮八十이라 했고 공부로 성공해서 산 세월을 달팔십達八十이라 했다.<十八史略 馮夢龍 東周列國志> 이제 며칠 남지 않은 대학입시시험이라는 수능시험에 대한민국 청춘들의 명운이 걸려있다. 그간 닦은 실력을 검증받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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