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제철살이
■ 모시장터-제철살이
  • 칼럼위원 박자양
  • 승인 2018.12.06 11:28
  • 호수 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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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태어난 녀석인가 보다. 아직 체구가 작아 보인다. 거실유리문을 가운데 두고 나와 한참을 눈을 맞추다 시큰둥해졌는지 서두를 것도 없이 슬슬 자리를 뜬다. 족제비는 태생적으로 호기심이 많은 동물인데다 대범한 행동까지 갖춘 전형적인 포식자다. 그래도 귀여운 외모 덕에 바라보고 있자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12월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가 연일 계속됐지만 계절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족제비가 집 근처에서 종종 눈에 띄게 되면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덕분에 쥐들도 쫒고 일석이조다. 밭에 심어 일군 김장거리도 제각각 김치통을 찾아 제자리를 차지했고, 남은 푸성귀들의 갈무리도 대충 끝냈다. 해 잘 드는 거실에 앉아 이것저것 생각을 정리한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까지 빗소리에 섞여 청개구리의 우렁찬 소리를 간간이 들었던 것 같은데 어느 새 사라졌다. 황소개구리는 벌써 겨울도 아닌 계절부터 겨울잠에 빠진지 오래고. 그러고 보니 제철살이를 서둔 이는 사람만이 아니다. 오히려 뒤늦게 겨우살이 준비를 한답시고 돌아친 건 사람 뿐인가 싶다.

    마당 건너편 산뽕나무의 잎 지는 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누군가가 텅 빈 수레를 끌고 마당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는 것만 같다. 산뽕나무 앞에 자리한 조팝은 곱게 물든 잎들을 달고 그 가는 가지를 흔들며 가을이 아직 다 가지 않았대나 말았대나. 밭고랑 사이 듬성듬성 때 늦은 서양민들레는 아직도 굳건히 꽃을 피우고, 온화한 가을 날씨 덕분인지 딸기밭에 까지 단풍이 곱게 들었다. 붉은 빛을 꽃잎 가장자리에 두르며 서서히 사그라드는 노랑 국화는 유난히 가을을 닮아있다. 서리 맞은 열매들은 이제는 땅으로 돌아가고프다 아우성들인데, 그래도 굳건히 아직은 때가 아니란 듯 매달린 수세미 하나가 내 마당을 지키는 마지막 파수꾼이다. 바야흐로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달 한 복판을 지나고 있다.
    애저녁에 잎을 모두 떨군 매화나무는 겨울도 오기 전에 봄을 준비하고, 듬직한 곰솔은 두 해를 넘긴 바늘잎들을 부지런히 떨어냈다. 곁가지도 없는 가시오가피는 얼핏 그 가시들 탓에 을씨년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다가가 찬찬이 바라보면 단전호흡이라도 하는지 그 결기가 대단하고, 역시도 가시투성이인 두릅들도 안으로 겨울을 너머 봄을 준비하고 있다. 굵은 가시 같은 단단한 가지를 지닌 모과나무는 치장이라도 하듯 이파리 몇 개는 달아 놓은 채 겨울을 맞으려나보다. 이번 겨울에도 때까치에게 개구리포를 널어 말릴 가지 하나 쯤 내어 줄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살아내느라 이리도 열심인데 싶어 동참 차원에서 고른 나의 선택은 버리는 일에 착수하는 것. 초목이 잎을 떨구듯 동물들이 털갈이 하듯 달라져야 하는 것을 해내기로 하고 하루 왠종일 들락거리며 수천 년은 묵은 듯한 쓰레기를 열심히 분리해 내다 놓았다. 들려나가는 쓰레기 가운데 다행히 식재료와 연관된 유기물 쓰레기는 없다. 처음 귀촌을 마음먹었던 시절 마당 있는 집에 살며 꼭 해내고픈 것 한 가지가 음식물쓰레기를 내 울타리 안에서 완벽하게 자연으로 되돌리는 일 이었고 그래서 바보처럼 뿌듯해하다 코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공산품 쓰레기들을 바라보면 또 다시 맥이 빠진다. 도대체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인지 가슴이 답답해온다. 눈앞에서 치워버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님을 우리 모두가 알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래도 종류별로 분리해서 내다는 놓았지만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넘쳐나는 지식정보의 홍수 속에 삶이 표류하는 형국이니 문명의 동력으로 일컬어지는 관계망 역시 전자정보 사이를 겉돌 수밖에 없는 현실이고 보면, 몸 따로 마음 따로 정신 따로 각개 전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더 많은 쓰레기는 시시각각 더욱 다양한 형태로 쌓여만 간다. “세상을 탓하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을 맑고 향기롭게 지닐 때 우리 둘레와 자연도 맑고 향기롭게 가꾸어질 것이고, 우리가 몸담아 살고 있는 세상도 또한 맑고 향기로운 기운으로 채워질 것이다.” 이십 여 년 전 법정스님께서 ‘맑고 향기롭게’운동을 시작하며 하신 말씀이다. 어디 법정스님만 하신 말씀이겠는가. 이 비슷한 내용의 경책은 고전을 펼치면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그럼에도 여러 차례 반복 등장하는 이유가 무얼까 한 번 쯤 생각해 볼 일이다. 그 이유를 정형화하기 전에, 어떻게 쓰레기를 치우며 아니 어찌하면 덜 만들어내며 다가올 겨울을 겨울답게 또 어찌 제철살이를 해야 할지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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