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마을의 품격
■ 모시장터-마을의 품격
  • 칼럼위원 최용혁
  • 승인 2018.12.11 23:19
  • 호수 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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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길(가명, 42)은 인구 감소, 지역 소멸, 영농 후계자 부재 등으로 온갖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 그것도 농촌 마을의 보기 드문 청년, 알콜 중독자이다. 그가 돌아왔다. 어디서? 알콜중독 치료시설에서. 전영길의 말에 따르면 치료가 아닌 감금이고, 퇴원이 아닌 탈출이었으나, 어차피 뭐라 말해도 믿지 않는다. 

그의 집안 내력과 최근 경력을 잠깐 보겠다. 농사꾼이던 아버지는 평생을 논과 술밖에 모르다 알콜성 간경화로 돌아가신 지 10여년이 지났다. 어머니는 전영길과 우열을 다투기 어려운 알콜중독자이다. 일찍이 꼴을 봐 온 다른 형제들은 훨씬 이전에 더 먼 곳으로 떠났다. 다행히 악하게 자라지는 않았다. 그것은 뭐랄까, 눈빛과 웃음 정도로만 가늠할 수 있는 것인데, 마을 모두의 중론이니, 당연히 악한 사람은 아닌 것으로 결론 내겠다. 돌아오기 전 그의 경력은 특별하다고 할 만한 것이 없다. 그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줄곧 알콜과 함께 해 오던 일이었는데, 옆집 형님 차 몰고 나가 개골창에 빠뜨리기, 한 밤중에 개 끌고 마을 돌아다니기, ‘저것이 산 사람일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몰골로 밤이나 낮이나 논바닥에 엎드려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 한번만 하기도 힘든 일을 일도 아닌 일처럼 해 왔다. 가가호호 방문하며 어려움을 호소할 때 돈 만원 정도 꿔주는 것은 한 동네 사람으로서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네 한 바퀴를 다 돌고 나자, 이제는 아무도 상대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오천원만 또는 천원만으로 영업 전략을 바꾸었으나, 막걸리 공장만 배불릴 것이 뻔한 일에 아무도 보태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쳤다. 그래서 피한다. 동네 형님들은 트럭 문 꼭 잠그고 다니라는 말을 인사말로 하고, 심지어 여학생이라도 둔 부모들은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을 하기에 이르고 말았다. 행정에서는 복지 사각 지대 발굴 사업으로 틈틈이 방문도 하고, 일자리도 알아보고, 수급자 신청도 해서, 이제는 병원에도 큰 부담 없이 다닐 정도는 되었지만, 별 의지 없는 인간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정신보건법 전문가인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교 신권철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신보건법은 보건이나 복지의 성격보다는 치안법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치료방법으로서 시설 수용이 아닌 탈시설화와 지역사회복귀라는 정신보건법의 입법취지를 사회적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쥐를 몰아내듯이, 이를 박멸하듯이 사람들을 격리하고 몰아내서 우리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다는 주장에 동감한다. 하지만, 나와 다른 것을 배제하고 몰아내는 방식으로 우리 안전과 행복을 지켜온 시간이 너무 오래 지속되어왔다. 지역사회는 방향을 돌릴 수 있는가? 마을은 아직 따뜻하고 아름다운가?

어쨌든 돌아온 그와 우리 마을 45호 80여명은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동안 해왔듯이 약한 것, 다른 것들을 제거하며 남은 사람들의 안전을 도모할지, 아니면 트럭 문을 잠그고, 여학생에게는 특별히 조심을 시키고, 그와 속에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갈지 우리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곧 돌아올 설에는 ‘고향 방문을 환영합니다’는 따뜻한 현수막도 걸겠고, ‘예산’과 ‘사업비’에 맞춰 마을길에 꽃도 심어가며 사람 살 만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다들 어떤 노력을 하겠지만, 결국 우리 마을의 품격은 전영길과 더불어 살아가는 수준에서 결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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