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8.12.11 23:23
  • 호수 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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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의 ‘천하삼필天下三筆’

괄목상대刮目相對는 삼국지 오나라 여몽에게서 비롯된 고사로 원문은 괄목상대刮目相待지만 조선자음해석에 따른 우리에게는 대待를대對로 익숙해진 까닭에 刮目相對로 쓰고 지금의 중국에서는 괄목상간刮目相看이다.
시작은 여몽이다. 오하아몽吳下阿蒙이란 말이 있다. 오나라 여몽같이 어리석은 놈 이라는 뜻이다. 여몽은 어려서부터 어른이 되도록 가난이 주는 생존에 밀려 글과는 거리가 먼 왈짜의 인생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탓에 건강하지만 무식했다. 다만 시대를 잘 만나 무식한 싸움꾼인 그가 장군의 반열에 올랐을 뿐이다.
삼국지에서 권모술수가 뛰어난 인물은 단연 조조이고 천하맹장을 꼽는다면 여포가 제일이고 책사에는 제갈량이 제일이지마는 문장에는 여몽이 단연 으뜸이다. 오하아몽의 고사가 생길만치 아둔한 그가 훗날 괄목상대의 인물로 거듭 난 데에는 한순간이나마 뼈를 도려내는 자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용기는 두려움에 대한 거부이자 공포에 대한 대처일 뿐 불안의 부재는 아니다. 그것을 없애는 것이 공부다.<용저어구勇抵於懼 공대항이恐對抗耳 불안부재不安非不在 기삭지학其削之學>”
여몽이 노숙에게 했다는 이 말에서 저항이라는 단어가 나왔다.<裴松之三國志 註卷54 吳書9 呂蒙篇 他在 재인용> 무식함에 대한 저항으로 공부를 했다는 말이다. 소설 삼국지에는 일자무식에서 장군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 댓 명 있는데 그중 인상적인 인물이 두 명 쯤 이다. 삼국지 초기에 대장군 하진이 그 첫 번째이고 오나라 맹장 여몽이 그 두 번째이다. 하진은 일자 무식해서 그 멍청한 덕분에 비명횡사를 당하지만 그는 자신처럼 무식한 후손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일념 하나만은 높이 평가해 줘야 한다. 대장군 하진이 그의 아들에게 눈물로 간청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나나 너나 붓을 못 잡은 탓에 우리 집안에 문장이 끊겼다. 그러니 천하를 뒤져서라도 선비를 찾아 아들에게 꼭 붓을 잡도록 하라. 하진 대장군이 죽기 하루 전에 아들에게 남긴 말이다.
이렇게 해서 붓을 잡은 이가 훗날 논어에 관한 한 바이블이라는 불후의 해설서라 칭함 받는 ‘논어주소論語注疏’에 주注를 낸 하안何晏<하진의 손자>이다. 유비가 제갈량을 얻기 위해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았듯이 황제를 능가하는 권력자 천하의 조조가 초야의 선비 하안을 얻기 위해 들인 공력이란 가히 가공함에도 모자랄 것이다. 끝내 조조의 정성에 감동해 하안은 조조의 양자 겸 사위가 된다. 이를 후대 사람들은 빗대어 말하길 ‘지성불복 관우至誠不服關羽요 지성감읍하안至誠感泣何晏’이라 했다. 지극정성을 다했으나 관우는 끝내 유비를 따랐고 지성을 다하자 하안은 감읍하며 조조를 따랐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조조가 하안에게 홀딱 반한 일은 뭔가. 하안은 두 개를 잘했다. 붓글씨를 잘 썼고 글을 잘 지었다. 거필삼년득체미擧筆三年得逮味. 붓을 든 지 삼년이라야 붓 맛을 알며, 해서십년고일시楷書十年顧一視. 십년을 써야 겨우 한번 봐줄만하다는 것이 붓글씨다. 그 중심에 청출어람의 스승이 있다. 그렇다면 붓글씨는 언제 배워야 하는가. 관우의 가르침대로 한다면 추수 다음달인 11월에서 씨뿌리기 전인 이듬해 5월까지이다. 의리의 화신 관우關羽는 일생에 단 한 권의 책만 죽는 그날까지 읽고 쓰고를 반복했는데 그 책은 공자가 직접 손으로 썼다는 역사서 ‘춘추春秋’였다. 관우는 성인께서 손수 쓰신 책이거늘 후학이 어찌 감히 읽기만 하랴 그러면서 공경하는 마음으로 늘 필사하곤 했는데 여기서 유명한 말을 남긴다. “이성적 기운은 춘추를 읽어 얻으며<理氣得書-書卷氣>, 감성적 향기는 춘추를 붓으로 써서 얻는다<感性得情-文字香>”가 그것이다.
천우신조로 서천에 ‘문자향 서권기’를 갖게 할 천하삼필天下三筆이 있는데 국당과 아헌과 천산이다.<가나다순> 이들에게서 우열을 가림은 불경을 넘어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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