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고제 맥잇기사업 제3차 자문회의 주제발표 (1)중고제 복원의 과제와 방법-배연형
■ 중고제 맥잇기사업 제3차 자문회의 주제발표 (1)중고제 복원의 과제와 방법-배연형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8.12.11 23:57
  • 호수 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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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를 전성기에 올려놓은 사람들은 서천 사람들
중고제 판소리는 옛날 판소리…소생시킬 수 있다

지난 6일 서천문화원 강당에서 ‘중고제 맥잇기 사업 제3차 자문회의(종합 포럼)’이 열렸다. 충남문화재단의 주최로 서천문화원과 중고제판소리문화진흥회에서 주관한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배연형 한국음반아카이브 소장(전 판소리학회 회장)이 ‘중고제 복원의 과제와 방법’이라는 주제로, 정병헌 전 숙명여대 교수가 ‘중고제 판소리를 바라보는 관점과 지향’이라는 주제로, 주재근 국립부산국악원 장악과장이 ‘중고제 판소리의 문화사업 접근과 개발 방안’이라는 주제로 각각 주제발표를 했다. 이들의 주제 발표를 요약해서 3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배연형 한국음반아카이브 소장
배연형 한국음반아카이브 소장

<1> 중고제 복원의 과제와 방법(배연형)

저는 판소리를 연구하고 있고 또 옛날 유성기판을 연구를 한다. 그러다 중고제 판소리를 알게 됐다. 
티브이에서 요리 프로그램에서 요리사가 감칠맛을 내려면 설탕을 넣어야 한다며 한 숟갈을 집어넣는 것을 보았다. 서산인가 어디에 가서 허름한 음식점을 들어갔는데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어떻게 이렇게 맛이 좋으냐고 물었더니,
“별거 없슈. 간만 잘 맞추면 돼유.”좋은 요리는 좋은 재료를 쓰고, 간을 잘 맞추면 된다. 그런데 요즘 요리는 대부분 조미료를 쓴다. 정해진 레시피가 있다. 그렇게 되면 전국의 맛이 같아진다. 전라도에 가서 양평 해장국을 먹은 적이 있다. 경기도 음식을 전라도에서 먹을 수 있었다. 속초나 이런 데 가도 병천 순대가 있다. 그래서 음식 맛이 전국이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옛날 장터에 가면 그 지방 고유의 음식 맛을 맛볼 수 있었다.

판소리는 ‘이야기’이다

중고제 소리가 그렇다. 중고제 판소리란 옛날 판소리다. 오늘날 판소리와는 맛이 다르다. 판소리가 본래 가지고 있던 맛이다. 우선 판소리는 이야기이다. 옛날 중고제 판소리를 들어보면 재미나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그러나 오늘날 판소리는 음악이다. 판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로 짜여져 있는데 음악적으로 잘 짜여진 판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들으면 금방 지루해진다. 음악적으로 농축이 돼있어 긴장하고 들어야 된다. 판소리는 두어 시간 이상 가는 건데 그렇게 긴장해서 들어서는 맛을 느끼기 어렵다. 너무 양념이 진하면 재료 맛이 다 사라진다. 재료 맛이 살아있는 음식과 같은 것이 중고제 판소리이다. 장단을 가져가는 것도 요즘과는 다르다. 요즘 판소리 장단에서는 대체로 노래하는 분위기가 난다. 민요를 듣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든다. 그러나 옛날 판소리에서는 자진모리로 쭉쭉쭉 이어진다. 붙임새나 이런 것을 많이 붙이지 않고 쉽게 간다. 그리고 성음이 다르다. 성음이란 발성법인데 옛날 발성법과 요즘 발성법이 본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닌데 옛날 발성법은 단순하다. 그런데 현대 발성법은 누구나 수리성 계통의 쉰 목소리로 발성을 한다. 또 초 현대 발성법에는 서양식 발성법이 많이 들어와 있다. 옛날 요소들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중고제 판소리이다. 양념을 많이 넣으면 처음에는 맛이 있다. 그러나 두 번 안간다. 세 번째 가면 맛이 좀 이상하다. 그러나 재료 맛이나 손 맛을 잘 내는 음식점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생각이 나고 ‘그 할머니 아직 계시나’하고 궁금해진다.
그런데 이게 아주 미묘한 차이이다. 웬만큼 소리를 들어보지 않고서는 중고제 판소리가 가지고 있는 맛을 느끼기 어렵다. 판소리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판소리는 10년쯤은 들어야 이해가 되는데, 그런 후에 중고제 판소리를 들으면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비유를 들어 몇 가지 말씀을 드렸다.

중고제 소리는 조미료 안친 음식 맛

중고제 판소리를 어떻게 복원할 것이냐, 여기에 부딪히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하는 것이 오늘의 주제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중고제 기억에서 보존해야 한다. 사투리라는 것이 있다. 음악에도 투리가 있다. 악토리라 한다. 서울지역의 음악을 경토리라 하고 전라도 지역의 음악을 육자배기토리라 하는데 토리란 투리란 말과 같다. 말의 투리가 사투리이다. 노래의 투리도 지역마다 다르다. 북한 지역의 서도소리는 수심가토리라고 한다. 이처럼 음악에도 이런 차이점들이 있다. 판소리가 원래 경기 충청지역에서 만들어졌는데 전라도 지역으로 가면 그 지역의 음악을 흡수하게 된다. 그쪽 지역의 음악적 특징이 가미된다. 더 세월이 지나면 그쪽 음악으로 바뀐다. 저는 경상도 출신인데 형님이 충청도로 이사를 갔다. 형님은 여전히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데 충청도에서 태어난 조카들은 충청도 사투리를 쓴다.
이처럼 판소리도 옮겨가다 보니 정작 경기 충청지역의 판소리는 없어지고 그쪽의 판소리만 남게 됐다. 그래서 판소리는 남도 음악으로 하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판소리가 남도의 무가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남쪽의 명창들이 서울로 많이 올라왔다. 경기 충청 지역에서는 이동백, 김창룡을 끝으로 더 이상 소리가 안됐고 남쪽의 판소리만 남게 되어 판소리가 원래 남도의 것이라고 오해를 하게 됐다. 그게 정설이었다.
그런데 제가 젊었을 때 유성기판을 수집해서 이동백이나 김창룡 같은 분들의 유성기판을 틀어놓고 보니 이상한 소리가 나오는 것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소리였다.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조선창극사에 중고제가 있다는 말이 옛날부터 있었다. 그래서 맞춰보니 현대 판소리와는 너무 달랐다. 이게 판소리 맞냐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는 ‘중고제 판소리’라는 말도 쓰지 않던 시절이었고 중고제 판소리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지난 6일 서천문화원 강당에서 열린 중고제 맥잇기사업 제3차 자문회의
지난 6일 서천문화원 강당에서 열린 중고제 맥잇기사업 제3차 자문회의

현대 판소리와는 다른 예전의 판소리

한번은 중고제는 아니지만 이화중선의 음반을 들고 인간문화재였던 유명한 명창을 찾아뵈었다. ‘이 소리가 어때요?’ 하고 틀어주니, ‘허이, 싱겁게도 허네’ 그러시는 거였다. 재미가 없다는 뜻이다. 이화중선은 일제 때에는 인기가 아주 높았던 명창이었다. 그때부터 의심이 들었다. 따지고 보니 왜정 때 5명창들의 음반, 다섯 분의 음반을 최고로 꼽았다. 지금은 그 소리 흉내도 못낸다. 이 다섯 분들의 소리가 현대 판소리와는 다 다르다. 가장 비슷한 분이 정정렬 명창이다. 무형문화재 지정을 할 때 누구 소리 배웠느냐 하면서 따져 올라간다. 다들 송만갑 제자라 한다. 그러나 60년대의 송만갑과 같은 소리는 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왜 달라졌는지 연구를 하기도 했다.
무형문화재는 원형 지정이라는 조건들이 있었다. 그래서 스승의 소리 그대로 하다 보니 그것이 마치 ‘조선시대부터 전승된 것이다’ 하는 착각을 하게 된 것이다. 현재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분들은 1930년대에 활동했던 분들이다. 그런데 그 이전의 판소리는 현대 판소리와는 다르다.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그 기법이라든지 음악을 짜나가는 방식이 다르다.
스승의 방식과 똑같아야 한다는 게 문제가 됐다. 제자가 스승을 못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판소리가 하향곡선을 그리게 됐다. 그래서 옛날의 판소리를 바로 볼 필요가 있다. 바로 앞의 산을 보면 그 뒤에 있는 더 높은 산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옛날의 판소리의 높은 경지를 예술적 목표를 두고 가야 하는 것이 현대 판소리가 가야 할 길이라 생각한다. 그 판소리의 기준이 되는 분이 송만갑이나 김창룡이나 이동백이다. 서천 분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서천 분들이 판소리를 안듣는다는 것이다.

높은 경지에 오른 김창룡, 이동백 명창

중고제 판소리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복원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높은 산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가치를 찾아야 된다. 또 하나는 옛날 판소리가 가지고 있는 기법들, 음악적인 구성, 판소리의 사설, 이런 것들 되찾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있다. “죽은 것을 살리는 것은 문화재가 아니다. 그것은 복사판에 불과하다. 진정한 살아있는 문화재가 아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현대 판소리는 어떤가. 역시 다 죽은 거 살려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중고제 판소리는 다 없어졌느냐, 그렇지 않다. 정광수 선생이 전승한 적벽가 일부도 남아있다. 그리고 유성기판이 있다.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다. 소생시킬 수 있다. 충분히 복원할 수 있다.
방법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일단은 판소리를 즐길 수 있어야 하고 문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꼭 중고제가 아니어도 된다. 이를 지역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지역사회에서 판소리 부르는 사람을 몇 사람 먹여 살려야 한다. 못할 거 없다. 지역 축제 같은 데에서 중고제 판소리 연습하는 사람을 불러라. 서울 사람들한테 주는 돈 지역 사람들 불러다 주면 된다. 이런 방식으로 지원을 해야 한다. 이게 안되면 어렵다. 명창이 없으면 소리가 어떻게 존재하겠는가. 몇 사람이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서천에서, 충청도에서 닦아 달라. 꼭 부탁을 드리고 싶다.
중고제 판소리의 정체가 아직 불분명하다. 옛날 유성기판에 남아있지만 그것만이 중고제는 아니다. 중고제는 상당히 넓은 범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중고제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소리하는 사람도 중고제를 모르는데 하물며 소리를 모르는 사람이 중고제를 어떻게 알 수 있겠나. 그래서 일단 중고제의 정체를 일단 밝혀야 된다. 그래서 이런 학술대회를 통해 중고제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치열하게 학문적 연구를 해서 중고제의 음악적 요소, 기타 판소리적인 요소들을 정립해 나가야 된다. 굉장히 어려운 과제다. 연구하는 데 10년은 걸릴 것이다. 그러면 복원은 10년 후에나 시작해야 하느냐. 아니다. 복원과 연구를 함께 진행해야 한다. 연구하는 사람과 소리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토론을 해가면서 중고제가 어떤 것이라는 정체성을 밝혀야 한다.

학술 연구 통해 중고제 정체 밝혀야

제가 ‘중고제론’을 쓴 게 1994년이다. 이걸 발표하면서 걱정했다. 왜냐하면, 판소리가 전라도가 아닌 충청도에서 발생했다고 하는 것은 희한한 주장이었다. 하늘이 뒤집힐 일이었다. 판소리계에서 벌떼처럼 달려들어 공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왜냐하면 중고제를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반박을 못했다. 연구자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몇 사람 연구자가 있지만 몇 사람이 주장한 것이 법이 돼버리면 곤란하다. 그래서 연구자도 늘어나야하고 토론도 계속하다 보면 ‘최소한 중고제는 이런 것이다’하고 합의되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우선 누가 뭐래도 이동백, 김창룡은 중고제 명창인데 음반 듣고 재현하는 데에 누가 토를 달 수 있겠나. 이런 작업부터 일단 시작해나가면서 연구와 복원을 함께 진행해야 한다.

지자체 지원 적극 뒤따라야

초기에는 연구하는 분들이 더 열심히 나서서 해야 되리라 본다. 소리하는 분들도 젊은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연세 드신 분들은 쉽게 못바꾼다. 젊은 사람들이 몸에 익힐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복원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제 생각으로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5년은 걸릴 것이다.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게 될 때까지는 10년을 걸릴 것으로 본다.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포기해서는 안된다.
처음에 단추를 잘 꿰야 한다. 너나없이 중구난방으로 나선다면 그것처럼 난감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연구자들이 적극적으로 음악에 대해 품평하고 토론해 나가야 한다. 판소리를 만들어 전성기에 올려놓은 사람들이 서천 분들이다. 기계를 만든 사람은 기계를 수리도 할 수 있다. 중고제를 다시 살린다는 데에 공감대를 만들어주셔야 한다. 몇 사람이 나와서 하는 것 보다는 문화적인 자부심을 가지고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
이렇게 해서 복원된 것들이 많다. 멸종된 동물을 복원하는 방법도 있듯이 문화적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중고제 복원에서도 과학적이고 학문적이고 조직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리/허정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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