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우영의 고전산책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시민기자
  • 승인 2018.12.28 10:00
  • 호수 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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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의성 허준’을 낳았다

자식이 공부를 못하는 것은 흉이 아니다. 그러나 공부를 안 한다는 것은 흉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허물을 훨씬 넘어선 죄다.

소학에서 공자는 말한다. 세상에는 용서받지 못할 죄가 삼천 가지가 된다. 그 중 가장 큰 죄는 불효 죄다.<공자왈孔子曰 오형지속五刑之屬 삼천三千 이죄而罪 막대어莫大於 불효不孝> ‘불효일경시불학不孝逸徑始不學’이라는 고사가 그래서 생긴 것이다. 불효의 지름길은 공부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는 말이다.
이유인즉 공부하지 않으면 가문이 멸하기 때문이다.<유즉불학자문멸由則不學者門滅> 쉽게 말해서 자식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그 집안은 앞으로 절단난다는 말이 아니라 이미 절단났다는 말이다. 

공부에 관한 일이라면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 자당慈堂 말씀도 듣는 이로 하여금 모골을 송연케 한다. “아무것도 그 무엇도 하지마라<물하기하勿何其何> 어려서는 오직 공부만 하라. 그것이 효의 시작이다<기시효야其始孝也>”<유유위학唯幼爲學: 之學<공부해라>이 아닌 爲學<공부만 하라>이라 쓴 이유는 한문 문장에서 매우 이례적인 완곡한 어법으로 공부 외에는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됨을 강조하는 표현>
자당의 한 마디가 훗날 조선 최고의 의성 허준을 낳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으리라. 자당은 산청군수山淸郡守를 지낸 허준의 조부 허곤許琨의 큰 누나로 허준에게는 대고모가 된다. 허준과 김안국은 촌수로 친다면 내종숙內從叔 6촌간이며 홍길동을 지은 허균과는 11촌간이다. 모재 김안국의 문도가 허준의 스승인 연고로 허준은 어려서부터 모재의 의학서적을 많이 읽었다. 물론 모재가 죽을 때 허준 나이 5세여서 직접 배울 기회는 없었다. 모재의 의술의 깊이는 우암의 죽을병을 고쳐준 정치적 영원한 맞수 미수 허목과 더불어 쌍벽을 이룬다 한다. 

이런 탓에 허준은 약관에도 못 미치는 10대 나이에 종9품 관직 심약審藥에 임명된다. 심약은 중앙으로 납품하는 약재를 검사하는 검약관이다. 서얼 신분인 그가 얼마나 공부에 매진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암 유희춘은 1568戊辰년 2월 22일과 4월 20일에 쓴 자신의 일기에서 허준은 어려서부터 논어맹자중용대학을 기본으로 읽은 후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과 좌구명의 춘추좌씨전과 모씨시毛氏詩를 읽었다고 밝히고 있다. 서얼신분으로 벼슬에 오를 길이 아예 막힌 처지인데도 그는 그 벽을 뚫고 뛰어넘었다. 또 서얼 출신으로 조선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당상관에 오른 인물이기도 하다. 공부를 하면 삶을 이렇게 바꿀 수가 있다는 걸 온몸으로 증명해준 전거다. 공자는 56세에 철환천하轍環天下의 첫발을 내디디며 왈. “그만 생각하고<이사무익以思無益> 공부를 하라<불여학야不如學也.論語衛靈公30文章>”는 말로 철환주유轍環周遊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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