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복 고택 전시관’에서 만나는 청암 이하복 선생
‘이하복 고택 전시관’에서 만나는 청암 이하복 선생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9.01.09 13:59
  • 호수 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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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박물관 지정…도서, 생활 공예품 등 1000여점 전시
▲이하복 고택 전시관
▲이하복 고택 전시관

청암(靑菴) 이하복(李夏馥)(1911~1987) 선생은 서천군 기산면 신산리에서 태어났으며 목은 이색 선생의 후손이다.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에서 동양경제사를 가르쳤다. 1940년 창씨개명을 피하기 위해 동생들을 서울로 데리고 와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일제가 학생들을 학도병으로 내보내라고 강요하자 이를 거부하던 선생은 1944년 교수직을 내려놓고 낙향해 농촌계몽운동을 펼쳤다. 해방 후 19498만여평의 땅을 팔아 학교법인 동강학원 및 동강상업중학교(현 동강중학교)를 설립했다.

기산면 신산리의 낮은 산기슭에 남서향으로 자리잡은 이하복 고택은 필요 이상으로 멋을 내거나 귀한 건축재를 쓰지 않은 검소함이 특징이며, 중부지역의 전통 가옥구조와 잘 보존된 세간, 이하복 선생의 삶 등이 높게 평가되어 1984년 중요민속문화재 197호로 지정됐다.

▲이하복 선생의 일생을 정리한 전시실
▲이하복 선생의 일생을 정리한 전시실

이하복 고택에는 총 8878점의 유물이 소장돼 있는데 공예품이 1043점이고 나머지는 모두 책이다. 이하복 선생은 평소 가옥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가 책이 집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곤 했다 한다. 교육사업을 중시한 선생의 신념을 엿볼 수 있다.

▲청암 이하복 선생
▲청암 이하복 선생

19491230, 이하복 선생이 문교부에 재단법인 동강학원 설립신청서를 제출하자 스승이자 초대 문교부 장관이었던 안호상 박사가 물었다. "이 선생 같은 분이 기왕에 학교를 세우기로 했다면 서울에 세워 나라 안에서 제일 훌륭한 학교를 만들 일이지 왜 하필이면 시골에다 중학교를 세우려 하시오?" 이하복 선생이 말했다. "내 고향 시골에는 이 학교가 아니면 아무 곳에도 갈 데가 없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가르치려는 것입니다. 서울에는 이미 학교가 많고, 또 나 아니라도 새로운 학교를 세우고자 하는 사람이 많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시골에다 세우려는 것입니다."<이하복 선생 자서전 중에서>

소장된 책은 36257835권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교육사나 출판문화사에서 가치가 있는 책을 엄선해 공예품과 함께 이하복 고택 전시관에 전시했다.

이하복 고택 전시관은 선생의 생가에 소장된 유물을 전시, 수장하기 위해 건립되어 2018118일 개관했으며 20185월 충남공립박물관으로 지정됐다. 이곳에 가면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이하복 선생의 일생을 파악할 수 있고 우리 지역의 전통 생활도구와 공예품들을 볼 수 있다. 이하복 선생의 성장 과정을 담아낸 시청각영상실과 생가지를 가상으로 생생히 체험할 수 있는 VR체험실도 마련돼있다.
 

▲생활 공예품
▲생활 공예품
▲전시된 고서들
▲전시된 고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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