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은의 러브하우스
구제은의 러브하우스
  • 최현옥
  • 승인 2003.10.24 00:00
  • 호수 1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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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비행연습을 시작한 구씨의 날갯짓은 아름답다
“쓱쓱쓱…, 탕탕탕…, 탁 틱…”
톱, 망치, 도끼 등 목공 악기들이 연주를 시작한다. 투박하면서도 노련함이 묻어나는 그의 손놀림으로 사랑의 세레나데를 연주하면 무너져 내린 지붕과 어두컴컴했던 방은 화사하게 빛을 발하고 지역 주민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튼튼하게 만들어야죠. 일은 힘들지만 착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집을 고치는 일인데… 그럼요. 최선을 다 해야죠”
망치질 하나에도 신중을 기하며 묵묵히 주어진 일에 임하는 구제은(종천면 화산리·56)씨. 한산면 여사리 어느 농가 지붕수리에 한창이다. 그는 지난 5월부터 서천자활후견기관에서 사랑의 집 짓기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망치 한번 잡아보지 않은 그가 3일 동안 교육을 받고 목공반에 편성, 24명의 동료들과 함께 집수리에 동참한다. 그의 손을 거친 집만 해도 벌써 장항, 서천, 마서 등 2백여

채에 이르고 있다.
“처음에는 사업 동참에 망설였어요. 늙은 나이에 무얼 배운다는 것도 어렵잖아요. 하지만 이제 전문 기술을 배운다는 것이 즐거워요. 아직도 기술을 습득하려면 멀었지만…”
언젠가 자립하는 자활을 꿈꾸며 기술을 차근히 익히는 구씨는 벌써 수준급을 자랑한다. 일을 배울 당시 강판을 다루며 손을 베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지붕 위에서 위험한 상황도 많았지만 자신의 손을 거쳐 새 단장된 집을 보고 있으면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사실 그동안 삶을 자포자기하

고 술만 마신 적도 많아요. 그런데 순간 생의 의지가 생기더군요. 이제 덤으로 사는 인생이니까”
5년 전 악성 직장암 선고를 받고 대 수술을 받은 구씨. 평생 광산업에 종사하며 얻은 것은 병뿐이라는 생각에 실의에 빠진 적도 있다. 그러나 사형선고와 같은 투병생활을 통해 생의 의지를 얻었고 그의 말처럼 덤으로 살아가는

인생을 뜻 깊게 만들고 싶다.
이에 구씨는 자활후견기관에서 그 의지를 더욱 불태우고 있다.
“사실 고된 일에 비해 보수도 적지만 이 일이 보람된 것은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죠. 특히 주민들이 고맙다는 말을 건네면 하루의 피로가 확 풀림을 느낍니다”
집을 수리해준 고마움에 정성을 담은 물 한잔을 건네는 주민들을 보며 일의 재미가 더욱 크다는 구씨는 요즘 식욕도 좋아지고 건강 마저 호전돼는 기분이다.
“그래도 요즘은 일하기 편해진 거죠. 여름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뜨거운 태양아래 직사광선을 받으며 일하면 거의 초죽음 상태가 되거든요. 비 올 때는 일도 못하게 돼 이중고 그 자체였죠”
작업하던 지붕을 바라보는 구씨는 올 여름을 지낸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한 듯 하다. 하지만 힘이 부칠 때마다 동료들과 공동작업을 하며 서로 기댈 수 있어 더욱 즐거웠다.
“일을 하다보면 부족한 것을 많이 느껴요. 특히 장애인이 거주하는 집은 더욱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예산 부족으로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이 안타까울 따름이죠”
비록 서천에 둥지를 틀은 지는 7년 밖에 안됐지만 지역에 대한 애착심이 크다는 구씨는 주민들의 어려운 사정에 가슴이 아프다. 게다가 홀홀 단신으로 살아가며 누구보다 없는 자의 고충을 잘 알고있는 그 이기에 애잔함은 더한다.
“집 상태에 따라 많게는 5일 까지 소요하는 경우도 있지만 수리를 완전히 끝내고 집으로 향할 때면 발걸음이 가볍다”는 구씨는 부족한 가운데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기쁘다. 일을 마치고 허름한 공구 가방을 메고 집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 석양 속에 더욱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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