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율곡이 퇴계를 찾아간 까닭은?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율곡이 퇴계를 찾아간 까닭은?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9.01.16 16:00
  • 호수 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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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의 율곡이 58세의 퇴계를 찾아가 23일간 계상서당에 머물며 머리를 조아려가며 한 수 가르침을 받았다는 사실은 당시 선비들에 있어서 큰 울림이라기보다는 충격 그 자체였다. 율곡에 대한 평가는 천재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 자체임이 이를 증명한다.

한 인간이 누군가로부터 천재라는 이름을 들을 때는 그 이면에 감내하기 힘든, 뼈를 도려내는 극기克己가 숨어있다는 말이다. 날 때부터 천재는 없다. 요즘이야 그런 정도?’의 사람을 천재라 한다지만 율곡이 천재라는 말을 들을 때는 지독한 공부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런 그였기에 누군가를 쉽사리 인정할 만치 그의 내공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늘 병을 몸에 달고 사는 퇴계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한다는 것은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학문이 깊다 해도 제 몸 하나 관리도 제대로 못할 정도면 이는 곧 공부의 기초가 된다는 수신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자기고백이다.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 불감훼상不敢毁傷 효지시야孝之始也(몸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며)

입신행도立身行道 양명어후세揚名於後世 이현부모以顯父母 효지종야孝之終也(벼슬에 나아가 도를 행하며 이름을 후세에 떨쳐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효의 끝이다.)

이처럼 성리학적 기본 효도관이 주류인 시대에 건강은 곧 모든 공부의 기본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독자는 율곡과 퇴계의 공부 과정을 눈여겨봐야 한다. 율곡의 공부는 인에 기초한 공부이고 퇴계의 공부는 경에 기초한 공부이다. 인에 기초한 공부의 결과는 임금과 남을 다스리는 치인治人에 있으며 경에 기초한 공부의 마침은 가정과 자기를 다스리는 치기治己에 있다. 논어 헌문편은 이를 위인지학爲人之學과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 나누는데 원문에 대한 종래의 해석은 이렇다.

공자는 말한다.<자왈子曰> 옛날에는 자기 수양을 위해 공부했지만<고지학자위기古之學者爲己> 지금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공부한다<금지학자위인今之學者爲人. 論語 憲問>

물론 이 문장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음에는 분명하다. 중국 남송시대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가 백록동서원을 세우자 그의 제자 여조겸은 스승인 주자의 9년 후배이자 경쟁자인 상산 육구연에게 주례사를 맡긴다. 이때 상산은 뼈있는 덕담(?)을 하는데 여기서 또 인용한 말이 논어의 헌문편. 남을 가르치기 위한 서원이 아니라<위인지학爲人之學> 자기 자신을 가르치기 위한<위기지학爲己之學> 서원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 말은 근사록近思錄 집해集解 권지이卷之二 위학편爲學篇 하주下注에서 재론되는데 정리해본다면 율곡의 공부법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나온다. 공부를 많이 해서 나에게도 덕이 이르고<至德> 너에게도 덕이 미치는<推及> 그런 공부가 곧 위인지학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위인지학爲人之學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다라는 종래의 해석을 훨씬 뛰어넘는 번득이는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율곡이 공부했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쉽게 말해서 율곡의 학은 공부를 많이 해서 관료가 되어 임금이 왕도정치를 할 수 있도록 하며 백성으로 하여금 그런 임금을 따르도록 하는, 신하가 임금을 가르쳐야 한다는 맹자의 공부관이 곧 율곡의 공부 관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제동을 걸고 나온 인물이 퇴계다.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한 어마어마한 학자임에도 자신의 당호에 재나 장이나 루같은 으리으리한 위용을 품은 편액을 걸만도 하건만 고작 산골짜기 흐르는 냇가 위 어디 쯤 된다는 뜻의 계상서당이 전부였다. 아호 또한 산골짜기에 졸졸졸 흐르는 개울가로 물러났다는 의미를 지닌 퇴계. 자기 다스림 공부의 극치를 보여준 인물이 퇴계이다. 어려서 모친으로부터 단 한 번도 공부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 무작정 놀다가 열두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숙부를 찾아가 논어 읽기를 시작했다는 퇴계, 율곡은 이미 그쯤나이 13세 때 진사 시험 초시에 합격한 소년등과 인물이거늘... 그런 그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퇴계를 찾아 왔더란 말인가.<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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