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돈은 많으나 배움이 없으면 남에게 손가락질 당한다
■ 송우영의 고전산책 / 돈은 많으나 배움이 없으면 남에게 손가락질 당한다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9.01.30 15:40
  • 호수 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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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공부에 목숨 건 남자를 둘 꼽으라면 공자와 맹자다. 공자의 사상은 세상을 등지거나 버리는 사상이 아니라 실천유학實踐儒學 또는 생존유학生存儒學으로 군주 외에는 누구에게도 머리 숙이는 일 없다.

이와 달리 맹자는 죽은 공자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머리 숙이지 않는다. 맹자에게 군주란 모가지 뎅겅 날려버려야 할 제1순위의 존재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맹자 책은 호연지기를 길러서 왕을 처단하라느니 부끄러움이 없으면 저런 인간은 인간도 아니라느니 하며 험한 말도 거침없이 쏟아낸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굉장히 위험한 문장을 만나게 된다. 논어가 499문장인데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은 조선 선비 백호 윤휴의 경우는 논어를 500문장으로 끊어 읽었다. 결국 그 논어를 500문장으로 끊어 읽은 죄로 죽임을 당한다. 바늘 끝에 천사가 몇 명 앉든 그게 뭔 대수라고 논어 문장에 쉼표하나 찍었기로소니 큰 죄란 말인가.

물론 점 하나에서 해석은 완전히 달라지 게 된다. 논어論語 향당편鄕黨에 공자의 마구간에 불이 났다.<구분廐焚> 이에 공자는 조정에서 물러나와 말하기를<자퇴조왈子退朝曰> 사람이 상했느냐<상인호傷人乎>라고 묻고는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불문마不問馬> 여기까지가 종래의 해석이다.

그러나 백호 윤휴는 공자 같은 성인께서 어찌 사람만 귀하고 말은 귀하게 여기지 않았겠는가. 라며 사람은 다치지 않았는가. 상인호<傷人乎不>라고 물으신 뒤 곧바로 말에 대해 물으셨다<問馬>라고 해석을 한 것이다. 쉽게 말해서 방점을 사이에 찍느냐<廐焚子退朝曰傷人乎/不問馬> 아니면 방점을 사이에 찍느냐<廐焚子退朝曰傷人乎不/問馬>에 따라서 해석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한 해석의 논란의 중심에 선 문장이 또 있는데 공자의 사상에서 유일하게 노장사상을 엿볼 수 있는 아주 대담하고도 위험천만한 문장으로 논어 헌문편 39문장이 그것이다. 공자는 말한다. <자왈子曰> 현자는 어지러운 세상을 피하고<현자벽세賢者辟世>, 그 다음 현자는 어지러운 국가를 피하고<기차벽지其次辟地>, 그 다음 현자는 임금의 낯빛을 살펴 예가 없으면 피하고<기차벽색其次辟色>, 그 다음 현자는 임금에게 간언하여 듣지 않으면 피한다<기차벽언其次辟言>. 공자는 계속 이어서 말한다 <자왈子曰>. 이것을 생활에 실천한 현자가 일곱 사람 있었다<작자칠인의作者七人矣>. 이것이 종래의 해석인데 비해 삼국지 조조시대 때 건안칠자建安七子 중에 한명인 44세에 죽은 완우阮瑀는 달리 해석을 한다. 공자는 말한다<자왈子曰> 현자는 배울 때를 놓쳐 어지러워진 세상을 피하며<현자벽세賢者辟世>, 그 다음 현자는 배울 수 없는 무도한 땅을 피하며<기차벽지其次辟地>, 그 다음 현자는 배운 기색이 없는 사람을 피하며<기차벽색其次辟色>, 그 다음 현자는 배운 말이 없는 사람을 피하나니<기차벽언其次辟言> 공자는 계속 이어서 말한다<자왈子曰>.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 세상을 등진 현자가 일곱 사람 있었다<작자칠인의作者七人矣>. 같은 문장인데 해석이 다르다. 여기서 두 명의 이인異人의 어린 시절 공부의 향방을 엿볼 수 있다. 사문난적으로 몰려죽은 백호 윤휴와 건안칠자 중 한 명인 완우의 아들 죽림칠현 중 1인자 완적阮籍이 그다. 이들의 공부법은 불금론不禽論에 기초하는데 백호 윤휴의 공부법은 미수 허목과 우암 송시열의 신발을 거꾸로 신고 넘어져가면서 스승을 찾아가 공부했다<도리심학倒履尋學>. 완적의 경우 그의 아버지 완우는 상당한 지식인이고 위나라 조조로부터 높은 지위와 후한 대우를 받고 살았음에도 자녀교육에서는 남달랐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은 공부를 할 수 있어서다<인자불금야유학人者不禽也有學>. 사람이 배우는 이유는 그 속에 돈이 있어서다<인자유학야녹재人者有學也祿在>. 배움은 많으나 돈이 없으면 비굴해지고<다학무녹굴多學無祿屈> 돈은 많으나 배움이 없으면 남에게 손가락질 당한다.<적부불학지積富不學指>” 라며 자녀를 혹독하게 공부를 시켰다. 돈도 벼슬도 명예까지 있는데 뭐가 아쉬워 그리도 혹독히 자식을 공부 시켰단 말인가. 공부 안한 끝을 알기 때문이다<不學作賤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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