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작을 일에 최선을 다하면 큰 일을 이룬다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작을 일에 최선을 다하면 큰 일을 이룬다
  • 편집국
  • 승인 2019.02.21 10:18
  • 호수 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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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玉垂 조면호趙冕鎬1829년 겨울 오언고시 애궁哀窮에서 이렇게 절규한다.

부서진 집은 바람을 막지 못하고<옥패불폐풍屋敗不蔽風> / 베 이불은 차기가 무쇠 같은데<포금한사철布衾寒似鐵> / 아이는 배고파 우는데 줄밥이 없고<아고황무식兒孤况無食> / 아내는 근심하다 결국엔 통곡하는구나<부수종이철婦愁終以啜> / . 저놈의 가난 누굴 탓하랴<차여빈하죄嗟汝貧何罪> / 본시 내가 못났거늘<여본모생졸汝本謀生拙> / 무능하면 남들이 업신여기고<졸자인소천拙者人所賤> / 하늘 또한 쫒아 와서 멸시하는구나.

지금의 서울 삼청동 뒷골목 북촌 한옥마을 당시 한양 북촌 시단을 주름잡던 청춘의 시인 옥수는 추운 겨울 시린 양손을 호호 불어가며 소학 책장을 넘기다가 한 호흡에 지었다는 시다 그의 나이 25세 때 일이다.

첫구 옥패불폐풍屋敗不蔽風은 소학 선행 제6-4문장 소거옥패所居屋敗<거처하고 있는 집이 무너져서> 불폐풍일不蔽風日<바람과 햇볕을 가리지 못하거늘>’이 원문이다. 또 포금한사철布衾寒似鐵이란 말은 두보杜甫 모옥위추풍소파가茅屋爲秋風所破歌’ 14포금다년랭사철布衾多年冷似鐵<오래된 베 이불 차기가 무쇠 같고>’이 원문이다.

이런 형태로 시를 짓거나 공부하는 것을 검증된 시작법 또는 검증된 공부법이라 한다. 시를 지어도 반드시 근거를 두고 지어야 하며 공부를 해도 반드시 선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공부를 했을 경우 어떤 결과가 있으며 그 결과가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느냐 하는 점이 과학적으로 검증이 되어야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무턱대고 공부하면 된다. 공부만 하면 유익하다라는 식은 곤란하다. 옛 사람은 이런 막연한 엉터리 논리에 일생을 걸지는 않는다. 본래 공부란 과학으로 들어가서 철학으로 살찌우고 영성으로 마친다. 그래서 소학을 과학이라 하고 대학을 철학이라 하고 중용을 영성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영성이라는 말이 기독교용어로 정착됐지만 시작은 유학의 중용공부를 일러 영성지학靈性之學이라 하는 데서부터이다. 이 말을 근세 이후 처음 사용한 이가 박형용 박사이고 이를 기독교 신학용어로 자리매김한 이가 주경 신학자 정암 박운선 박사다. 정암의 경우는 한국기독교사에서 드물게 보는 논어 맹자를 비롯한 7서를 토씨 하나 안빼고 모조리 외운다는 전설 같은 분이다. 7서를 주석까지 외우는 인물을 꼽으라면 필자의 기억이 맞다면 조선시대에 퇴계 이황이 유일일 것이다. 퇴계의 18문도 중 막내 서해가 한말이다.

서해라는 인물은 맹인 처자와 결혼한지 단 1년 만에 죽는데 선망부독자인 그 아들이 조선사에 둘도 없는 자녀교육의 정점을 찍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 사람처럼 자녀를 교육한다면 길거리에 버려진 돌도 대제학 안하고는 못 배긴다라고 할 만큼 자녀교육에 독보적인 인물이다. 조선시대 공부를 일러 생존 공부라 한다. 공부를 해야 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부는 누군가에게는 도전이겠지만 공부만이 살길인 사람들에겐 자신과 싸워서 이겨내야 하는 혹독한 사련이다. 공부는 장벽이 아니라 넘어야할 통로다. 공부는 누군가에게는 고된 삶의 흉터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이에겐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숙명 같은 거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불유조간不裕灶間> 녹녹치 않은 삶이지만<불관지처不寬之處> 그럼에도 공부는 해야 한다<불연위학不然爲學> 공부를 하되 나를 잊을 만큼<위학아망爲學我忘> 공부에 온 힘을 다한다면<학문무유력學問無遺力> 젊어서 공부가 늙어서는 성과를 거두리라<소학노수성少學老收成>종삼품 부사로 있던 사천 이병연이 십대시절 홀어머니 슬하에서 함께 동문수학했던 겸재 정선에게 해준 말이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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