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사랑 애(愛) 자에 담긴 정신
■ 모시장터 / 사랑 애(愛) 자에 담긴 정신
  • 정해용 칼럼위원
  • 승인 2019.02.28 16: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좀 오래된 유머 중에 이런 농담이 있었다.

세계적으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세 단어로 된 영어 문장은?”

사람들은 금방 이렇게 대답했다. “아마도 아이 러브 유’ (사랑해) 아닐까?”

그러나 그 대답은 틀렸다. 정답은 메이드 인 차이나’ (원산지 중국)란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인류가 공통적으로 많이 쓰는 단어 중에 사랑(love)’이라는 단어는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이성간에 서로 좋아한다는 의미의 사랑만이 아니라, 자식사랑 나라사랑 고향사랑 자기애 인류애와 같이 그 말은 폭넓게 쓰이고 있다. 좀 더 넓게 보면 효성 우정 연민 존경심 배려심 자비심 욕망 같은 마음도 사랑에 속하는 감정이다.

사랑이란 감정이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것은 기원전 5백년 경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에게서 제안된 바 있다. 중국의 공자와 거의 비슷한 시기의 사람이었던 엠페도클레스는 우주를 구성하는 기초성분(원소)--공기-의 네 가지라고 정리했다. 이것이 ‘4원소론의 시초다. 그는 이 네 가지 원소에 작용하여 만물을 낳게 하는 힘의 근본을 단 두 가지로 요약했다. 하나는 사랑의 기운이고 또 하나는 증오의 기운이다.

생성과 소멸, 탄생과 죽음, 합성과 해체 같은 상반된 현상의 상관성을 사랑과 증오라는 두 힘의 작용으로 요약한 것은 매우 탁월하다. 기원전 7세기의 기술자 탈레스는 늘 자석을 가지고 다니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이 쇠붙이를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는 작용을 사람들에게 자주 시연해 보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 무언가 성스러운 힘이 우주생성에 관여했다고 역설하곤 했는데, 2백년 뒤의 제자 엠페도클레스가 그 성스러운 힘사랑과 증오의 개념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 무렵 동양에서는 음과 양 기운의 개념과 작용이론이 역()이란 이름으로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동양 역학에서의 음 기운과 양 기운 사이에는 어느 것이 더 좋고 어느 것이 더 나쁘다는 차별의 개념이 없으나, ‘사랑과 증오라는 표현에는 분명히 상대적 가치의 우열이 함의되어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사람들은 증오보다는 사랑을 더 좋아한다. 사랑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고 성장하게 만들고 함께 어울려 행복하게 해주는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주에게는 사랑과 증오의 두 힘이 똑같이 중요하지만, 현실의 인간에게는 사랑이 힘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중요한 사랑이란 말이 세계 어디서나 차고 넘치지만 현대인의 대다수는 왜 행복보다는 외로움과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일까.

한자에서 사랑을 의미하는 사랑 애’()란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파자(破字)하여 풀어보면 그 한 글자 속에 세 개의 독립된 글자들이 나타난다. (받을) ()+마음 심()+천천히 걸을 쇠().

옛 사람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이런 의미로 파악했던 모양이다. 여기에는 사랑을 나누는 세 가지 자세(철학)가 들어있다.

첫째 수(), 말로만 떠들지 않고 실제로 무상의 베품과 나눔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한다면 아낌없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렇지 않고 이해타산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면 실제로는 거래에 불과한 가짜 사랑일 뿐이다.

둘째는 심(). 중심에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마음=영혼이다. 영혼 없는 커플관계는 단지 이해관계로 엮인 주종관계나 일시적 동업관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라나 민족, 형제자매조차도 진정한 사랑 없이 형식적 관계로 변질이 되면 부담스러운 의무나 원망만 남게 된다. 관계의 중심에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간단한 차이에 따라 매국노도 나오고 우국지사도 나오는 것이다.

셋째는 쇠(). 천천히, 편안히 걷는 것이다. 급히 달리면 보조가 흐트러진다. 우열이 갈리고 순위가 구분되면서 피곤한 경쟁관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천천히 걸으면 누구든 서로를 배려하며 함께 걸을 수 있다.

행동으로 나누지도 않고, 진심도 없으며, 또 빨리 가려고 서두르기만 하면 사랑 애()란 글자는 무너진다. 현대인들은 왜 외롭고 우울하게 되었을까. ‘사랑 애자에 담긴 의미들이 그 답을 역설적으로 가르쳐주고 있다.

정해용 [시인, 칼럼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