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이맘때 딸기를 외면하고 싶다
■ 모시장터 / 이맘때 딸기를 외면하고 싶다
  • 박병상 칼럼위원
  • 승인 2019.03.07 13:32
  • 호수 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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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상 칼럼위원
박병상 칼럼위원

최근 한 인기 있는 방송에서 어린이 주먹만큼 큰 딸기가 선보였다이름하여 ‘킹스베리’. 계란만큼 큰 딸기를 보고 놀란 적 있는데비닐하우스와 식물성장호르몬이 우리 농업에 등장했던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다.

계란보다 훨씬 큰 킹스베리는 어떻게 재배할까그 방면에 견문이 없지만 우리 기술진이 개발해 최근 첫 출하했다는 거가격이 높아도 인기가 많다는 건 안다언론의 주목을 받은 까닭도 있겠지당도가 높다고 한다그에 발맞춰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식품 수출을 이끌 차세대 수출유망품종 5가지 품목 중의 하나로 선정했고 벌써부터 수만 달러의 수출길에 올랐다고 언론은 뿌듯해한다.

땅은 농업의 오랜 기반이다다양한 미생물지렁이와 곤충들온갖 식물의 뿌리가 뒤섞인 흙이 있기 때문이다흙은 농작물의 뿌리를 잡아주는데 그치지 않는다농작물이 성장해 수확물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골고루 제공한다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균사를 한없이 펼쳐내는 미생물이 질소와 인을 식물이 흡수할 수 있도록 흙에 내놓으면 농작물은 미생물이 생장하는 영양분을 흘려보낸다그런 관계가 태곳적부터 지속되면서 흙은 우리에게 농작물을 풍요롭게 베풀었고농부는 땀 이상의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았다석유를 가공한 농약과 화학비료석유를 태우는 농기계를 사용하기 전까지.

흙은 탄소를 잡아준다미생물과 지렁이와 거미와 곤충은 물론이고 다채로운 나무와 풀의 씨앗그리고 수많은 동식물이 생장하고 죽으며 남긴 탄소가 뒤섞여 있다농부에게 수확의 기쁨을 안기는 농작물이 흙속의 탄소를 흡수하는 건 아니다녹색 잎의 엽록체가 탄소동화작용으로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곡식이나 과일로 생산한다막대한 에너지에 의존하는 농업은 진정한 생산이 아니다봄에 뿌린 한 톨의 씨앗이 농민의 땀과 햇빛과 빗물을 머금으며 가을에 수십 배의 소출을 내놓는 생산과 거리가 멀다차라리 변형이다수확한 농작물에서 얻는 열량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주로 석유가 낭비되지 않았나.

농기계와 화학비료로 옥수수를 수확하는 미국의 드넓은 밭은 영양분이 고갈돼 흙이 딱딱하다무거운 농기계로 땅을 대규모로 갈아엎는 농업은 옥수수에서 얻는 열량보다 10배 가까이 많은 석유 에너지를 들이부어야 수확이 가능하다맹독성 농약으로 흙이 생명력을 거의 잃었기 때문인데흙마저 배제하는 스마트 농업은 어떤가생명을 아예 품지 않는다투자자의 이윤을 위해 종업원을 고용하는 공장일 따름이다흙을 배제하므로 지속가능하지 않다가혹한 식량위기를 초래한다.

엽채소와 과채소 위주의 비닐하우스와 스마트 농업이 수출을 염두에 두는 한식량자급에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 “식민지로 만들려면 그 나라의 농업을 죽여야 한다!” 미국의 한 경제학자의 귀띔이었다는데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자급률이 20%에 턱걸이하는 상황에서 수출을 장려하다니우리 농업정책은 위기를 증폭한다주로 미국에서 수입하는 밀과 옥수수 같은 곡식을 비롯해 고기와 과일도 진정한 생산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석유 가격이 오르면 수입은 한계에 부딪히고 식량주권을 잃은 국가는 종속될 것이다.

다국적기업이 주도하는 미국식 농업은 수확물의 대부분을 소비자의 식탁보다 산업축산의 사료그리고 가공식품 공장으로 향하게 한다고기와 가공식품이 아니라면 가정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은 대부분 농촌의 농부가 흙에서 생산한 농작물이다가공식품이 드문 국가는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일본과 중국도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발밑의 혁명의 저자 데이비드 몽고메리는 흙을 살리면 지구온난화도 어느 정도 예방하면서 내일의 식량을 견고하게 자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곳곳의 사례를 들어 실증한다.

남북한 합해 7000만이 넘는 인구는 농부가 흙에서 생산하는 농작물로 자급할 수 있어야 내일도 생존할 수 있다늦기 전에 농토를 확보하면서 흙을 살려야하는데스마트 농업과 비닐하우스로 수출농업을 꿈꾸는 정책은 무책임하다비축한 석유가 충분한지 저렴한 석유가 부자나라의 농업에 여전히 제공되고 있을 때대책을 마련해야 다가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공산품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로 많은 식량을 수입해놓고 음식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만용은 머지않아 종말을 고할 것이다그래서 눈을 간지럽히는 이맘때 딸기는 외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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