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는 전장에 나갈 무기 갖추는 것
■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는 전장에 나갈 무기 갖추는 것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9.03.14 14:21
  • 호수 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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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벼슬아치 원매袁枚속시품續詩品저아著我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옛사람을 안 배우면<불학고인不學古人> 본 받을 게 하나도 없으며<법무일가法無一可> (옛사람을 배워) 옛사람과 똑같으면<경사고인竟似古人> 어디에도 내가 없나니<하처저아何處著我> 예로부터 있어왔던 글자<자자고유字字古有> 하는 말은 다 새롭지만<언언고무言言古無> 옛것을 뱉어내고 새것을 마셔야<토고흡신吐古吸新> 제 목소리가 나오지 않겠는가<기서기호其庶幾乎> 맹자는 공자를 배워서 나왔고<맹학공자孟學孔子> 공자는 주공 배워서 나왔지만<공학주공孔學周公> 세 사람<공자 맹자 주공>의 문장은<삼인문장三人文章> 서로 달랐다<파부상동頗不相同>”

 

배우고 모방하고 따르려 한 흔적은 분명하나 그 흔적이 주는 결과는 전혀 다르다는 말이다. 더 쉽게 말해서 고전을 배우되 고전을 통해서 나를 발전시키라는 말이다. 흔히 아무개 집 자녀들 잘 컸어. 잘 배웠어라는 말은 곧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이는 곧 철인 순자의 가르침 청출어람청어람이라는 말이다. 물론 불경을 외운다고 해서 다 불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선게비불禪偈非佛>. 그렇다고 논어 맹자를 외운다고 해서 유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공맹비불孔孟非儒>. 공부란 것은 그만큼 치열한 것이다.

공부 방법은 특별한 게 아니다<학도무도學道無道>. 견딜 수 있으면 무조건 견뎌야 한다<가인막인可忍莫忍>. 오락, 게임 등을 경계할 수 있으면 무조건 경계해야 한다<가계막계可戒莫戒>. 참지도 못하고 경계도 못한다면<불인불계不忍不戒> 작은 일은 크게 되어<소사성대小事成大>호미로 막을 거 가래로도 못 막는다<서거불삽鋤拒不鍤>. 매일 작은 일을 하다보면<일일소사日日小事> 언젠가는 큰일도 해낸다<하시성업何時成業>. 어린이를 깨우치는 현자의 글을 모았다는 몽학현문집蒙學賢文輯에 나오는 말이다.

가난하게 태어난 건 자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가난하게 죽는 것은 자신의 잘못이 맞다. 어려서 공부 안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커서도 공부 안하는 것은 그건 자신의 잘못이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게을리 해 놓고선 그 짧디 짧은 지식으로 세상에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아서라. 세상은 엄마 품처럼 따뜻하지도 않을뿐더러 더더군다나. 세상은 절대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녹녹하지도 만만하지도 호락호락하지도 않다. 공부를 안 하고 세상에 나가겠다는 것은 25백 년 전에 살았던 공자의 표현을 빌린다면 무기를 들지 않고 전쟁에 나가는 병사와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부하는가. 삼봉이 몸으로 증명해준 공부법이 꽤 설득력을 갖는다. 136312월 정도전은 모친상을 당해 3년 시묘를 살기 위해 떠났다. 이 때 5년 선배이자 동문 포은 정몽주는 떠나는 정도전에게 맹자 한 질을 선물로 건넨다. 맹자 책은 정도전이 어려서부터 읽어온 책임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 왜 줬을까. 정도전은 포은이 준 맹자책을 이미 토씨하나 안틀리고 다 외울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인물이다. 그럼에도 포은이 맹자책을 준 까닭이 있으리라 라는 생각을 하며 매일 한 장 혹은 반장씩 읽었다. 그리고 마침내 깊은 경지에 이르렀다<시정포은송맹자일부時鄭圃隱送孟子一部공일구일지혹반지公日究一紙或半紙 심정숙甚精熟. 三峰集附錄事實>

역사의 공과를 떠나서 필부 정도전만을 놓고 봤을 때 그는 청춘 이전부터 뜻을 세웠고 그 뜻을 위해서 초인적 의지로 매일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했던 게 분명했다. 무엇을 위해서 하루를 그토록 자신을 매질해야 했던가. 뜻을 세운 청춘은 공부라는 커다란 산 앞에서 엄살을 부리지 않는다. 인생은 놀고먹고 마시며 춤추는 향락의 놀이터가 아니다. 공부는 시간의 흔적을 넘어 고통의 흔적이 깊어야 오래 세울 수 있는 거다. 늦게 돋는 풀이 우뚝 선다고 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에 위로받지 말라. 그땐 이미 늦은 거다 다만 늦은 만큼 할 수는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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