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정벌일 ‘서면 면민의 날’로 채택
대마도 정벌일 ‘서면 면민의 날’로 채택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9.04.19 10:30
  • 호수 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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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목·면화-동백, 면조-알락꼬리마도요

‘서면면민의날추진위원회’는 지난 10일 서면 면사무소 강당에서 회의를 열고 조선 세종원년(1419) 대마도 정벌일인 6월 29일을 면민의 날로 채택했다. 이날 회의는 홍성갑 면장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그동안 실시했던 주민 의견 수렴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서면 면사무소 최초 신축일인 5월 20일로 하자는 의견이 많았으나 추진위원들은 일제 식민지 때 지은 건물이어서 무리가 있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대마도 정벌일을 추천한 박수환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위원(전 한산면장)은 “세종원년의 대마도 정벌은 서면 도둔리에 쳐들어와 약탈을 했던 왜구들을 소탕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통쾌한 승리를 거둔 뜻 깊은 날”이라고 말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1419년(세종 원년) 5월 5일 왜선 39척이 명나라에 가던 도중 비인현(庇仁縣) 도두음곶(都豆音串 :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도둔리)을 침탈했다. 이 싸움에서 병선 7척을 잃었고, 도두음곶 만호 김성길(金成吉)과 그의 아들, 아군의 태반이 전사하는 등 피해가 컸다.

이에 태종은 14일 대신회의를 열고 대마도 정벌을 결정했으며 이종무를 3군도체찰사로 임명해 정벌에 나서게 했으며 6월 20일 이종무는 227척의 함선과 1만 7000여 명의 수군을 이끌고 대마도에 이른 뒤 두지포(頭知浦) 앞바다에 함선을 정박했다. 6월 29일에는 조선군 본대가 함선에서 내려 육상전을 감행했으며, 이에 대마도주가 항복의 뜻을 밝히며 강화를 요청하는 글을 보냈다. 이종무는 항복을 받아들이고, 7월 3일 거제도로 돌아왔다. 이것이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이다. 기해년에 일어난 일이라고 해서 기해동정(己亥東征)이라고도 한다.

서면 면조로 채택된 알라꼬리마도요
서면 면조로 채택된 알라꼬리마도요

한편 이날 회의에서 추진위원회는 면목·면화로 동백을, 면조로는 알락꼬리마도요를 채택했다. 멸종위기1급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알락꼬리마도요는 도요새의 종 가운데 몸길이가 60cm 이상으로 가장 크며 도둔리 갯벌 등 서천 연안갯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산란지인 시베리아와 월동지인 호주를 오가다 서해 갯벌에 중간 기착해 1, 2개월 간 영양을 보충하며 일부 개체는 겨울에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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