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그침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
■ 송우영의 고전산책 / 그침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9.05.15 14:31
  • 호수 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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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시민기자
송우영 시민기자

공부하는 사람은 뜻이 작거나 기가 가벼워서는 안된다.<학자대불의지소기경學者大不宜志小氣輕> 뜻이 작으면 쉽게 만족하게 되고<지소즉이족志小則易足> 쉽게 만족하면 발전이 없으며<이족즉무유진易足則無由進>, 또 기가 가벼우면 모르는 것도 우쭐해서 아는 체하게 되고<기경즉이미지위기지氣輕則以未知爲已知> 배우지 않은 것도 마치 다 배워 안다는 듯 말한다.<미학위기학未學爲已學>”

이 말은 범중엄이 이십대 초반의 청년 떠벌이 아웃사이더였던 장재에게 해준 말이다. 장재는 어려서 장군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졌으나 천하의 스승을 찾아다니며 공부한 것이 아니라 그저 동네에서 전쟁에 참전하여 상처입고 퇴역한 늙은이들 장기 두는 곳에 기웃하면서 술심부름이나 하고 훈수나 두면서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병법이 그의 지식의 전부였다. 그러면서 마치 퍽이나 대단한 병법가인양 떠벌이고 다녔다.

어느 날 범중엄이 업무차 향리 관아에 오게 되어 자신이 병법의 대가이니 나를 군사로 써달라며 떠벌리고 있는 장재를 보고는 그에게로 다가가 말하기를, “뼈아프게 들리겠지만<골문愲聞> 젊은이는 아직 멀었네.<이매원爾沕遠> 세상을 떠나 공부를 더 하시게.<벽사위학僻事爲學> 그런 후에 나와도 늦지 않네.<연후현미만然後見未晩>”

그러면서 중용中庸 책을 주었다. 충격을 받은 장재는 그길로 암거관천巖居觀川을 한다. 그는 일생에 두 번 공부 때문에 세상을 등지는데, 그 첫 번째가 범중엄을 만나서 중용 책을 받고 세상을 등진 암거관천巖居觀川이다. 학자로 대성해서 그의 집에는 가르침을 얻으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런데 정호程顥·정이程頤형제가 그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왔는데 막상 대화를 해보니 학문의 깊이가 자기보다 몇 수 위에 있는 대단한 젊은 형제가 아닌가. 이에 부끄러움을 느낀 그는 제자들에게 오늘부터는 정호·정이 형제를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 하거라라는 말을 남기고는 그 즉시로 산속으로 떠났다.

역사는 이를 횡거철피橫渠撤皮라 불렀다.<횡거는 장재의 아호> 철피撤皮란 그동안 호피虎皮방석을 깔고 앉아서 제자를 가르쳤는데 정호·정이 형제가 온 후로 호피 방석을 들고 산속으로 떠났다는 말이다. 횡거橫渠 장재張載는 신유학新儒學의 기풍을 일으킨 오대유종五大儒宗의 한 사람으로 송나라 통 털어 제일인자의 위치에 있는 학자다. 그의 재가제자가 주자다. 역사는 그런 장재를 일러 지지자知止者라 불렀다.

세상에는 삼지三知가 있다. 분수를 알며<지분知分> 족함을 알며<지족知足> 그침을 안다<지지知止>는 말이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에 말한다. 족함을 알면 욕이 없고<지족불욕知足不辱> 그침을 알면 위태롭지 않으며<지지불태知止不殆> 인생 끝날 까지 편안하다.<가이장구可以長久> 지지知止는 대학에서 비롯되는데 대학은 삼강령. 팔조목. 육단계로 모두 열일곱 가규可規가 핵심인데 육 단계 중 첫 번째가 지지知止.

성공불거成功不居라 했다. 성공을 이뤘으면 그곳에 머물지 말라는 말이다. 한 고조 유방 때 1등 공신 장량이 장가계로 도망치면서 남아있는 동지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는 말이다. 사마천은 이런 장량을 일러 지지知止의 사람이라 기록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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