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취재 / 중고제 소리를 찾아서 (2)중고제에서 동편제로
■ 기획취재 / 중고제 소리를 찾아서 (2)중고제에서 동편제로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9.06.06 12:48
  • 호수 9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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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제 시조 김성옥·동편제 시조 송흥록, 판소리 난숙기 열어

호남권, 국립·도립 국악원 두고 국악 진흥에 투자…충청권 ‘냉담’
▲남원시 운봉읍 비전마을에 있는 송흥록 생가. 동상이 서 있다.
▲남원시 운봉읍 비전마을에 있는 송흥록 생가. 동상이 서 있다.
​​​​​​​▲남원시 운봉읍에 있는 남원국악성지전시관 전시실 에 있는 근대5명창 사진. 왼쪽부터 김창환 이동백 송만갑 정정렬 김창룡.
▲남원시 운봉읍에 있는 남원국악성지전시관 전시실 에 있는 근대5명창 사진. 왼쪽부터 김창환 이동백 송만갑 정정렬 김창룡.

 

전기8명창과 판소리 난숙기

중고제를 창시한 김성옥이 활동하기 이전에 전라도 완주에서 걸출한 소리꾼이 등장했는데 그가 권삼득이다. 그는 1771년 전라도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에서 양반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글배우기를 싫어하고 오작 소리 공부에만 전념해 그의 부형은 향반 가문의 수치라 여겨 소리 공부를 단념하도록 강요했으나 권삼득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문중에서는 가문의 명예를 보전하다며 그를 죽이려 했다. 권삼득은 이에 승복하면서 죽기 전에 소리 한 마디 하고 죽겠다고 청했다. 그는 춘향가 중에서 십장가를 불렀는데 그의 비장한 소리가 가문 일동에게 감동과 충격을 주었다. 죽이는 것은 너무 아깝다 하여 족보에서 제명하고 집에서 쫓아내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전주시 덕진구에 있는 전라북도 도립국악원 마당에 세워진 권삼득 기념비에 적힌 내용에 따르면 이후 그는 하한담 최선달로부터 소리의 지침을 받고 심산유곡에 입산해 폭포수 아래에서 독공 득음해 초창기 판소리의 체계를 바로잡았다 한다.

김성옥의 생몰연대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그가 권삼득(1771~1841)의 고수였던 송첨지의 아들 송흥록(1801~1863)의 매부였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권삼득과는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송흥록이 태어난 곳은 남원 운봉이었지만 그가 한 때 살았던 곳이 익산 웅포였다. 이로 보아 전라도 완주, 여산 송씨의 본관인 여산, 강경 등지가 이들의 활동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성옥이 학슬풍으로 병석에 있다 졸했던 곳도 여산이었으므로 처가인 여산송씨 집안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권삼득 이후 김성옥 모흥갑 송흥록 염계달 고수관 신만엽 김제철 황해천 주덕기 방만춘 송광록 등의 전기 8명창의 배출로 판소리는 난숙기에 접어들었다. 이 때 김성옥과 송흥록이 완성시킨 진양조 장단이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진양조의 완성은 정가의 음악적 특성을 판소리에 도입함으로써 판소리의 표현력 증대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남원시에 있는 국립민속국악원 건물
▲남원시에 있는 국립민속국악원 건물
▲전주시 덕진구 전라북도도립국악원에 있는 권삼득 기적비
▲전주시 덕진구 전라북도도립국악원에 있는 권삼득 기적비

동편제의 시조 송흥록

송흥록은 남원시 운봉읍 비전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음악에 천부적인 재질을 가지고 태어나 부친이 한두 번 선창을 하면 그대로 방창했다 한다. 부친 송첨지는 명창 권삼득의 수행 고수였다.

12세 때에 백운산으로 들어가 소리 공부에 전념하고 밤이면 글을 배우며 입산한지 5년 만에 소리를 터득하고 10년만에 득음대성했다고 한다.

1859(철종10) , 의정부 좌찬성 김병기(1818~1875)의 부름을 받고 왕 앞에서 여러 차례 소리를 했는데 이에 철종은 송흥록에게 정삼품 통정대부의 벼슬을 내렸다.

그는 매부인 김성옥에게서 진양조를 처음 듣고 오랫동안 연마하여 이의 완성을 보았고, 우조와 계면조, 그밖에 소리의 모든 것이 신역에 들어왔다 하며 적벽가, 수궁가, 변강쇠타령, 옥중가에 능했으며 특히 슬픈 곡을 잘 했고 귀곡성에 이르러서는 진경에 들어가 수십 개의 촛불이 일시에 꺼지고 하늘에서 귀신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는 말도 전한다.

송흥록의 동생 송광록은 형인 송흥록의 수행고수였으나 형의 창법과 더늠을 익혀 독공으로 명창의 반열에 올랐으며 그의 아들인 송우룡, 손자인 송만갑으로 이어지며 호남에서 수많은 명창들을 배출했다.

송흥록은 이들 명창들의 뿌리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는 동편제의 시조로 평가받고 있다.

 

국악의 성지로 추앙하는 송흥록 생가

​​​​​​​호남에서는 그를 가왕(歌王)’으로 부르며 선양사업을 벌이고 있다. 남원시 운봉읍 비전마을에 있는 그의 생가를 복원해 단장해 놓았으며 그의 동상이 서있다. 비전마을은 동편제 마을로도 불린다.

훗날 명창 박초월(1917~1983)이 그 집에 와서 살았는데 송흥록이 살았던 집과 박초월이 살았던 집이 나란히 복원돼 관광지로 국악의 성지 가왕 송흥록 생가로 불리고 있다.운봉읍 비전마을에 남원국악성지전시관이 있다.

춘향가와 흥보가, 심청가 등의 무대인 남원시에는 국립민속국악원이 있다. 이 곳에는 판소리를 비롯 국악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전시돼 국악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이 찾고 있으며 국학 관련 각종 학습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국립국악원이 있는 곳은 서울의 국립국악원, 남원의 국립민속국악원, 전남 진도에 있는 국립남도국악원, 부산에 있는 국립부산국악원 등 네곳이다. 전라북도는 전주시 덕진구에 전라북도 도립국악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도립국악원 앞 길 이름은 권삼득로이다.

그러나 우리 국악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충남에서는 국악과 관련된 예산 자체가 세워져있지 않고 근대5명창 중 두 명을 배출한 서천에서는 어딜 가도 기념비 하나 볼 수 없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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