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년을 위한 책소개 (21) 하동 - 이시영 작
■ 청소년을 위한 책소개 (21) 하동 - 이시영 작
  • 문영 작가
  • 승인 2019.06.06 13:37
  • 호수 9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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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사실 보고이자 소설이며 인생
▲책 표지
▲책 표지

<하동>은 전남 구례 출신의 이시영 시인의 시집이다. 어딘가에서 시 하동을 읽은 기억이 있다. ‘(앞부분 생략)솔바람 소리도 듣고 복사꽃 매화꽃도 싣고 이제 죽으러가는 일만 남은 물의 고요 연한 흐름(이하 생략)’ 부분에 꽂혀 그의 다른 시가 읽어보고 싶었다.

나는 시가 어렵다. ! 하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감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물이나 자연 속에 자신을 투영하여 누구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구체적이고 손에 딱 잡히는 표현을 좋아하는 나에게 모호한 시어들의 난무는 멀미가 난다. 그런데 이시영 시인의 이 시집은 한 편의 짤막한 사실 보고이고 소설이며 인생이다. 그래서 쉽고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아름다운 시어들의 조합이 아니고 아픔을 지니고도 의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시가 되었다.

서른이나 마흔 자 내외의 단시(短時)도 여러 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 한 편을 옮겨 본다.

 

어머니의 주름진 손이/아들의 발등을 가만히 덮었다// 새벽이다.(, 전문)’

 

6.25 전후의 구례군 산동면 어디쯤이거나, 계엄군이 눈 시퍼렇게 뜨고 골목을 돌고 있는 전두환 시절의 어느 새벽 풍경이리라. 서슬 퍼런 눈들 때문에 아들의 주검을 슬퍼할 수조차 없는 늙은 어머니는 가만히 아들의 벗은 발을 감싸 안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모습이 그려진다.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던 우리 현대사의 진실이 시 속에 있다.

단시(短詩)가 요즈음 유행하고 있다. 단시를 읽을 때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산문시에서 늘어졌던 감성을 짧게 압축하여 팽팽하게 긴장시키기 위한 장치인지 모르지만, 시적 감수성이 부족한 나는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헛갈릴 때가 많다.

모든 것이 축약되고 줄여서 사용되는 세상이다. 긴 글은 단번에 읽을 수 없고, 나중에 이어 읽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바쁜 세상을 사는 현대인들은 짧고 쌈박한 것을 좋아하는데, 경구는 잔소리 같고 단시가 어울린다. SNS로 소통되는 세상에는 꼭 어울리는 문학 장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빠르게 쓰고, 읽고, 그리고 빠르게 소비되는 형태로 단시 쓰기가 활성화 되지 않나 싶다.

나는 작가의 산문시가 참 좋다. 장편(掌篇)소설 같고, 애잔한 수필 같다. 작가는 그가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와 그들이 겪어냈던 시간을 이 책속에서 다시 살려내었다. 작가는 행복했을 것이다. 아니 작가의 시 속에서 환생한 그의 친지들은 행복했을 것이다. 그들을 가슴 시리게 사랑한 이시영 시인이 있으니까.

<문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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