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은 전남 구례 출신의 이시영 시인의 시집이다. 어딘가에서 시 ‘하동’을 읽은 기억이 있다. ‘(앞부분 생략)솔바람 소리도 듣고 복사꽃 매화꽃도 싣고 이제 죽으러가는 일만 남은 물의 고요 연한 흐름(이하 생략)’ 부분에 꽂혀 그의 다른 시가 읽어보고 싶었다.
나는 시가 어렵다. 아! 하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감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물이나 자연 속에 자신을 투영하여 누구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구체적이고 손에 딱 잡히는 표현을 좋아하는 나에게 모호한 시어들의 난무는 멀미가 난다. 그런데 이시영 시인의 이 시집은 한 편의 짤막한 사실 보고이고 소설이며 인생이다. 그래서 쉽고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아름다운 시어들의 조합이 아니고 아픔을 지니고도 의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시가 되었다.
서른이나 마흔 자 내외의 단시(短時)도 여러 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 한 편을 옮겨 본다.
‘어머니의 주름진 손이/아들의 발등을 가만히 덮었다// 새벽이다.(길, 전문)’
6.25 전후의 구례군 산동면 어디쯤이거나, 계엄군이 눈 시퍼렇게 뜨고 골목을 돌고 있는 전두환 시절의 어느 새벽 풍경이리라. 서슬 퍼런 눈들 때문에 아들의 주검을 슬퍼할 수조차 없는 늙은 어머니는 가만히 아들의 벗은 발을 감싸 안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모습이 그려진다.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던 우리 현대사의 진실이 시 속에 있다.
단시(短詩)가 요즈음 유행하고 있다. 단시를 읽을 때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산문시에서 늘어졌던 감성을 짧게 압축하여 팽팽하게 긴장시키기 위한 장치인지 모르지만, 시적 감수성이 부족한 나는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헛갈릴 때가 많다.
모든 것이 축약되고 줄여서 사용되는 세상이다. 긴 글은 단번에 읽을 수 없고, 나중에 이어 읽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바쁜 세상을 사는 현대인들은 짧고 쌈박한 것을 좋아하는데, 경구는 잔소리 같고 단시가 어울린다. SNS로 소통되는 세상에는 꼭 어울리는 문학 장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빠르게 쓰고, 읽고, 그리고 빠르게 소비되는 형태로 단시 쓰기가 활성화 되지 않나 싶다.
나는 작가의 산문시가 참 좋다. 장편(掌篇)소설 같고, 애잔한 수필 같다. 작가는 그가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와 그들이 겪어냈던 시간을 이 책속에서 다시 살려내었다. 작가는 행복했을 것이다. 아니 작가의 시 속에서 환생한 그의 친지들은 행복했을 것이다. 그들을 가슴 시리게 사랑한 이시영 시인이 있으니까.
<문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