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취재 / 중고제 소리를 찾아서 (3)판소리의 성음
■ 기획취재 / 중고제 소리를 찾아서 (3)판소리의 성음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9.06.11 22:25
  • 호수 9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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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성음에 뿌리깊은 서민들의 문화 담겨있다
고음으로 올라가도 에너지가 떨어지지 않는 ‘통성’
자연에서 나는 소리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 가능

판소리를 노래라 하지 않고 소리라고 하는 것은 이유는 무엇일까. 새소리, 바람소리, 물 흐르는 소리, 종이 울리는 소리..... 판소리에서는 이런 소리를 목소리로 표현하고 심지어 귀신이 우는 소리까지 표현한다. 판소리는 이처럼 자연에서 나는 소리를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하며 발성 자체가 서양의 성악과는 다르다. 판소리의 발성의 특징에 대해 알아본다.

자연의 소리를 내는 판소리 성음

판소리는 서양의 전통적인 성악과는 차이가 크다. 그 차이는 발성법에서 나타난다. 서양의 성악에서 사용하는 발성과 창법을 벨칸토 창법이라 하는데 이는 소리를 머리까지 끌어올려 공명을 이루어 부드럽고 맑은 음색을 내는 것이다. 그러나 판소리에서는 뱃속에서부터 소리를 끌어모아 성대를 통해 입 밖으로 질러댄다. 이를 통성이라 하는데 힘이 넘치고 사람들의 감정과 삶을 훨씬 더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아주대 음성학 연구소의 문승재 교수는 서양의 성악가와 판소리 명창의 소리를 분석해 연구한 결과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보통 사람은 높은 소리로 가면 에너지가 뚝뚝 떨어진다. 그런데 판소리에서는 고주파에서도 크어지지 않는다. 굉장히 높이 올라간다

▲성악가와 판소리 창자의 성음 주파수 분석. 판소리에서는 고주파로 올라가도 에너지가 큰 변함이 없다.
▲성악가와 판소리 창자의 성음 주파수 분석. 판소리에서는 고주파로 올라가도 에너지가 큰 변함이 없다.

복식호흡을 하는 것은 판소리나 벨칸토 창법이나 모두 같다. 강한 에너지를 지닌 이런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판소리 창자들은 왜 이런 강한 에너지를 지닌 창법으로 노래를 해야 했을까. 판소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소리판의 특징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모든 공연에서 첫 번째 기본자는 공연자다. 판소리에서는 소리꾼과 고수가 공연자가 된다. 소리꾼은 고수의 도움을 받아 판소리가 끌어내고자 하는 세계를 일차적으로 만들어 낸다. 고수는 북으로 장단을 치면서 소리꾼을 도와 소리판을 이끌어간다.

소리꾼은 고수의 장단에 맞추어 창과 아니리를 교체 반복하면서 사건과 인물과 배경을 그려나간다. 그리고 너름새라 하는 작지만 유효적절한 동작들을 중간중간 연출해서 다양한 몸짓언어를 만들어낸다. 때로는 소리꾼으로, 때로는 등장인물로, 판소리 속 해설자로 변신을 계속하며 창과 아니리와 너름새를 통해 청중을 상황 속으로 끌어들인다.

판소리의 또 하나의 요소는 관객이다. 판소리에서 관객은 서양음악처럼 지켜보는 것만이 아니라 추임새를 넣어 공연을 완성한다. 판소리의 청중은 듣기 위해서가 아니고 참여하기 위에 소리판에 간다.

대상의 이면을 드러내는 판소리 성음

서울대 국어교육과 김대행 교수는 춘향이야기 심청이야기 모르는 사람 없다. 그러나 그것을 재현되는 음악과 이야기가 너무 현실감이 있고 눈앞에서 재현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깊이 빠져들고 감동을 받는다. 청중이 추임새를 해서 같이 어우러지고 청중의 호응을 받아 여기에 맞게 변화가 있는 소리판을 만들어가는, 현장성을 늘 고려한 공연을 만들어 간다. 여기에서 판소리는 서양의 음악 공연을 뛰어넘는다고 말하고 있다.

소재 역시 다양하다. 백만대군이 전쟁을 벌이는 웅장하고 처절한 장면이 단 한사람의 소리를 통해 재현되는가 하면 지극히 개인적인 임을 잃은 여인의 탄식도 판소리의 소재가 된다. 서사적인가 하면 서정적이고, 집단적인가 하면 개인적인 크고 작은 사건과 상황들이 소리를 통해 표출됨으로써 청중들을 사로잡는다.

단 한 사람 소리꾼의 한정된 목소리로 다양한 사물과 상황을 다채롭게 표현하는 방법이 바로 성음이다. 판소리에서 득음을 했다는 말은 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해서 자연의 모든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음을 가리킨다.

이같은 성음을 얻기 위해 폭포수 아래에서 수련을 하기도 하고 동굴 속에서 10년 소리 공부를 하기도 한다.

수련이 안된 창자들은 자연의 상황을 실감있게 표현하지 못한다. 판소리는 음질이나 음색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이나 자연의 모든 대상에 대한 현상뿐만 아니라 본질까지도 표현해서 대상의 깊은 의미를 표현한다. 그 깊은 의미, 즉 이면을 드러내는 것이 성음이다.

목이 쉬었다 터져야 명창이 된다

사람들이 말을 할 때는 흉성, 즉 가슴에서 나오는 소리이다. 그러나 판소리할 때 나오는 소리는 아랫배에서 나오는 소리이며 호흡을 실어서 내는 통성이다. 아랫배에 힘을 주어 밖으로 소리가 튀어나오게 하는 것이 통성이어야 우렁찬 소리를 낼 수 있다. 통성으로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성음을 낼 수 없다.

판소리 연구자들은 판소리는 민중의 생활 속에서 잉태한 음악이기 때문에 발성 자체가 민중적이다. 역동적이고 원시적이고 원초적이고 또 생활적인 육체적인 느낌을 주는 발성을 추구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의 단청이 빨간색과 갈색 등 여러 색이 섞여 중후한 색을 내듯 판소리도 여러 음색이 혼합되어 있다. 이른바 쉰 목소리이다. 이러한 성음이 잡혀야 판소리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음을 체화시킨 상태를 득음을 했다고 흔히 말한다.

특유의 쉰 목소리는 성대의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100일 공부를 한다. 성대를 무리하게 사용하면 붓는다. 그래서 목이 쉬게 된다. 쉰 목소리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수련을 통해 변형된 상태로 고정되도록 한다. 목이 쉬었다 터졌다 해야 조화가 생기고 대상의 이면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성대는 놀라운 힘을 지닌다. 보통 사람의 경우 고음으로 올라가면 에너지가 거의 없다. 그러나 명창의 경우는 에너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음을 실험 결과가 보여주고 있다.

사물의 이면을 그리는 판소리

전북대 음성과학연구소에서는 소리꾼과 성악가의 성대를 실험을 통해 비교 분석했다. 성대의 면적이나 길이는 별 차이 없지만 성악가의 성대는 깨끗하고 흠집이 없어 성대가 닫힐 때도 완전히 닫혔지만 소리꾼의 성대는 흠집이 있어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수련으로 인한 성대 변형이 생겼기 때문이다.

▲성악가의 성대와 판소리 명창의 성대
▲성악가의 성대와 판소리 명창의 성대

소리꾼의 성대가 흠집이 있어 완전히 닫히지 않는다는 것은 소리의 양이 샌다는 의미이다. 복식호흡을 하지 않으면 폐로 들어가는 공기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판소리에서 복식호흡, 즉 통성은 절대적인 요소이다.

후두를 내시경을 통해 살펴보았다. 소리꾼은 후두를 좁혀 발성을 했다. 고음을 낼 때 더욱 두드러졌다. 이는 서양식 발성으로 보면 잘못된 발성법이다. 후두를 확 열지 않아 비강이나 구강과 공명이 안된다.

반면 성악가의 발성시 후두는 전혀 좁혀지는 일이 없이 공간을 확보하며 열려있어 소리를 공명시키고 있다. 고음을 낼 때 후두의 공간은 더욱 확장됐다. 후두를 활짝 열고 가슴과 머리와 구강을 최대한 공명시켜 성량을 최대한 크게 하면서 배음이 안나는 쪽으로 맑은 소리를 내는 것이 서양의 벨칸토 창법이다.

반면에 판소리는 진동음과 소음이 적절히 구비돼 나오는 소리이다. 즉 성대의 흠집 통해 나오므로 탁음이 나온다. 성대를 변형시켜가며 소리를 하는 소리꾼들은 온몸으로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다. 가장 맑고 고운 소리를 낸다는 안숙선 명창도 소리를 할 때는 혼신의 힘을 다한다.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고는 판소리를 할 수 없다.

서울대 김대행 교수는 판소리에서는 어떻게 하면 고운소리를 낼 것이냐에 관해서는 전혀 신경을 안쓴다. 절박할 때는 절박한 소리로, 원통할 때는 원통한 소리로, 급할 때는 급한 소리로 한가할 때는 한가한 소리로... 음악성이 그것이 나타내는 현실성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판소리이다고 말하고 있다.

판소리의 발성법은 사물과 상황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체득된 것이다. 판소리 적벽가에서 새타령은 적벽대전에서 죽은 원혼이 새가 되어 지저귀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세기 후반 서편제 소리의 대가 이날치 새타령을 부르면 실제로 새가 날아들었다 한다.

궁극적으로 보다 자연에 가까운 소리를 내기 위함이다. 파루 소리와 일반 종소리는 다르다. 그 소리들을 목소리로 구현해내는 것이 판소리의 소리이다. 인간의 목소리로 이런 것들을 보여준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그 장면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한다. 소리꾼들은 이를 두고 이면을 그린다고 말한다.

숙명여대 인문학부 정병헌 교수는 판소리는 인생의 다양한 측면을 다 드러내기 때문에 동시에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곰삭은 소리로 할 수밖에 없다. 그게 탁하고 쉰 듯한 소리이다.”고 말하고 있다.

판소리의 공연장은 서양처럼 규격화된 공간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은 생활의 현장이었다.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고 오고가는 속에 이런 판의 배치가 이루어진다. 판소리의 성음에는 이같은 뿌리깊은 서민들의 문화가 담겨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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