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취재/중고제 소리를 찾아서 (5)중고제 판소리의 비조 최선달
■ 기획취재/중고제 소리를 찾아서 (5)중고제 판소리의 비조 최선달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9.07.04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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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제 판소리, 결성 최선달에 의해 시작”

영조 때 가선대부 품계 받은 명창 최선달
▲영조 때 발간한 해동지도 속의 결성현
▲영조 때 발간한 해동지도 속의 결성현

판소리사에서 하한담과 최선달은 판소리의 비조로 받들어지고 있다. 창악인들이 소리를 마치고 맨 끝에 역대 명창들을 순서대로 일일이 호명을 하는 소리풀이를 하는데 하한담과 최선달을 제일 먼저 들었다고 <조선창극사>에 기록되어 있다. 최선달이 태어난 홍성군 결성면은 중고제 소리의 탯자리로 알려져 있다. 뉴스서천 취재팀이 지난 29일 홍성군 결성을 찾아 최선달의 흔적을 더듬어보았다.

내포지방 물류의 중심 결성현

홍성군 결성면은 조선시대에는 결성현이었다. 결성면 읍내리에는 동헌 건물이 있고 동헌 뒤로 결성읍성이 있다. 일제가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홍주와 결성을 합해 홍성군으로 했다고 한다.

천수만의 바닷물이 나지막한 산들을 헤집고 결성읍까지 들어와 뱃길이 남당항으로 이어졌는데 지금도 해창(海倉)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내포지방의 물산이 이곳으로 모여들어 조운을 이용해 한양으로 실려나갔으며 각종 해산물이 이곳을 통해 내륙으로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어염시초가 풍부해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한다.

결성면 성남리와 읍내리에 모심을 때 부르는 농요가 전승돼 내려왔는데 가창자들과 동네 유지들의 노력으로 1991년도에 재현되었으며 1993년도엔 제34회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최우수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1996년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었다. 결성농요를 판소리의 기원으로 보기도 한다.

당시 경연대회에 140여명의 단원이 출연했는데, 결성농요를 이끌었던 소리꾼은 13명이었다. 이들 13명의 소리꾼 중에서 9명이 최선달의 후손이다. 최선달이 명창의 소리가 오랜 세월 동안 이어지다가 결성농요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도지정문화재 결성농요

▲결성농요보존회 건물
▲결성농요보존회 건물

결성면 읍내리에 결성농요·농사박물관과 결성농요보존회 건물이 나란히 있다. 결성농요보존회를 방문해 최덕수 보존회장을 만났다. 그는 최선달의 9대손이라 했다. 그의 안내로 해주최씨 집성촌인 성남리 중리마을을 찾았다. 그곳에 최선달의 생가터(남성리 578번지)가 있다. 중고제 판소리를 개척한 명창 최선달(崔先達·1726~1805)은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최선달의 본명은 최예운(崔禮雲)이다. 1998년에 최선달과 관련된 고증작업이 실시됐는데 후손인 최재설씨(당시 결성면장) 집안에 전해오던 글이 결정적 단서가 됐다. 붓글씨로 적힌 종이에는 “25세인 예운 할아버지가 명창으로 이름나서 가선대부의 품계를 제수받았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 글을 근거로 집 뒷산의 최씨 집안 비석을 찾아보았다. 그 결과 가선대부 최공지묘(嘉善大夫 崔公之墓)’라고 새겨진 비석을 발견했다. 이 비석은 이장을 하면서 현재 결성농요농사박물관 마당에 세워져 있다. 비석 뒷면에는 감역 기옥 개건(監役 基玉 改建)’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하는데 비석 뒷면은 마모가 심해 뒷면은 판독하기 어려웠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선달은 본명이 최예운이며 해주최씨 가문의 결성 사람으로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다. 명창으로 가선대부 품를 받은 것은 최선달이 최초이다.

한양으로 불려가 명창칭호

▲명창 최선달의 생가터. 성남리 중리마을
▲명창 최선달의 생가터. 성남리 중리마을

결성면 성남리에는 최선달과 관련한 이야기들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최선달의 어머니가 잠을 자는데 커다란 누에 한 마리가 성남리 앞바다에서 입으로 실을 내뿜는 것이었다. 누에의 등에는 일곱 개의 구멍이 있는데 일곱 색의 구름이 뭉개뭉개 일어나더니 나중에는 일곱 색깔의 무지개가 되어서 자기 몸을 감는 황홀한 꿈이었다.

▲명창 최선달 묘 이장 이전의 비석
▲명창 최선달 묘 이장 이전의 비석

이런 꿈을 꾸고 나서 최선달이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칠색이 영롱한 구름을 예찬한다는 뜻으로 아기 이름을 예운(禮雲)’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최선달이 집 앞에서 봄에 모를 심으며 노래를 불렀다.

어럴럴 상사리 어럴럴 상사리 에헤헤이여 상사리야…….”

때마침 한양에서 높은 관리가 시찰을 나왔을 때였다. 이 관리는 먼발치로 최선달의 소리를 듣고 감탄했다.

저 소리꾼은 누굽니까? 목청이 참 좋고 예사소리가 아니군요

옆에서 안내하던 이방이 대답하기를, “저 소리꾼은 이 고을에 사는 최선달입니다. 지금 논에서 모를 심으며 부르는 소리입니다

이로 인해 최선달은 한양으로 불려 올라가게 되었다. 그 이후로 한양에서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주를 갈고 닦아서 명창의 칭호를 받게 되었다 한다.

최선달의 생가 뒤에 있던 묘는 최근 선산으로 이장을 했다. 후손 최덕수씨의 안내로 그의 묘지를 찾았다. 결성면 금곡리 590-4 일원의 구릉에 자리잡은 묘에서는 옛날에는 바다였을 들판이 보이고 멀리 남동쪽으로 오서산(791m)이 보였다.

▲명창 최선달의 묘(오른쪽)와 9대손 최덕수씨(현 결성농요 보존회장)
▲명창 최선달의 묘(오른쪽)와 9대손 최덕수씨(현 결성농요 보존회장)

새로 건립한 묘비에는 가선대부해주최공휘예운지묘(嘉善大夫海州崔公諱禮雲之墓)’라고 씌어 있고 그 왼쪽 부친의 묘에는 절충장군해주최공위춘기지묘(折衝將軍海州崔公諱春起之墓)’라고 씌어 있다. 절충장군은 조선시대 무신으로 정3품 당상관의 품계이다.

중고제 위상 확립 위해 기념관 필요

홍성군 결성면은 김좌진 장군과 만해 한용운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날 629일 만해 한용운의 입적일을 맞아 결성향교에서는 홍성의 문화 예술인들의 주관으로 만해 한용운 문학캠프가 열렸는데 중고제 판소리의 맥을 잇고 있는 박성환 명창이 출연하여 판소리 심청가 중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불렀다.

심봉사가 눈을 뜨게 되자 그 기운을 받아 전국의 맹인들이 모두 눈을 뜨게 되는 대목에서 새 세상을 여는 환희에 넘치는 분위기로 전환돼 청중들의 환호가 잇따랐다. 과연 판소리는 오늘날에도 생생한 감동을 주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편 지난 2월에 열린 홍성군의회에서는 최선달 명창의 판소리 역사 고증과 기념관 건립이 논의됐다. 장재석 군의원은 자유 발언을 통해 결성 농요·농사박물관과 함께 최선달 명창 기념관을 건립하면 우리지역의 다양한 문화유산 체험과 볼거리 제공에 크게 기여 할 것이라며 그의 업적을 기리고 중고제 판소리의 위상을 확립하며 지역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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