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산에 담비가 살고 있다”
“천방산에 담비가 살고 있다”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9.07.10 11:07
  • 호수 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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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사라진 남한에서 최상위 포식자

고라니·청설모·멧돼지 사냥…보호 필요
▲무인센서카메라에 포착된 담비. 족제비과의 중형 포유류이지만 남한에서 최상위 포식자 자리를 차지했다. (사진제공 한겨레)
▲무인센서카메라에 포착된 담비. 족제비과의 중형 포유류이지만 남한에서 최상위 포식자 자리를 차지했다. (사진제공 한겨레)

서천군의 진산 천방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가 골짜기를 이룬 판교면 만덕리에 살고 있는 A씨는 지난 54일 옆집 아저씨로부터 얘기를 들었다. 산에 큰 짐승이 있다는 것이었다. 고라니를 한 마리 잡아서 절반 정도를 먹었다는 것이다. 다음날 나머지 절반도 끌고 가 먹었다는 것이다. 발자국이 넙적한 것이 특징이고 고라니 먹은 양으로 보거나 발자국으로 보더라도 삵 정도가 아니라 고양이과의 큰 짐승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들개일 거라고 말했다.

▲지난 5월 판교면 만덕리에서 담비가 고라니를 사냥하며 남긴 발자국
▲지난 5월 판교면 만덕리에서 담비가 고라니를 사냥하며 남긴 발자국

A씨는 발자국을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어떤 짐승인지 네티즌들의 자문을 구했다. 한 전문가가 답글을 달았다. “일단 발톱이 찍힌 걸 보니 고양잇과 포식자는 아니네요. 그렇다면 들개, 담비, 반달곰 등이 다 후보가 되는데……. 배설물 같은 다른 단서가 있으면 좋겠네요

또 다른 전문가는 발자국은 크지도 적지도 않은 개발자국이네요라고 답글을 달았다. 다들 들개일 것으로 생각했고 A씨는 뒷산으로 산책을 나서는 것도 주저했다.

A씨는 집 뒤꼍을 감싸고 있는 대숲 언저리에 닭장을 짓고 토종닭 몇 마리를 키우고 있다. 5월초에 병아리 7마리가 부화해서 갓 열흘이나 지났을까. 병아리가 1마리씩 행방불명되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마리씩, 이틀에 한 마리씩 병아리들이 사라지더니 10여일 만에 병아리 모두가 사라졌다. 흔적도 없었다. 그 무렵 다른 닭장에서 또 다른 암탉이 부화에 성공 병아리 7마리가 자라고 있었다. 4마리를 분양해주고 3마리가 남았는데 어느 날 1마리가 사체로 발견됐다. 이빨로 물어뜯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병아리 14마리 중 8마리가 물려간 것이다.

▲담비에게 물려간 병아리
▲담비에게 물려간 병아리

지난 7일 새벽 A씨는 닭들의 비명소리와 개가 짖어대는 소리에 놀라 전등을 켜들고 닭장으로 달려갔다. 청설모 같기도 하고 족제비 같기도  한 긴 꼬리를 지닌 약 30cm의 몸길이를 가진 동물이 닭장에서 도망쳐 나가더니 완전히 도망가지 않고 멈추어서 닭장 안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A씨는 놈과 눈이 마주쳤다. 소리를 치며 막대기를 뻗어 위협을 가해 멀리 내쫓았다. A씨는 겪은 일을 SNS에 올렸다. 어떤 이가 경험을 말하면서 담비일 거라고 했다.

청설모는 사람 보면 쥐새끼처럼 바로 도망가지요. 일단 도망가 나무 위 이런 데서 가만히 있지요. 담비란 놈은 사람을 빤히 쳐다보고 도망가다가도 다시 서서 사람이 위협하지 않을 때까지 그놈도 사람을 관망하고……. 털 색깔이 청설모는 검은색 내지 검회색, 담비는 물개처럼 배 부분이 청설모보다 더 굵고 누런색계통에 목덜미나 목 주위는 황금빛으로 아주 보기 좋은 색상에다 입 주위는 검은색이고...큰 놈은 청설모보다 훨씬 몸집이 큽니다

A씨는 인터넷을 검색해 사진을 보고 자신이 새벽에 본 동물이 담비임을 확인했다. 지난 5월초 고라니를 잡아먹은 동물도 바로 그 담비였을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척추동물 > 포유강 > 식육목 > 족제비과 > 담비속에 속하는 담비는 몸길이 약 35cm ~ 60cm, 몸무게 약 2kg ~ 3kg 정도의 작은 동물이지만 호랑이와 표범 등 맹수가 사라진 남한의 깊은 산에서 최상위 포식자 구실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담비가 다 자란 고라니와 멧돼지 새끼 등 대형동물을 연중 사냥하는 생태계 최고 포식자 구실을 하고 있음이 무선추적기와 무인센서카메라를 이용한 조사와 먹이분석 등을 통해 드러났다는 것이다.<이하 한겨레 조홍섭 기자 기사 내용>

국립환경과학원은 20134년 동안 담비에 대한 조사 결과 담비가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이자 넓은 행동권을 지닌 우산종으로서 생태계 보전에 활용 가치가 큰 동물임이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담비는 큰 수컷이라야 몸무게가 3정도이지만 조사 결과 무게 10인 고라니 성체까지 사냥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위해 3~5마리가 무리지어 협동 사냥하는 것으로 연구진은 추정했다. 실제로 고라니의 사체가 손상된 상태를 보면 귀와 눈 등과 함께 배가 공격받은 흔적이 드러나, 담비 한 마리는 고라니 등에 뛰어올라 얼굴을 공격하고 다른 한 마리는 배의 내장을 공격해 결국 주저앉히는 전략을 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사냥한 고라니의 절반쯤은 성체였고 멧돼지의 90%는 어린 개체였다. 연구진은 3마리로 이뤄진 담비 한 무리가 연간 다 자란 고라니 또는 멧돼지 새끼 9마리를 사냥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포유류 가운데 담비가 즐겨 잡아먹는 먹이로는 청설모가 가장 많아 전체의 20%를 차지했고, 이어 노루 혹은 고라니가 16%, 멧돼지·비단털들쥐·하늘다람쥐가 13%로 뒤를 이었다. 그밖에 다람쥐, 멧토끼, 등줄쥐, 두더지도 배설물에서 흔적이 발견됐다. 연구진은 담비 한 무리가 연간 75마리의 청설모를 잡아먹는 것으로 계산했다. 담비는 야행성이지만 여름이면 밤낮 가리지 않고 쥐, 청설모, 개구리 등을 먹어치우는 잡식성이라 한다.

A씨의 주장대로라면 천방산을 중심으로 담비가 살고 있다. 서천의 산간마을 곳곳에서 고라니와 멧돼지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담비는 이의 상위 포식자로 잘 보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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