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 산책
■ 송우영의 고전 산책
  • 송우영
  • 승인 2019.07.31 15:46
  • 호수 9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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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 노인이 비단 옷 입은 채 고기 반찬을 먹으려면

내가 가진 게 없으면 사랑을 베풀 수 없고<불부무이위인不富無以爲仁> 베풀지 못하면 사람을 모을 수 없나니<불시무이합친不施無以合親> 백성의 근본은 넉넉함에 있다<민유유본民有裕本.육도六韜 수사守士>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민유유본民有裕本이란 글자의 유에 있다. 는 쉽게 말해서 모든 면에서 넉넉함이라는 말인데 춘추시대春秋時代 나라 환공桓公을 도와 최초의 패자覇者로 오르게 한 명재상 관중管仲은 관자管子목민牧民편에서 말한다.

창고가 그득하면 예절을 알고(倉庫實則知禮節고실즉지예절), 옷과 양식이 풍족하면 영욕을 알게 된다(衣食足則知榮辱의식족즉지영욕)”

이 말은 관중과 포숙아가 두 명의 세자 스승으로 있을 때 장차 세자가 군주가 되면 백성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서 답으로 나온 말이라 전한다.

이것을 맹자는 공자의 수신제가치국에서 치국의 행동강령 제1덕목으로 삼는댜. “그러므로<시고是故>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천자가 되고<득호구민이위천자得乎丘民而爲天子>, 천자의 마음을 얻으면 제후가 되고<득호천자위제후得乎天子爲諸侯>, 제후의 마음을 얻으면 대부가 된다<득호제후위대부得乎諸侯爲大夫>. <만약에>제후<군주>가 사직을 위태롭게 한다면<제후위사직諸侯危社稷> 그 제후<군주>를 갈아 치워라<즉변치則變置>”

이 문장은 그냥 지나치면 아무 보잘 것 없는 문장에 불과하지만 따지고 읽어본다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2천 한 오백여년 전 쯤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어떠해야 했고 백성의 생활은 어떠해야 했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후대로 전해지면서 특히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가난은 어디까지나 백성 개인들만의 책임으로 한정된다. 누구든 머리 털끝 하나라도 들 만큼의 힘이 남아있다면 무슨 일이든 해서든 스스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여기서 나온 말이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조선시대 임금님은 이런 백성들의 노력 때문에 백성들의 가난에 대한 책임을 당연히 백성들이 못나서 그런 것이려니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그 결과 백성들은 다는 아니어도 대부분은 늘 가난을 일용할 양식처럼 먹고살면서도 또한 그것을 당연시하며 가난을 자식에게 유산이라도 물려주는 양 세습을 했다.

유산으로 물려받은 가난은 족쇄가 되어 하루 4시간 자고 한 달 600시간을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게 됐고 거리에 넘쳐났으며 그 결과는 빈곤을 대하는 국가의 새로운 자세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첨단 과학이 하늘을 찌르는 이 시대에 우리는 아직도 가난을 염려하며 살아야 하는가.

맹자는 이렇게 말한다. “가르침을 바르게 하여<근상서지교謹庠序之敎> 효도와 우애로써 의를 삼는다면<신지이효제지의申之以孝悌之義> <백성들은>오십 나이에 비단옷을 입으며<오십자가이의백의五十者可以衣帛矣>, <백성들은>육십 나이에 길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는 일이 없으며<반백자불부대어도로의頒白者不負戴於道路矣>, 칠십 노인이 되면 비단옷을 입은 채 고기반찬을 먹는다<칠십자의백식육七十者衣帛食肉. 맹자孟子양혜왕梁惠王장구章句>”

쉽게 말해서 어려서부터 공부를 제대로 해서 공부를 제대로 한 그들이 나라를 다스린다면 그런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문제는 악마는 바쁠 때 어른에겐 술을 보내고<마망장여주魔忙長與酒> 귀신은 바쁠 때 아이에겐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유혹을 보낸다<귀망소여희鬼忙少與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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