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아베의 헛된 꿈
■ 모시장터-아베의 헛된 꿈
  • 칼럼위원 정해용
  • 승인 2019.08.22 10:16
  • 호수 9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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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더웠다. 지구 온난화까지 더해진다고 생각하니 한 여름 더위는 예전 더위와 비할 수없이 더 뜨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느낌이 객관적으로 얼마나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기록을 근거로 하면, ‘사상 유례 없는 더위와 같은 말은 좀 과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십수년 어간에는 가장 더운 날씨였을지 몰라도 몇백년이나 몇천년까지 거슬러올라가면 사상 유례없는과 같은 말은 쉽게 쓸 수가 없을 것이다.

그 덥던 기후도 처서가 들어오니 어쩔 수 없이 풀이 꺾였다. 자다가 홑이불을 끌어 덮는 것으로는 더 이상 충분치 않다. 이제 좀 도톰한 침구를 꺼내야 할 것이다. 절기따라 어김없이 추위가 물러가거나 더위가 꺾이는 현상을 보면 자연의 법도는 엄정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옛 사람들은 이것이 바로 천도(天道)라고 말했다.

만물은 생겨났다 없어지며 가득 찼다 비기도 하며, 한번 어두우면 한 번 밝아집니다(消息滿虛 一晦一明)’ <장자>에 나오는 말인데, 젊은 공자가 늙은 노자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할 때 노자가 해주는 말이다. 요컨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으며, 이러한 요지부동의 법칙이 바로 자연의 이치며, 이 이치가 바로 천도, 즉 도()라는 것이다.

인류문명이 자연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들으면 마치 인간이 자연의 순리조차 바꾸는 능력을 지닌 것처럼 들리지만 어림도 없는 얘기다. 자연은 호락호락 인간의 뜻대로 바뀌어주질 않는다. 작게 보면 자연의 기후마저 바뀌게 만드는 인간의 힘이 대단한 것 같기도 하지만, 자연은 기상이변으로 대응하여 인간의 도전을 순식간에 무력화시킨다. 어떤 인간도 순리를 이길 수 없다.

근래 일본의 아베 정권이 보여주는 태도가 순리(順理)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있었던 일을 없었던 것으로 포장하는 역사 왜곡 같은 것은 천도에 부합하는 태도가 아니다. 있었던 것을 없었던 것으로 포장하자면 엄청난 힘이 든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거짓은 깊이 먹혀들지 않는다. 그것이 순리다. 다만 일본 내에서는 이 거짓 논리가 어느 정도 먹혀든 것처럼 보인다. 일본제국의 침략이 이웃 나라 근대화에 도움이 됐으며 한국의 어린 처자들을 강제로 끌어가 위안부로 동원한 일은 없다거나, 한인들을 강제로 끌어다 군대나 산업현장에서 제멋대로 부려먹은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책임질 일이 없다는 등의 주장을 견지하고 있는 저 오만한 아베가 10년 넘게 총리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그 자신은 얼마나 힘이 들까. 거짓말로 버티기란 어려운 일이다. ‘한껏 발돋움한 자세로는 오래 서 있을 수가 없으며 가랑이 찢어지도록 넓게 뛰는 걸음으로는 오래 걷지 못한다(企者不立 跨者不行=<노자> 24)’.

이제 핵무장이라도 갖추고 소란스러운 세계 안에서 다시 강국 행세를 하고 싶은 아베의 야망은, 그것이 자기 나라를 위한 충정의 발로라 해도 결코 현명한 생각이 아니다. 강대국 행세를 하려면 우선 주변국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역사적 진실부터 부정하는 거짓으로는 그런 토대를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과와 반성 없는 일본의 재무장을 어느 나라가 양해해주겠는가.

20세기 세계 최대의 경제부국으로 떠올랐던 일본이, 지도자의 헛된 야망 속에 요즘은 기본 시스템부터 망가져가는 느낌이다. 아베는 무언가에 홀려 있는 사람 같다. 후쿠시마 방사능에 대한 철저한 방재 대신 안전하다는 막연한 정치적 선언만으로 후쿠시마가 정말 안전해질 수 있는가. 역사적 과오에 대한 진정한 반성 대신 우리는 결백하다는 우격다짐만으로 일본의 과거가 정말 깨끗해질 수 있는가. 한번 밝았으니 이제 저물어가는 것인가. 저무는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짚은 아베의 생떼는 가련하게 느껴진다.

(시인, 칼럼위원 peacepre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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