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 하면 울컥 고향 생각이 난다. 시골에서 자란 탓일까. 내 고향 마을은 중학교 때까지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골마을이었다. 등잔불 밑에서 공부했다. 꾸뻑 졸음이라도 오면 등잔불에 까까머리가 호르륵 그을리기 일쑤였다.
“와, 공부 많이 했네”
친구들은 그을린 머리를 보면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것은 훈장과도 같은 공부 열심히 했다는 증좌(?)였다.
밤이 되면 사방팔방이 어둠 천지였다. 수십리 밖 등잔 불빛도 보였고 먼 산녘 돌아가는 도깨비 불빛도 보였다. 멍석을 깔고 누우면 여름 밤하늘의 별빛은 우수수 지상으로 쏟아져내렸다.
나는 어렸을 적 먼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똥별이 떨어지길 기다리곤 했다. 휘릭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면 1초도 안되는 사이에 소원을 빌었다.
“산수 좀 잘하게 해주세요”
그러나 이루어진다는 소원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수학을 잘 못했다. 계산에 어두웠고 셈에 둔했다. 고등학교 때 미적분이 어려워 포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결국에는 계산과는 먼 시인이 되었고 평론가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운명이란 있기는 있는가 보다.
문학을 해서 그럴까, 계산을 잘 하지 못해서 그럴까. 나는 사람과의 적당한 거리 유지에 매우 둔감하다. 상황 파악이 잘 안되어 눈치 없다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대인 관계가 좋은 사람은 사람과의 거리 조절을 잘 하는 사람이다. 천성적으로 타고 나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제일 좋아하고 부러워하는 사람이다.
상대방이 상식에 어긋난 사람이라 생각되면 드러내진 않지만 나는 그 사람과 상대하지 않았다. 그만큼 난 포용력이 부족했고 마음이 너그럽지 못했다. 학창시절 나는 반장이 되어 본 적도 없고 대학에서 학장이나 처장, 사회에서는 회장이나 이사장과 같은 감투를 써본 적도 없다. 나에게는 고작 초등학교 때 부반장 한 것이 최고의 지위였다. 나는 그런 것들에 어울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이끌고 갈 위인도 못되었다. 그것이 참 나였다. 내가 학자나 예술가가 되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는 딱 굶어죽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내 시에는 유난히 ‘불빛’이라는 단어가 많다. 불빛은 나에게는 나의 고향이자 어머니 품 속 같은 곳이다. 누군가가 기다려주는 따뜻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것이라도 내 가슴에 없었더라면 나는 많이도 외로웠을 것이다. 언제나 내 가슴에는 꺼지지 않는 그런 정겨운 불빛이 있다.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언제나 나를 반겨주는 곳, 사람과 사람 사이와의 거리도 그런 불빛 같은 거리였으면 좋겠다. 그리워하는 거리 말이다. 아마도 나는 내 생애에 그런 대접을 받기는 좀 어려울 듯 싶다. 그동안 내가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이제는 그리해 주어야할 빚만이 고스라니 남아있으니 말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살아온 내 삶이었고 내 책무였다.
어느 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섬이 있다고 했다.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주막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 잔 걸치며 그 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 따뜻한 여유 말이다.
고향 같은 사람, 고향 같은 거기, 우리가 늘 떨어져 있어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는 곳, 거기에 진정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곳은 내 어머니의 그윽한 품 속 같고, 어머니를 닮은 아내의 따뜻한 손길 같고 사랑을 가르쳐준 여인의 맑은 눈길 같은 곳이다.
우리에게는 유토피아 같은 그런 불빛이 있다. 그렇다. 언제나 우리는 늘 그런 곳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불빛도 우리가 만들었으니 어쩌면 그곳은 우리가 다가갈 수 없는 항상 머나먼 거리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이제는 ‘어머니’ 하고 불러야겠다. 나에게는 어머니 같은 아내가 있고 아내 같은 어머니가 있지 않은가. 어머니는 보냈으나 아내는 아직 남아내 곁에 머물고 있다. 나는 열심히 살았다고는 생각하지만 세상을 잘 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가슴에는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가 아내에게 주고간 꺼지지 않는 그런 불빛이 있다. 내가 시를 쓰고 있는 것도 그것에 대한 나의 반포지효이기도 하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이 주막은 아닐까. 어디서든 걸치는 나의 술 한 잔은 그런 여유가 아닐까 싶다. ‘천지는 만물이 머무는 여관이요, 시간은 백대를 지나가는 나그네이다.’ 이백은 이리 말하지 않았는가. 세월은 이리 후딱 가버리는 것이다. 우리 살아가는데 주막에서의 술 한 잔의 여유는 있어야하지 않을까.
매미 울음이 한창이다. 매미 울음이 산녘처럼 휘어지는 적막한 오후이다.
시조 한 수 얹어본다.
앞질러간 저 산은
빈 강물에 휘감기고
여태껏 못 떠난 주막
인생길의 탁주 한 잔
오늘은 불빛 하나가
저만치서 멈춰선다
-「아내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