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술 한 잔의 여유
■ 모시장터 / 술 한 잔의 여유
  • 신웅순 칼럼위원
  • 승인 2019.09.19 10:59
  • 호수 9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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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하면 울컥 고향 생각이 난다. 시골에서 자란 탓일까. 내 고향 마을은 중학교 때까지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골마을이었다. 등잔불 밑에서 공부했다. 꾸뻑 졸음이라도 오면 등잔불에 까까머리가 호르륵 그을리기 일쑤였다.

, 공부 많이 했네

친구들은 그을린 머리를 보면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것은 훈장과도 같은 공부 열심히 했다는 증좌(?)였다.

밤이 되면 사방팔방이 어둠 천지였다. 수십리 밖 등잔 불빛도 보였고 먼 산녘 돌아가는 도깨비 불빛도 보였다. 멍석을 깔고 누우면 여름 밤하늘의 별빛은 우수수 지상으로 쏟아져내렸다.

나는 어렸을 적 먼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똥별이 떨어지길 기다리곤 했다. 휘릭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면 1초도 안되는 사이에 소원을 빌었다.

산수 좀 잘하게 해주세요

그러나 이루어진다는 소원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수학을 잘 못했다. 계산에 어두웠고 셈에 둔했다. 고등학교 때 미적분이 어려워 포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결국에는 계산과는 먼 시인이 되었고 평론가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운명이란 있기는 있는가 보다.

문학을 해서 그럴까, 계산을 잘 하지 못해서 그럴까. 나는 사람과의 적당한 거리 유지에 매우 둔감하다. 상황 파악이 잘 안되어 눈치 없다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대인 관계가 좋은 사람은 사람과의 거리 조절을 잘 하는 사람이다. 천성적으로 타고 나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제일 좋아하고 부러워하는 사람이다.

상대방이 상식에 어긋난 사람이라 생각되면 드러내진 않지만 나는 그 사람과 상대하지 않았다. 그만큼 난 포용력이 부족했고 마음이 너그럽지 못했다. 학창시절 나는 반장이 되어 본 적도 없고 대학에서 학장이나 처장, 사회에서는 회장이나 이사장과 같은 감투를 써본 적도 없다. 나에게는 고작 초등학교 때 부반장 한 것이 최고의 지위였다. 나는 그런 것들에 어울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이끌고 갈 위인도 못되었다. 그것이 참 나였다. 내가 학자나 예술가가 되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는 딱 굶어죽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내 시에는 유난히 불빛이라는 단어가 많다. 불빛은 나에게는 나의 고향이자 어머니 품 속 같은 곳이다. 누군가가 기다려주는 따뜻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것이라도 내 가슴에 없었더라면 나는 많이도 외로웠을 것이다. 언제나 내 가슴에는 꺼지지 않는 그런 정겨운 불빛이 있다.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언제나 나를 반겨주는 곳, 사람과 사람 사이와의 거리도 그런 불빛 같은 거리였으면 좋겠다. 그리워하는 거리 말이다. 아마도 나는 내 생애에 그런 대접을 받기는 좀 어려울 듯 싶다. 그동안 내가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이제는 그리해 주어야할 빚만이 고스라니 남아있으니 말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살아온 내 삶이었고 내 책무였다.

어느 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섬이 있다고 했다.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주막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 잔 걸치며 그 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 따뜻한 여유 말이다.

고향 같은 사람, 고향 같은 거기, 우리가 늘 떨어져 있어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는 곳, 거기에 진정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곳은 내 어머니의 그윽한 품 속 같고, 어머니를 닮은 아내의 따뜻한 손길 같고 사랑을 가르쳐준 여인의 맑은 눈길 같은 곳이다.

우리에게는 유토피아 같은 그런 불빛이 있다. 그렇다. 언제나 우리는 늘 그런 곳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불빛도 우리가 만들었으니 어쩌면 그곳은 우리가 다가갈 수 없는 항상 머나먼 거리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이제는 어머니하고 불러야겠다. 나에게는 어머니 같은 아내가 있고 아내 같은 어머니가 있지 않은가. 어머니는 보냈으나 아내는 아직 남아내 곁에 머물고 있다. 나는 열심히 살았다고는 생각하지만 세상을 잘 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가슴에는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가 아내에게 주고간 꺼지지 않는 그런 불빛이 있다. 내가 시를 쓰고 있는 것도 그것에 대한 나의 반포지효이기도 하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이 주막은 아닐까. 어디서든 걸치는 나의 술 한 잔은 그런 여유가 아닐까 싶다. ‘천지는 만물이 머무는 여관이요, 시간은 백대를 지나가는 나그네이다.’ 이백은 이리 말하지 않았는가. 세월은 이리 후딱 가버리는 것이다. 우리 살아가는데 주막에서의 술 한 잔의 여유는 있어야하지 않을까.

매미 울음이 한창이다. 매미 울음이 산녘처럼 휘어지는 적막한 오후이다.

시조 한 수 얹어본다.

 

앞질러간 저 산은

빈 강물에 휘감기고

 

여태껏 못 떠난 주막

인생길의 탁주 한 잔

 

오늘은 불빛 하나가

저만치서 멈춰선다

-아내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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