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문화로 다시 깨어나는 장항
사설 / 문화로 다시 깨어나는 장항
  • 뉴스서천
  • 승인 2019.10.02 16:29
  • 호수 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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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상가의 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지만 장항읍 중앙로 주변에서는 불이 켜지지 않는 집들이 더 많았다.

출입문도 굳게 닫혀있다. 어쩌다 이처럼 쇠락할 대로 쇠락했는가. 광주직할시와 함께 1930년대에 읍으로 승격됐다는데... 서울에서 한 가장이 실의와 좌절을 안고 장항선 막차를 타고 종점까지 와 내린 장항역. 이곳에서 그는 온갖 수산물이 펄펄 뛰는 활기를 두 눈으로 보고 다시 삶의 의욕을 되찾아 열심히 노동하여 기반을 잡아 식구들을 불러들여 정착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남아 있다.

장항은 남한에서 한강, 낙동강에 이어 3번째로 긴 강인 금강 하구에 자리잡은 도시이다. 예로부터 강 하구는 문명의 발상지였다. 신석기인들이 처음 정착생활을 시작한 곳이 강 하구였다. 이들은 내륙을 향해 문명을 확장해 나아갔으며 강줄기는 교역로가 되었다. 내륙으로 들어가 터잡은 선사인들은 강 하구로부터 소금을 공급받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었다. 장항도 이러한 역할을 수행했다.

장항의 번성을 가져온 것은 기수역이 가져온 풍부한 수산자원이었다. 1983년 금강하굿둑 공사가 시작되며 장항의 인구가 줄고 있음을 통계자료가 말해주고 있다. 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장항항에는 토사가 쌓여갔다.

1994년 금강하굿둑 수문 폐쇄, 1996년 유부도에서부터 뻗어나간 7.1km의 도류제 완공, 2002년 군장산업단지 군산측 매립 완공, 200311km 새만금 4호방조제 완공, 200633km 새만금 방조제 완공. 금강하구를 둘러싼 자연 개조, 생태계 교란의 굵직한 문패들이다. 이들이 불 꺼진 장항을 만든 장본인들이다.

그동안 군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장항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공간 확보는 그런대로 진행되었지만 콘텐츠가 부족해 추진했던 사업들은 빛을 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서천군미디어문화센터와 기벌포영화관이 장항에 자리잡으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많은 문화 예술인들이 장항을 찾기 시작했다. 이를 토대로 2일부터 열리는 장항선셋페스티벌이 크게 탈바꿈을 했다. 주민창작문화축제로 만들기 위해 청년기획가와 주민창작가가 참여한 장항선셋페스티벌 상상 공유회도 열었다. 이번 축제 내용을 보면 주민들이 참여해 만든 문화예술작품으로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선셋페스티벌이 성공을 거두어 장항이 문화로 다시 깨어나 세계를 향해 기지개를 켜는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많은 군민들이 관심을 갖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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